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子 務本 本立而道生(군자 무본 본립이도생)" 『논어』 ‘학이’ 편에 등장하는 유자(유약 – 공자의 제자)의 이야기다.

풀이하자면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 근본이 서면 도가 생겨난다.” 뭐 이 정도 뜻이다.

제일 먼저 ‘군자’라는 말이 조금 걸린다. ‘군자’라는 단어는 사실 신분사회의 유물이다. '君(군)'은 임금이라는 뜻이 있으니 신분이 높은 사람이 틀림없고, '子(자)'는 아들이라는 뜻이니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혈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논어 전체로 보면 그런 뜻보다는 인품이 고결하고 덕이 있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농업 사회에서 귀족과 사족(士族) 등 비 노동 인구를 제외한 기층민(基層民)들에게서 인품이 고결하고 덕이 있는 존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설사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 하여도 그들을 ‘군자’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군자’라는 말은 조금 불편한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산업사회에서도 별 차이가 없다.

그러면 ‘근본’은 무엇인가? ‘논어집주’(주자가 쓴 논어 해석집)에 의하면 “本 猶根也( 본 유근야)”라고 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에 충실해야 ‘군자’라는 것인데 ‘유자’는 이어서 인간의 기본에 대해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효’와 ‘제’를 그 핵심 요소로 이야기하고, 그것이 곧 ‘仁(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으로부터 도가 생긴다. 그 바탕은 역시 ‘효’와 ‘제’이고 그것이 ‘인’을 이루어 '도'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조금 혼란스럽다. ‘道(도)’와 ‘仁(인)’의 관계에 명확한 논의 없이 슬그머니 ‘道(토)’가 ‘仁(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듯하다. ‘주자’는 ‘집주’에서 程子(정자, 송나라 시대의 유학자)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설명하지만 이야기는 그저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크다.(나의 식견이 좁아서)

동양에서 말하는 ‘道(도)’는 문자로 설명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다. 영어 번역도 중국식 발음 그대로 ‘Tao’로 쓴다. 번역하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 번역하면 그 뜻이 틀어지거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양에도 이런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로고스(그리스어 λόγος, logos)도 희랍어 그대로 쓴다. 우리도 ‘로고스’라고 쓰고 그 의미를 대충은 짐작하지만 굳이 번역하지 않는데, 이것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번역하는 것보다 더 본래 의미에 가깝다는 판단일 것이다.

아무튼 근본에 힘쓰면 ‘道(도)’가 생겨난다는 ‘유자’의 말은 애매하다. 그 뒤 설명이 더 애매하다. 이것을 해석한 ‘주자’의 생각도 그리 분명하지는 않아 보인다. ‘유자’가 이 말을 한 정확한 의미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근본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먼저 우리의 근본, 즉 뿌리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 행동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共存(공존)’과 ‘相生(상생)’이어야 한다. 사실 이것만 잘 지켜져도 이 땅에 노동문제와 빈부격차의 문제, 환경문제는 대부분 사라진다. 누구나 알고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나를 포함하여) 아무도 지키지 않아 공허해진 말이 이 단어들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公正(공정)’이 부가되는데 지금 대통령 선거 판에 횡행하는 싸구려 ‘공정’과는 거리가 먼 무겁고 거대한 담론으로써 ‘공정’이다. ‘정의’ 로운 ‘공평’이 몇 마디 말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각 개인들의 무한 헌신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 탐욕스러운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가능한 말인가 싶다.

아침에 논어를 생각해보니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道(도)’는 없다. (하기야 그 시절도 지금만큼 복잡한 시절이었다.) 그러니 근본에 힘써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그 근본은 '인의'를 갖추어야 가까워지고 마침내 ‘도’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 시절도 어려웠고 지금도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공존’과 ‘상생’, 그리고 ‘공정’을 갖추면 ‘유자’ 선생께서 말씀하신 ‘道(도)’가 최소한은 발현될 듯한데…… 이 아침, 그 길은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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