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한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은 과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만 남긴 채 정직하게 늙어갔을까? 라는 의심이 그 생각거리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거짓말은 늑대에게 득이 되었는데, 만약 양치기 소년이 그 득을 늑대와 은밀히 나누는 내부자였다면? 혹은 늑대를 잡기 위해 가버린 사람들의 빈집을 노리는 도둑과 한패였다면? 일반적이거나 대중적인 생각은 아니다. 그래서 소수의 생각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개연성은 충분하다. 인간은 부정적 신호에 민감하다고 한다.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부정적인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고 기피하는 개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추억이 뭐냐고 물으면 단연코 참깨 수확이라고 말하렵니다. 지난 3일부터 근 보름 넘게 온통 참깨 농사에 매달렸습니다. 폭염이 한창 기승을 부렸던 시기였지요. 그때는 인격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아침저녁의 짧은 그 시간뿐인지라 그동안에 참깨를 베고 털고 말리고 키질을 하느라 영혼이 가출하는 듯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넘길라치면 땀이 비 오듯 해서 더는 움직이기조차 어려웠습니다. 확실히 기후위기가 맞다고, 어떻게 이렇게 더울 수가 있냐고 투덜대면서도 꾸역꾸역 일했습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농사일을 할 때
결혼해서 생활고로 정신없이 살던 어느 초겨울, 단지 어머니가 보고 싶단 생각에 입던 옷 그대로 작은 애를 둘러업고, 딸애는 걸리고 해서 친정집에 간 적 있다. 반가워하면서도 어머니는 대문 밖을 흘끔거리며 지나다니는 사람 없는지 살피신다.“아이고! 이년아, 친정에 오려면 옷이나 좀 번듯하게 차려입고 얼굴에 화장품도 찍어 바르고 와야지 꼬락서니가 이기 머꼬? 동네 챙피하게"애들에 대한 신경 잠시 끊고, 차려주는 밥 배불리 먹고 낮잠을 잘 수 있는 곳, 동네 창피하지 않게 곱게 화장하고 예쁜 옷 차려입고 가고 싶은 친정집이 이제 없다.
공군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우리 땅에 들어서는 독립군 대장 유해를 보며 여러 감정이 겹친다. 밥술이나 먹고 산다고 으스대던 것이 우금 언젠데 나라 위해 몸 바쳐 싸우다 객사한 투사의 백골을 거두는 데 78년이나 걸렸더란 말인가. 영정으로 돌아오신 홍범도 장군은 흑백 초상만으로도 그 위의가 느껴진다. 군 창설 이후 숱하게 생산해내 주렁주렁 별을 달고 위세 부리던 같잖은 똥별들 품새와는 감히 견줄 수 없는 위엄이다. 그건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계백 등 전설적 장군의 위풍에서 맡아보던 우뚝 선 당당함이라.'독립군'에 대해 가졌던 막
일제강점기 진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업가는 진주조면공장과 조선 각지에 정미소를 운영한 시미즈 사타로(淸水佐太郞)였다. 그러나 시미즈 외에도 양조와 장류를 제조한 장미상점(長尾商店)과 토목·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죽본조(竹本組)는 진주에 본사를 두고 전국적인 기업으로 발전한 회사들이다. 우선 장미상점은 시내로 들어오는 천전리 나루터 언덕에 터를 잡고 1913년 일본식 전통 소주를 제조하는 장미주조장으로 출발했다. 처음 주조장을 설립한 나가오 쵸노스케(長尾長之助)는 카가와현(香川縣) 기타군(木田郡) 출신으로 1913년 진주에 건너와 주조
교육부 표현 그대로 ‘교육 회복’을 위한 백화점식 정책이 망라되어 있는 듯 보인다. 일단 문건 작성을 하신 공무원들의 노고에 찬사를 전하고 싶다. 진심이다.대체로 계획은 언제나 거창하고 멋지다. 하지만 실행을 위한 방법이나 구체적 내용은 현실이다. 현실은 매우 구차하고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따라서 아이러니하지만 거창하고 멋진 계획일수록 현실에서는 실패할 확률도 높아진다. 안타깝게도 계획서 어디에도 현장에서 움직이는 교사의 목소리가 없다. 이 모든 계획의 실행 주체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사람은 현장 교사가 아니던가?대한민국
풀뿌리 민주주의는 소수 엘리트 정치인이 다수 민중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를 멀리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지역사회나 마을공동체의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를 함으로써 지역 공동체와 실생활을 변화시키려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특히 풀뿌리 민주주의는 자치와 분권을 통해 민주주의의 부족함을 채운다. 지역주민들이 지자체 예산 편성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예다. 점점 풀뿌리 민주주의, 즉 주민의 자치와 참여가 중시되고 강화되는 이유는 대의제의 한계와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현재의
