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에 봄은 이미 중턱을 넘어서고 있다. 낮에는 덥고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다. 전형적인 봄 날씨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수면에 오늘 K-기업가센터가 개관식을 가졌다. 내가 지수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해오던 2019년에 이미 시작한 공사였는데 그동안 코로나 탓에 드디어 오늘 문을 연 것이다. 새롭게 개관하는 시설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 몹시 미안하지만 중학교 교장으로서 이 상황을 생각해보면 참 암담하고 답답한 일이다.

먼저 오늘 개관한 장소는 구 지수초등학교 자리다. 대한민국 어디나 그렇겠지만 작은 시골 면 소재지의 중심은 초등학교다. 거기서 아이들이 모이고 놀며 자란다. 나도 그랬고 농촌에서 자란 대부분은 초등학교가 삶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동네 중학교로 진학을 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오늘 지수면 소재지 중심에 기업가센터가 생긴 것이다. 기존의 초등학교는 소재지에서 3km나 떨어진 곳으로 이전을 시키고 소재지에는 초등학생 한 명 없는 썰렁한 곳이 되고 만 것이다.

지수면은 부자들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국내 유수의 재벌 창업주들이 태어난 곳이라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아직 지수면에 많이 살고 있다. 현재의 그 재벌 소유주들은 창업주의 손자 세대다.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을 그렇게 알뜰히 챙기지 않는다.

오늘 기업가센터는 그런 상황에서 개관을 했는데 중학교 교장인 내 눈에는 센터의 개관 이면에 도사린 지수면의 쇠락만 보인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마을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어야 그 마을이 활력이 있다. 이미 초등학교는 소재지에서 멀리 이사를 갔고 소재지에는 면사무소 등 몇 개의 기관과 연세 드신 분들만 살고 있다. 기업가센터가 어떤 역할을 할지는 모르나 외지인들이 여기 와서 마을의 활력을 줄 것이라고 보기는 솔직히 어렵다. 마을에 경제적 유인효과도 없을 것이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지수면의 특성상 센터에 농산물 공급 정도는 하겠지만 그 외의 효과는 사실 기대하기 어렵다.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문제는 또 있다.

차기 정부는 틈나는 대로 ‘자유시장경제’를 운운한다. 자유시장경제는 한 마디로 가진 자들을 위한 경제 논리다. 처음부터 체급이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동일 조건의 환경에서 경쟁시키는 것이 ‘자유시장경제’ 논리다. 즉 될만한 놈은 크고, 안 될 놈은 버리는 식이다. 이 논리를 교육에 가져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벌써 특목고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나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지수중학교처럼 겨우 30명이 다니는 중학교는 이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통폐합이 당연해 보인다. 안 될 놈이 가진 조건이 너무 많은 지수중학교의 상황이다. 이미 이전 정부와 현 정부에서도 통폐합의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다. 학부모들의 결사항전으로 겨우 지켜낸 지수중학교다. 당시 통폐합의 기준이었던 40명 선을 맞추지 못하면 이 정부 임기 안에 지수중학교의 운명은 끝이 날지도 모른다. 솔직히 조금 두렵다.

그 근본 원인이 어쩌면 지수초등학교의 이전에 있을지도 모른다. 소재지를 두고 한쪽으로 자리를 옮긴 지수초등학교와 아이들이 없는 면 소재지, 그리고 정부의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한 교육정책이 어우러져 거대한 파도가 되어 지수중학교를 덮치려 하고 있다. 나는 내년 8월이면 학교를 떠난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나의 이런 예상이, 이런 걱정이 모두 잘못된 예상이며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중용에 이런 말이 있다. 영화 ‘역린’에 등장하는 말이다.

“한쪽을 미루어 지극히 하면 성(誠)해질 수 있다. 성(誠)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더욱 뚜렷해지고, 더욱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시키고, 감동시키면 변(變)하고, 변(變)하면 화(化)할 수 있으니,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誠)해야만 화(化)할 수 있다.”

지금은 이 말과는 모든 것이 반대로 일어날 것 같아 걱정이다.

즉, 지극함도 없고 지극함이 없으니 성해질 리 만무하다. 성해지지 않으니 흐려지고, 흐려지니 어두워진다. 어둠은 모든 것을 가라앉게 하고 마침내 타락하게 한다. 타락하게 되면 모든 것이 갈래갈래 찢어지고 천하는 온통 어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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