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의 여야가 바뀌더니 지방정부도 그 영향이 미치는 형국이다. 교육감 선거는 이른바 보수라고 참칭하는 자들이 제법 영역을 넓혔다. 이리하여 2021년 말부터 대중에게 휘몰아치던 정치적 바람은 공식적으로 멈췄다.

그리고, 이 땅의 기층 민중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엄청난 경제적 고난이다. 역병으로 풀린 천문학적인 돈과 선거비용으로 풀린 역시 천문학적인 돈이 시장을 흔드니 물가와 이자율은 오를 것이고 더불어 인민들의 삶은 辛酸(신산)해질 것이다.

며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다녀왔다. 늘 그곳에 가면 느끼는 것이지만 대한민국의 불안하고 무서운 미래가 그곳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여 서울에 있는 내내 약간의 두통과 희미한 불안이 지그시 나에게 밀려왔다. 장기적인 계획이나 전망 없이 임시방편으로 증설하여 엄청나게 복잡한 간·지선 도로들과 자본주의의 충실한 욕망에 따라 건설된 무질서한 고층건물들 사이로 무표정하게 걷는 사람들, 그 사이로 질주하는 자동차들과 이륜차들.

간선도로를 벗어나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불안하고 위태로운 옹벽과 좁고 가파른 오르막, 그 사이사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표정들이 나에게는 서울의 표정이다. 그나마 서울이 가진 화려하고 거창함은 대중들의 몫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그 화려함과 거창함에 마취되어 자신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 지독한 자본주의의 독성이다. 그 독성이 마침내 인간성을 위협하고 있는 곳이 서울이다. 그러니 무섭고 암울하다.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그런데 선거는 이 모든 부정적인 것을 평준화하고 동시에 합리화한다. 삶에 지친 민중의 고통은 선거 속에 용해되어 추출되지도 분리되지도 못한 채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용도 폐기되고 만다. 그것이 정확하게 2022년 이 땅의 대의 민주주의인 셈이다.

교육감 선거는 다른가? ‘학력’과 ‘전교조’ 두 개의 키워드가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이 두 문제는 사실 아이들의 삶과는 거의 무관하다. 특히 ‘학력’은 오로지 어른들의 필요에 의한 것일 뿐이다. 교육의 핵심 주체, 즉 피교육자들인 아이들에게 선거권도 없는 상황에서 ‘학력’ 운운하는 것은 참 웃기는 일이 아닌가! 아이들의 삶이 왜 어른들의 정치 논리에 따라 이리저리 재단되는지……누구를 위한 학력이란 말인가! 학력 문제는 아이들 스스로 이미 큰 문제인데 어른들이 나서서 문제로 삼는 것은 과잉이자 난센스다. 그래서 최소한 고등학생들에게는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다. 왜?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고등학생들은 그 능력을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 또한 그러하다. 아이들의 삶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교육의 본분이라는 가정이 있다면 큰 틀에서 정치적인 의견 차이는 사실 무용하다. 또 그런 가정 속에서 보아도 전교조는 아이들의 삶을 위해 지난 30년 노력해 온 것은 사실 아닌가! 물론 이것 또한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전교조가 지금껏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토대를 다져왔다는 것에 다른 의견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교육을 잘 모르거나 오로지 정치논리로 세상을 재단하는 편협한 인식의 소유자가 분명하다. 교육현장에서 지난 30년간의 전교조 역할은 누구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선거는 끝이 났고 일상은 유지될 것이다. 아무리 거창한 일이 있어도, 아무리 화려한 일이 있어도 그 모든 것이 끝난 다음 날 아침 허기는 채워져야 하는 것이 일상이다. 하여 일상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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