음식이란 본래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이다. 맛이나 영양은 그다음의 일이다. 쌀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한반도 북부, 그나마 농사가 가능했던 메밀에서 녹말을 뽑아 만든 음식이 메밀국수였다. 메밀국수의 녹말은 쌀과 밀이 귀한 지역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칼로리 공급원이었다.사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국수는 맛과 영양에 문제가 많은 음식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한 칼로리 공급이 주된 목적인 국수사리는 맛도 없는 탄수화물 편중의 영양 불균형 식재료이다. 그래서 맛과 영양 균형을 위해 육수와 고명이 더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육수에 목숨(?)을
Music "90년대 한국 록 아이콘, 강산에가 추억하는 '할아버지'"강산에를 보면 소설 '임꺽정'과 '장길산'이 떠오른다. 너털웃음 같은 창법, '할많하않' 따위 무시하는 꼿꼿한 직설, 남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움, 타오르는 정의감, 무엇보다 바람같은 활기와 바위같은 '깡'에서 그렇다.강산에는 노래 소재를 잘 찾는 뮤지션이다. 남들은 허투루 보아 넘길 수도 있는 연어의 모습에서 그는 힘찬 인생의 심줄을 본다. 때론 분단의 현실과 부친의 사연에서 '...라구요' 같은 가슴 찡한 이야기를 캐내기도 하고, '삐딱하게' '태극기' '공부
8월 14일은 세계위안부기림일이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님이 최초로 증언한 날을 기념해 2012년 제정한 세계위안부기림일은 올해로 9회째 진행된다. 특히 올해는 ‘위안부 제도’의 설치도 강제연행도 부정하는 일본을 향해 김학순님이 “내가 증거다”라며 용기 있는 증언을 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30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들과 활동가, 연구자들이 세계를 다니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그 참상을 알려 왔으며, 국내에서도 수요시위나 강연, 연구 등의 활동을 통해 ‘위안부’ 제도와 강제연행에 대한 증거를
여전히 날씨가 덥다.지난해엔 장마가 너무 길어 힘들었다면 올해는 잠깐 스쳐지나간 장마 이후 불볕더위가 연일 지속되는 바람에 또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다.여름 피서지 하면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가 아마도 시원한 폭포가 아닌가 싶다.그래서 오늘은 시원한, 그것도 폭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관련된 음악을 한번 골라봤다.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은 음악사에 길이 남을 첼로 협주곡을 남겼는데 첼로 협주곡 Op.104번이다.드보르작은 이미 알다시피 최고의 걸작을 미국의 내셔널 음악원장으로 재직 중인 1892년에서 189
1994년 11월 처음 농촌으로 왔을 때,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녀 어른들의 지병이 조금 달랐습니다. 남성들은 주로 술이나 담배로 인한 간이나 폐 등의 질환이 많았고, 여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무릎 등 근골격 질환 등의 고통을 많이 호소하셨습니다. 더 나이 든 분 중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분들이 간혹 있어서 집에서 환자를 돌보느라 온 가족이 고생한다는 얘기들을 종종 듣고 보았습니다. 정확히 27년 후의 지금 농촌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뇌졸중 걸린 어른들은 집에서 모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술 담배를 하는 사람
지난달 3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대선후보 지지율을 보면 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그런데 윤석열이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내세운 '상식과 공정이 통하는 사회'가 못내 우려스럽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상식은 철저히 적자생존, 승자독식이기 때문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세계 보편적인 상식은 성립하기 어렵고 나라마다 통하는 상식이 있다. 윤석열이 말하는 상식은 한국 사회의 상식일 것이다.한국에서 상식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온갖 불평등, 불공정은 상식
