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고르라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맛있는 음식'을 선택하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렇게 사랑의 기쁨과 먹는 즐거움의 합이 행복의 크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이 떠난 자리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찾기도 하고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맛의 쾌감에 마음을 맡기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을 갈망하고 맛을 추구하며 음식에 중독되기도 한다. 먹는 즐거움과 사랑의 기쁨은 서로를 보완하고 위로한다. 하지만 충분한 보완과 완벽한 대체는 없다. 생존과 생식의 역할이 다르듯 서로는 독립적이고 필수적이다. 그래서 사랑 없는 포만감은 허전하고, 배고픈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먹방이 대세다. 이제는 이것도 식상한 표현이다. 사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갈구한다. 생존해야 하고 자손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과 로맨스를 주제로 한 노래와 드라마가 많고 먹방이 대세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또 줄을 서기도 한다. 냉면 마니아들은 전국의 냉면 맛집을 순례하고, 각 냉면 집의 특징을 공유하고, 미묘한 맛의 차이를 분석하고 감동하고 즐기며, 스스로 중독됨을 은근히 내세우기도 한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의 즐거움과 사랑의 기쁨은 본능적이다.

자연은 진화과정 중 단백질에 글루탐산이라는 아미노산을 심어 놓고 감칠맛과 연결시켜 놓았다. 감칠맛을 찾아가다 보면 글루탐산을 포함한 단백질을 먹을 수 있게 된다. 결국 감칠맛을 좋아하는 동물은 몸을 만들고 효소를 만드는 단백질을 얻고 생존하고 번성하게 된다. 자연이 보기에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던 것처럼.

단맛이 탄수화물 확보를 위한 미끼이고,

짠맛은 미네랄 확보를 위한 미끼라면,

감칠맛은 단백질 확보를 위한 미끼이다.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은 단백질의 꼬리표 또는 보증수표인 셈이다. 자연에서는 그렇다. 식품산업은 그러한 믿음을 속이고 그러한 본능을 이용한다. 맛과 영양을 분리한다. 맛은 강화하고 영양은 책임지지 않는다. 맛 자극 강화를 위해 글루탐산에 화학적 변형을 살짝 가한 것이 MSG이다. 전통 냉면 '육수'나 프랑스 요리 '스톡'은 맛이 영양을 보장하지만 'MSG육수'는 맛이 영양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맛으로 유혹하지만 영양은 책임지지 않는 MSG는 하룻 밤은 유혹하지만 다음 날은 책임지지 않는 바람둥이와 같다. 사랑의 결핍이 심리적 허전함을 동반하듯 가공식품은 생리적 허전함을 동반한다. 그래서 가공식품은 과식을 유발한다. 사랑 없는 섹스다.

글루탐산 함유 단백질에 감칠맛을 느끼지 못한 동물들은 단백질 부족으로 도태되었다. 자연은 단맛, 짠맛, 감칠맛 미끼를 따라온 것들은 품으로 거둬들였지만 그러지 못한 것들은 사정없이 내쳤다. 자연은 예수처럼 낙오된 양들을 품에 안지 않는다. 우리는 맛이라는 쾌감의 미끼를 따라갔던 조상들의 후손이다. 그래서 단짠과 감칠맛에 깜빡 넘어간다. 단짠과 감칠맛은 진화 과정 중 몸과 뇌에 박힌 본능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생존에 유리했던 이 본능이 먹을 것이 흘러넘치는 오늘날 우리 발목을 잡고 목을 조르는 과식의 주범이다.

음식은 몸을 만들고 사랑은 세대를 이어준다. 세대를 이어 DNA를 유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랑이다. 부족한 사랑의 허전한 심리적 공간을 먹는 즐거움으로라도 채우고자 하는 노력이 과식이다. 음식은 내장의 물리적 공간을 채울 수 있지만 마음의 심리적 공간을 채울 수는 없다. 사랑으로 채우지 않고서는 과식의 허전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식에 저항하고 자유를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랑을 하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진정한' 음식을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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