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치학교 ‘진주, 민주와 만나다’ 참여 소감과 후기

진주같이 시민정치학교 ‘진주, 민주와 만나다’ 4강 ‘더 나은 진주: 우리동네 문제해결’ 토론회 참가자들.
진주같이 시민정치학교 ‘진주, 민주와 만나다’ 4강 ‘더 나은 진주: 우리동네 문제해결’ 토론회 참가자들.

풀뿌리 민주주의는 소수 엘리트 정치인이 다수 민중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를 멀리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지역사회나 마을공동체의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를 함으로써 지역 공동체와 실생활을 변화시키려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특히 풀뿌리 민주주의는 자치와 분권을 통해 민주주의의 부족함을 채운다.

지역주민들이 지자체 예산 편성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예다. 점점 풀뿌리 민주주의, 즉 주민의 자치와 참여가 중시되고 강화되는 이유는 대의제의 한계와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현재의 일상적인 민주주의는 아직도 좁은 대의민주주의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인 진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수준은 어떠할까? 한 정당의 오랜 집권으로 정당 간의 견제와 협치는 물론 시민들의 참여 또한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행정의 도구로 전락한 관변단체와 행정의 돈독한 관계 사이에 풀뿌리 민주주의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 관 주도의 행정과 동원 방식의 참여는 민의를 왜곡하고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무력하게 한다.

이런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하고 민의가 잘 반영된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의회는 약하고 행정은 강한 구조에서 우리의 대리인을 잘 뽑고 의회를 감시하고 압박하면 대의민주주의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것일까? 좋은 대리인을 뽑는 일과 선거제도를 비롯한 정치개혁도 필요하지만 우리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찾아서 해결하는 높은 수준의 참여와 자치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지원을 받아 민주시민들, 진주 지역문제 해결에 답하다라는 사업을 준비했고, 그 시작으로 시민정치학교 진주, 민주와 만나다를 열었다. 지난 5월과 6월에 걸쳐 세 번의 온라인 민주주의 강의와, 7월 한 번의 토론활동을 진행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기원을 철학사에서 살펴보았고, 주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알아보았다. 주민참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타 지역의 사례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우리 지역에서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필요를 현실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세 번의 민주주의 교육이 담은 내용

첫 번째 강의에서 이상형 경상대 철학과 교수는 행복에 이르는 길 - 민주주의 공동체라는 강의를 통해 개인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개인의 고립과 삶의 의미가 축소되는 현대사회의 경향을 말한다. 시장의 확대와 공적 영역 축소로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다면서, 노동과 소비가 중요해지고 인간의 노동은 상품과 수단으로 변질된다고 한다.

하지만 시장 확대의 반대급부로 시민의 자발적 결사체인 시민사회가 등장하는데, 이 시민사회는 우정과 환대의 전통을 바탕으로 공동체와 연대를 회복하고 시장 확대에 따른 문제에 대응한다. 그래서 이상형 교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민주주의 공동체의 활성화에 있으며 개인의 자유는 집단의 가치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잘 발휘되고 집단공동체의 자치에 이르는 밑거름이 된다고 한다.

하진호 진주같이 공동대표.
하진호 진주같이 공동대표.

 

그럼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두 번째 강의인 강호진 제주자치시민연대 전 대표의 제주의 주민운동 사례와 과제는 아직 풀뿌리 민주주의 걸음마 단계인 진주가 더 나아가기 위한 실마리를 찾는 강의였다. 제주도는 적극적인 지역운동과 주민자치 활동, 참여로 의미 있는 변화와 결과를 만들어 낸 곳이다. 제주해군기지 건립 반대와 영리병원 건립 반대 같은 정책대응운동, 제주특별법 개정 운동, 시민 주도의 조례 재·개정 운동, 예산감시 및 주민참여예산제 참여 운동, 사회적경제 활성화, 4.3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주 시민사회의 단단한 역량이 드러난다.

각자 처한 정치 상황이 다르므로 직접적인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진주와 비교해 보면 주민이 참여해서 만들어내는 정책과 제안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강호진 전 대표는 제주 시민사회의 성과로 활발한 조례 재·개정 운동을 소개한다. 그동안 재·개정된 조례를 보면 친환경우리농산물·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 학자금 대출이자 등 지원 조례, 농민수당 지원에 관한 조례, 다문화가족 지원 조례, 공공산후조리원 설치·운영 등에 관한 조례, 저소득층 국민건강보험료 및 장기요양보험료 지원 조례, 사회협약위원회 조례, 등이 있었다. 주민이 직접 참여해 조례를 만드니 지역주민들이 실질적 혜택을 얻는 조례가 많았다.