어떤 현대스포츠든지 대부분 상당한 국가와 자본의 지원과 같은 기반이 갖춰지지 않으면 육성내지 유지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돈 많은 나라가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에서 강세를 보인다. 국제경기를 보면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뒷맛이 씁쓸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올림픽은 씁쓸한 뒷맛의 종합세트라 하겠다.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의 순위권은 소위 좀 산다는 나라들이 싹쓸이 중이다. 대부분의 올림픽 종목은 사회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으면 접근이 불가능한 시설 스포츠다. 우리나라에 박태환 같은
맨날 그럽니다 / 김용만소양에 온 지 삼 년오늘은 꼭 책상에 앉아야지하다가도 또 호미 들고 나섭니다맨날 그럽니다누구는 시집이 다섯 권 째고소설집을 내고무슨 상을 받았다 자랑들 해쌓지만나는 밭이 열 개 아닌가꽃 키우며 수백 마리 벌, 나비와저 앞산 끌어안고살지 않는가 그러다가도뭐 부럽기는 조금 합니다뒤란 화단에 흙을 붓다앞산을 보니잎 떨군 가지마다햇살 눈부십니다저리 홀가분하게 사는 것도괜찮을 듯합니다 *** 나는 이 시가 참 좋다. 평범하게 욕심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 놓은 시다.나는 장례식장에 근무한다. 눈만 뜨
1901년 시작되어 1905년 러일전쟁 승리 후 급격하게 증가한 일본인 이주와 외래 상품의 유입으로 진주의 상권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선진적으로 진주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통감부 시기를 거쳐 약 10여 년간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대규모 자본가로 성장하게 된다.통감 정치가 시작된 1906년 이후 진주에 진출한 기업은 본사를 외지에 둔 지점 형태의 회사들이었다. 한국권업주식회사 진주지점(1906년)과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1906년) 진주지점, 경남맥료(합) 진주지점(1914)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1910년대가 되
Music “전자음악, 자연과 음식을 만나다”'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월간 만화지 '애프터눈'에 2002년부터 3년간 연재한 작품이다. 주인공 이치코가 고향인 도호쿠로 돌아와 산나물, 채소 등으로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는 게 기본 줄거리로, 이는 이와테현 오슈시에서 겪은 작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실제 만화에 나오는 요리들 역시 대부분 작가가 만들어본 것들이다.'리틀 포레스트'는 일본과 한국에서 영화로도 나왔다. '중력 피에로', '뱀의 사람'을 연출한 모리 준이치가 메가폰을 잡은 일본
"어머이, 여기 물 부읏십니꺼?” "하, 냄비에 다마네기 놓고 소금 좀 넣고 푹 삶았다 아이가”어머님은 나와 다르게 양파를 요리하십니다. 양파철이라 텃밭에서 키운 자색양파를 원없이 먹고 있는 요즘, 양파는 볶아 먹고 샐러드도 하고 각종 끼미에 넣고 양념으로 쓰기도 하고 참으로 효자 식재료입니다. 양파 나물통이 비어갈 즈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껍질을 벗겨 두는데 어머님 손이 빨라서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벌써 한 통 채워 두십니다.어머님의 양파 레시피는 그냥 푹 삶으시는 거죠. 나는 기름에 볶다가 양파 자체에서 나오는 수분만으로도
음식의 유래나 원조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설화나 에피소드 등은 참고나 할 뿐이다. 그러나 그 음식이 유래하고 발전하고 퍼져나가며 유명해지는 데 있어서 자연지리적 조건과 역사 사회 문화적 배경을 검토해보는 것은 필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지중해 지역에 올리브 오일 요리가 발달하고 동남아 지역에 쌀음식이 발달한 것은 강수량 기온 등 자연지리적 조건 때문임이 명확하다. 반면 안동소주의 유래에는 고려시대 몽골침략의 역사가 있고, 짜장면의 유래와 대중화에는 구한말 우리의 역사와 미국의 밀가루 원조, 박정희 정부의 식량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다. 마치 중국 후한 말 혼란 시기에 황건적을 토벌하고 백성을 구하겠다며 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하던 시절처럼 대한민국 대통령을 해 보겠다고 나선 정치꾼들이 여야를 합쳐 20명을 족히 넘는다. 대한민국 변두리 시골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는 한 사람으로 지금의 대선 국면을 논할 처지는 아니지만 ‘교육’ 현장에 있는 한 사람으로 조금은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으로 2021년 지금을 보는 생각을 이야기해 본다. 대통령이 하는 일은 우리 헌법에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주요 권한 중(66조 ~85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