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와 유품 다량 나와.
두 명씩 손 결박해
엎드리게 한 채 학살.
가해자 경찰로 추정돼

발굴작업 중인 조사팀
발굴작업 중인 조사팀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두 명씩 손을 뒤로 묶인 채 엎드린 자세로 학살됐습니다. 41구의 유해와 다양한 생필품도 발견됐습니다. 진주형무소 재소자들이 이곳에서 학살됐다고 하지만, 발굴조사 결과 '보도연맹원'이 학살된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

한국전쟁 전후 군경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학살지로 추정되던 경남 진주시 집현면 봉강리 산 83-7번지에서 지난 2일 시작된 유해발굴 작업이 16일 사실상 종료됐다. 발굴조사를 맡은 역사문화재연구원은 이날 오후 1시쯤, 현장에서 발굴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발굴된 유해는 모두 41구이다. 두개골만 37점 발굴됐다. 유해들은 두 명이 한 조로 손을 묶인 채 엎드린 자세로 발견됐다. 유해들은 북서쪽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남동쪽 방향으로 다리를 둔 채 줄지어 발굴됐다. 유해들의 두개골 후두부에서는 총상 흔적이 나왔다.

학살 당시의 상황을 추정하게끔 한다.

 

발견된 유해(두개골) 두 점 사이로 손목을 묶은 전선이 드러나 있다. 희생자들은 두 명씩 손이 묶인 채 엎드린 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된 유해(두개골) 두 점 사이로 손목을 묶은 전선이 드러나 있다. 희생자들은 두 명씩 손이 묶인 채 엎드린 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헌 발굴조사팀장은 “머리를 북서쪽으로 향한 채 엎드린 자세로 발굴된 유해들에서 전선으로 손목이 결박된 점이 드러났다”며 “피해자들은 2인 1조로 손을 결박당한 뒤, 유해가 매장된 구덩이 방향으로 엎드린 채 총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해 외에도 이곳에서는 다양한 학살 흔적이 발견됐다. 칼빈 소총 탄피와 38·45구경 권총 탄피 등이다. 탄두와 사용되지 않은 원탄도 나왔다. 발굴조사팀은 칼빈 소총 탄피와 권총탄피가 섞여 있는 점을 보면 가해자는 군인보다 경찰로 추정된다고 했다.

 

학살에 사용된 탄두, 탄피와 희생자들의 유품
학살에 사용된 탄두, 탄피와 희생자들의 유품

옷가지, 단추, 버클, 신발, 의복 밴드, 도시락, 그릇, 숟가락, 빗, 칫솔, 약병, 가방걸쇠 등 생활용품도 다수 출토됐다. 단추는 미군 작업복에서 확인되는 별문양 단추부터, 스냅단추, 2혈, 4혈 단추 등이 발견됐다. 신발 종류 또한 고무신부터 구두까지 다양했다.

김 팀장은 “고무신부터 부츠, 구두, 각반 등 다양한 신발류가 확인됐고, 직장인이나 학생이 사용할 만한 도시락과 가방걸쇠, 당시 학생들이 교복 깃을 세우기 위해 쓰던 물품이 발견된 걸 보면, 보도연맹원이 학살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애초 이곳에서는 진주형무소 재소자가 학살됐다는 증언들이 있었다.

 

두개골 사이로 보이는 금니
두개골 사이로 보이는 금니
학생들이 교복 상의 깃을 세우는 데 사용했던 물품
학생들이 교복 상의 깃을 세우는 데 사용했던 물품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도시락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도시락

금니나 보철, 일제 가방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김 팀장은 이에 “그 시절에는 금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다수라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금니를 낀 사람이 학살된 점을 보면 피학살자 가운데는 부유층도 일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발굴조사팀은 발굴이 사실상 종료됨에 따라 17일부터 유해 및 유품 수습에 들어가, 23일 현장에서 철수한다는 계획이다. 연구원은 수습된 유해와 유품으로 희생자들의 성별이나 계층 등을 파악한다. DNA감식도 예정되고 있다. 안치장소는 이후 결정된다.

DNA감식 예정 소식에 정연조 유족회장은 “유족을 최대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장지에만 오면 눈물이 나고는 한다. 2002년부터 피학살지를 찾아다니고,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유족회 활동을 했는데, 차후에도 매장지 발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남 진주시 집현면 봉강리 산 83-7 일원에서 발견된 유해와 유품들
경남 진주시 집현면 봉강리 산 83-7 일원에서 발견된 유해와 유품들

이날 현장을 방문한 유족 가운데 한 사람은 “이들 유해 가운데 우리 큰 아버지가 계실 수도 있을 것 같다. 70여년 만에 군경에 의해 자행된 학살흔적이 드러난 셈이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책임 있는 사람의 사과가 필요하다. 현장을 직접 찾아 눈으로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집현면 봉강리는 진주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24곳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암매장지 가운데 9번째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곳이다. 정연조 유족회장은 남은 매장지 발굴조사도 조속히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에서는 2~3천여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는 450여 구이다. 이들 유해는 명석면 용산고개에 위치한 임시안치소와 세종시 추모의집에 보관돼 있다. 유족회는 곧 임시안치소에 보관된 유해의 안장 방식을 결정할 예정이다.

단디뉴스

*국민보도연맹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6월 좌파 전향자로 구성됐던 반공단체 조직이다. 1948년 1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와 국민사상을 국가가 통제하려면 이승만 정권의 목적으로 결성됐다.

 

1949년 보도연맹 가입자 수는 30만여 명에 달했다. 보도연맹 가입자는 좌파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었지만, 실제로는 공무원들의 실적주의 때문에 가입을 강요받은 경우도 많았다. 지역별 할당제 때문에 사상범이 아닌 데도 등록된 경우가 많았다.

 

보도연맹원을 대상으로 한 학살은 한국전쟁 발발 전후 이루어졌다.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조선인민군에 협조할 것이라는 이승만 정권의 의심 때문이다. 국민, 경찰, 교도소 교도관들은 이에 따라 보도연맹원들을 무차별 검속하고, 즉결처분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