반면 진주시의회는 앞선 7대 시의회(2014~2018)에 의원발의로 제정된 조례가 2건에 불과하고, 의회 주도로 조례가 재·개정되어도 진주시의 집행 의지가 약해 큰 효과를 얻지 못한다. 진주시는 2019년부터 주민참여예산제를 시작했는데 총 예산 규모가 15억 원 수준으로 제주도의 200억 원 규모에 비하면 아직 시작단계라 볼 수 있다. 민의를 대표하는 의회와 집행하는 행정 사이의 관계를 의미 있는 상호 작용이 가능하게 재정립해야 하고, 지방정부 공무원들도 주민자치 시대에 맞는 의식의 전환과 역량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번 강의를 통해 제주도의 정치시민연대인 제주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주같이와 성격이 비슷한 제주가치와 앞으로도 풀뿌리 민주주의 네트워크의 모범사례를 나누고 전파하는 교류와 연대를 약속했고 더불어 자치, 분권 시민참여, 권력 감시 등 풀뿌리 정치에 관심이 있는 지역 단체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누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세 번째 강의인 이후연구소 하승우 소장의 절반의 민주주의와 지방소멸 괴담에서 하승우 소장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절반의 민주주의라고 표현한다. 우선 경제민주화의 실패로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어 올바른 민주주의 실현이 어려워지고 있다. 지방자치의 축소와 왜곡으로 수도권 비수도권 격차가 커져 대한민국이 두 개로 나뉘었고, 정치적 측면에서도 민주주의의 비례성이 약해 도시 중심으로 자원이 분배되니 대의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4대 기득권 관변조직(새마을, 바르게살기,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이 지역 정치를 장악하면서 남성 중심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이렇듯 완성되지 않은 절반의 민주주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계층 간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지방소멸 괴담이라는 표현에 담긴 뜻도 흥미로웠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시작된 지방소멸론은 중간 정도 크기의 대도시와 거점도시를 만들어서 지방의 소멸을 막아야 한다는 이론이다.

한국에서도 이 이론은 큰 화제가 되었다. 하승우 소장은 지방소멸론이 좁은 범위의 가임기 여성을 중심에 놓고 본 미래예측이고, 한국 실정에 맞지 않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더불어 지방소멸론은 지방 소멸을 막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서열화와 빠른 소멸을 주도하는 효과를 낳고, 인구감소계획을 이용해 개발계획을 세우는 신자유주의적 전략이 숨어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지역에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의사결정을 통해 정치의 효능감을 높이고 광역화보다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구조까지 세분화하는 것이 지역을 살리고 지방소멸을 막는 길이라고 하승우 소장은 말한다.

 

‘더 나은 진주: 우리동네 문제해결’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분반토론을 하고 있다.
‘더 나은 진주: 우리동네 문제해결’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분반토론을 하고 있다.

주민자치, 민주주의에 이르는 길

네 번째 시간, 세 번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은 시민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특성과 만들고 싶은 마을에 관해 토론했다. 시민 스무여 명 남짓이 모여 그린 새로운 동네의 모습은 기대와 설렘을 품게 했다. 참여하는 시민이 지역을 바꾼다는 점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토론을 통한 시민의 역량 강화가 바로 주민자치제와 풀뿌리 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지역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 경험과 역량으로 우리 지역이 가지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유지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지역사회의 민주주의를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역할을 해야 할 풀뿌리 민주주의 조직인 주민자치회의 현실은 요원하다. 아직 대부분의 주민자치회가 주민 참여를 통해 자치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행정의 지침을 처리하거나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는데 급급하다. 주민자치회가 향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법적 지위를 회복하여 명확하고 실질적인 역할 정립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

주민은 지역에서 관리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며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풀뿌리주민자치의 주체일 때 실질적인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소속감도 강화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은 국가 전체의 민주화에도 기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민주주의는 힘이 세다.

전하는 말: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는 이번 경험을 토대로 진주를 권역별로 나누어 주민 반상회를 엽니다. 주민 반상회는 동네의 문제와 대안을 시민들이 직접 찾는 활동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820일 금요일 주민자치에 관한 온라인 강의를 시작으로 격주 금요일마다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문의: 010-9770-8603 진주같이 사무국장 박태영)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