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유근종 작가]
[사진= 유근종 작가]

입춘이 지났다.

이제 만물이 생동한다는 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럴 때 어떤 음악을 소개하면 좋을지 생각해본다.

힘차게 시작하는 음악이 좋겠다 싶어 오늘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을 골랐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어릴 적, 퇴근하는 길 차 안에는 여느 때처럼 클래식 방송을 틀어놓았었다.

음악 소개 코멘트가 나오고 “빰 빰 빰 빰... 빰 ~~~”이런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뒷자리에 앉아 있던 두 아이가 동시에 따라서 흥얼거렸다.

러시아 작곡가 뾰뜨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 도입부이다.

이처럼 이 곡은 아이들도 무슨 음악인지 모르고 따라 흥얼거릴 만큼 많이 알려진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을 처음 듣던 시절, 거의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빨리 샀고 좋아했던 음반이다.

당시는 카세트테이프를 이용할 때라 음질이 썩 좋지 않았지만, 정말 많이 들었다.

대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당대 유명 피아니스트들과 몇 종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연주를 지휘했는데, 역시 러시아 출신의 스뱌또슬라프 리흐테르와 함께한 연주를 최고로 친다.

연주의 완성도를 떠나 나는 이 음반이 참 좋다.

이유는 두가지이다.

앞서 말한 첫 음반이기도 하고, 연주와는 전혀 무관한 이 재킷 사진 때문이다.

사진 찍는 나의 한때 꿈은 레코드 재킷 사진 전문가였다. 음반 표지 사진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 사진은 보자마자 느낌이 너무 좋아 사진 하나만으로 음악을 다 들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진 주인공은 지휘자 카라얀(왼쪽)과 피아니스트 라자리 베르만(오른쪽)이다.

사실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에 관한 한 소위 ‘명반’이 너무 많다.

이 시대에도 수없이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녹음하는 연주이고,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는 빠지지 않고 연주, 녹음해온 곡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진주성 촉석문 근처에는 ‘제일극장’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어느 날 여기서 영화 ‘차이코프스키’를 본 적이 있다.

영화의 여러 장면들 중 이 피아노협주곡에 관한 장면이 나온다.

차이콥스키는 애초 이 곡을 친구이자 모스크바 음악원의 원장이었던 명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쉬타인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루빈쉬타인은 차이콥스키에게 곡을 조목조목 꼬집으며 개작까지 하라고 혹평했다고 한다.

자존심이 강했던 차이콥스키는 나중에 독일의 명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뷜로에게 곡을 헌정했고 초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3년쯤 뒤 루빈쉬타인은 혹평했던 것을 차이콥스키에게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차이콥스키의 자존심 덕에 이리 멋진 곡을 지금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유명한 클래식 음악은 그 선율이 팝 음악에 이용되기도 하는데 이 곡 1악장의 선율로 만든 핑크 마르티니의 “초원의 빛”이란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이제 곧 봄이다. 겨우내 움츠린 몸을 음악 기지개로 한 번 펴보면 어떨까 싶다.

참, 마지막으로 지금 열리고 있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러시아는 도핑 문제로 공식적으로 러시아라는 국가명을 쓰지 못한다. 국가 또한 연주하지 못한다. 대신 차이콥스키의 이 곡이 금메달 시상대에 올라갈 때 울려퍼지고 있다. 

https://www.classicfm.com/composers/tchaikovsky/piano-concerto-replaces-russian-national-anthem-olympics/?fbclid=IwAR2gT59AWieGlTsLrm31PMZ0lOir3U2mq67N_-ApVD8HQTMh0t9Dn2K00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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