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를 찔끔찔끔 봤다. 학교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서로 영혼을 부수는 드라마다. 거기에 최악, 아니 극악이라 해도 부족할 담임교사가 나온다. 가해자 부모에게 거액을 받아 자퇴이유서를 고쳐 서명한 피해자 엄마, 가해자 이름들을 지운 대가로 받은 돈을 챙겨 딸을 버리고 도망가는 극악 그 자체 엄마도 나온다. 물론 담임도 공모자다.

직업이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라 담임교사에게 자꾸 눈이 갔다. 범죄자들은 이미 악의 수위를 넘었으니 그렇다치고 내가 신성시 했던 선생의 용기가 단 일초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까했다.

내 국민학교 시절과 드라마 속 고등학교는 30년의 차이가 있다. 30년 동안 우리 학교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많다. 변화가 없으면 안 되는 곳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늘 고여 있는 물 같다고 했다. 상처받기 싫어하고 돌 맞기 싫어하는 관료주의와 이에 맞서는 세력들이 끊임없이 싸우는 곳이다. 보이지 않지만 학교는 또 그런 곳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여선생이었다. 목소리도 건강하고 아이들 제압하는 힘이 대단해서 70여 명 급우들도 꼼짝을 못했다. 공부를 잘 가르쳐 주고 환경정리를 잘하고 군인도 아닌데 박력있고, 뭐라 거역하거나 앵기(달려)들 수도 없는 힘이 선생님 긴 생머리와 하얀 얼굴에 배여 있었다.

4학년 3반 교실은 늘 모범이 넘쳤다. 3학년때 어떤 그림 한 점으로 입상을 한 나는 상장 하나로 전이효과 같은 마력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런 찰나에 4학년이 되었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생님 수업에 나도 모르게 공부를 잘하는 어린이가 됐다. 한글도 모르고 입학을 했고 그러다가 또박또박 명필이 되었고, 부모님이 덕산 유지가 아니어도 학교생활이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날 선생님께서 특별한 제안을 하셨다. "글 모리는 사람 손 들어 봐라." 그랬더니 서너 명이 손을 들었다. "오늘부터 순옥이랑 ㅇ ㅇ이랑 짝지다. 짝지가 이 한글카드 다 읽으면 여기 급식빵 한 개씩 준다." 내 짝지는 남자애였다. 아무도 웃지도 않았고 놀리지도 않았다. 호명된 우리는 대단한 의무감을 느끼며 방과 후 교실에 남아 한글을 공부했다.

알다시피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읽기를 깨우칠 수 있는 소리글자다. 보리가 파릇파릇 돋은 들판을 가로질러 학교에 오는 내 짝지는 내가 넘기는 카드를 떠듬떠듬 다 읽었다. 보리가 익기 전에 카드도 읽고 국어책도 읽어냈다.

선생님께 받은 급식빵은 원래 돈을 내고 사먹어야 되는 것이었다. 한 봉지에 다섯 개 들었는데 한 달 치 돈을 내고 먹고 싶은 사람만 먹는 것이었다. 분식장려운동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도시락엔 밀가루 음식을 해 가야 하는 시절이기도 했다.

3학년 때 심했고 4학년 때는 좀 느슨했다. 선생님 공부 방법이 먹혔는지 우리 반에서는 글을 못 읽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독해력, 문해력까지 좋아졌는지는 모르지만 국민학교 4학년 교실에서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있으면 안 되지 싶었다.

한글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문제도 서로 가르쳐 주며 그렇게 공부했다. 이런 분위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니 참 다행이라 여겼다. 그냥 ‘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안다는 것임을 요즘 와서 많이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공부 외에도 많은 것을 해 주셨다. 수업 마치면 책걸상 밀어놓고 여학생들 머리 깎아주기, 자취집에서 밥해주기, 글쓰기, 도서위원으로 있을 때 헌 책 표지 수리하는 방법 가르쳐 주기, 문집 만들기 등 내 인생 밑천이 된 것들을 이때 다 체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더 글로리>>에 나온 담임선생이 악마로 보였다. 천박하게 재력 있는 학부모에게 달궈진 최악, 극악무도에 가까운 교사. <<아홉살인생>>,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에 나오는 ‘월급 기계’ 교사는 그래도 일퍼센트 연민라도 줄 수 있지만. 주변에서 <<더 글로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럼 담임선생은? 학교는 뭐했어?" 물어봤지만 출연자들 연기력에 대한 칭찬과 ‘학폭’을 소재로 한 복수 드라마 정도로 말해 버려 관심이 없었는데, 짧은 영상으로 자꾸 보게 된 것이다.

‘학폭’은 현재진행형이다. 교사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70여 명을 내려다보고 세세히 살폈던 옛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일상에서 관찰하고 눈치채지 않게 사랑을 주고 바라보는 눈, 이런 순진한 방법이라도 해봐야 교사 아닌가싶다.

그 시절에도 나쁜 선생은 있었다. 좀 모자라고 쑥쑥하게(지저분하게) 해 다니는 아이 손등을 하이힐로 밟는 선생, 동네 ㅇㅇ사 딸이거나 도시락 반찬을 고급지게 해오는 아이에겐 특별하게 대하는 선생도 있긴 있었다.

그러나 인격까지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진 않았다. 학생들이 사고를 치면 어쨌든 구해주려고 애썼고 인생이 구만 리 같은 아이들인데 하면서 궂은일은 다해 주었다. 염소를 훔쳐 가출한 학생이나 이유 없이 결석한 학생 찾아오기, 다방 앞에서 오토바이 타고 '오봉' 보따리 든 학생 찾아오기 등 지난날 우리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들은 수업 외에도 얼마나 많았던가.

겨울방학이 끝나고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간, 이제는 가슴도 두근거리지 않는 신학기를 맞이하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시간인데 우리 아이들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을까?

시골학교에서만 다녀서 그런지 내 기억 속에 선생님들은 학교라는 성역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주는 성자 같은 존재였다. 도시와 단절된 곳에서 문화, 교육, 정보, 스토리텔링 매개자로, 갈망하는 것이 많았던 나에게 선생님은 중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허구를 다루는 장르 속에 비치는 교사상이 악에 물들었을 때 화가 났다. <<더글로리>>에 카메라 촛점은 다양한 인물 위에 찍히지만 유독 주인공 과거 속에 비친 담임교사 얼굴과 그의 인생말로에 시선이 멈춘 것도 묘한 분노의 일환이었다.

나는 학습지 교사다. 제도권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제도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 많은 차별을 받고 있지만 과거 우리 은사들에게 배운 감성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머리를 깎아주고 음식은 못 해줘도 인생에 도움되는 책을 권하고 시를 읽게 하고 필사하게 하고 선한 인물을 찾아낼 줄 아는 눈을 갖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이 시대 이 이상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청소년 드라마 속에서 친구들끼리 수학문제를 물어봐주고 가르쳐주는 장면, 그런 장면을 보고 흐뭇해하는 선생님이 있는 교실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젠 낡은 희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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