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냉면에 전통과 원조가 있기는 한 것인가?
음식이란 본래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이다. 맛이나 영양은 그다음의 일이다. 쌀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한반도 북부, 그나마 농사가 가능했던 메밀에서 녹말을 뽑아 만든 음식이 메밀국수였다. 메밀국수의 녹말은 쌀과 밀이 귀한 지역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칼로리 공급원이었다.
사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국수는 맛과 영양에 문제가 많은 음식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한 칼로리 공급이 주된 목적인 국수사리는 맛도 없는 탄수화물 편중의 영양 불균형 식재료이다. 그래서 맛과 영양 균형을 위해 육수와 고명이 더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육수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도 이렇게 국수(사리)가 맛이 없고 영양 불균형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국수는 지역 차별과 양반 계급 내의 권력 투쟁 그리고 일제 강점기 도입된 냉장기술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평양냉면, 함흥냉면, 진주냉면, 부산밀면 등으로 분화되고 지역화되어 간다. 그것은 사리와 고명과 육수가 지역과 시대의 상황을 반영해서 변했다는 의미이고 그에 따라 맛도 다양하게 변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시대를 반영하고 지역과 주변 환경을 반영하여 수시로 변화 발전하는 음식문화에서 전통은 무엇인가?
이렇게 변화 발전 속에 있는 세상 모든 음식에는 사연이 없을 수 없다. 냉면이라고 그런 사연이 없겠는가? 냉면 하면 육수가 좌우하고 육수 하면 유독 MSG가 생각난다.
일본 '스즈키 제약소'는 1909년 세계 최초로 MSG를 상품화하여 '맛의 근본'이라는 뜻의 '아지노모토'(味元)를 출시한다. 냉면의 육수를 내는 것이 보통 힘든 과정이 아니다. 그래서 스즈키 상점 경성 사무소는 조선의 냉면집을 아지노모토 판매 중요 대상으로 정한다. ‘육수를 내는 수고를 아지노모토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판매 전략이었다. 1932년 “평양에서 32인의 냉면집 주인을 묶어 ‘평양 면미회’를 결성”하고, 신문같은 광고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등 냉면 육수에 아지노모토를 넣고자 하는, 집요했던 그들의 노력은 성공한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아지노모토는 물러갔지만 '미원'과 '미풍' 그리고 '다시다'라는 이름으로 MSG는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일제시대 이후의 냉면은 아지노모토 즉 MSG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MSG를 사용하면 사용한다고 불신했고 사용하지 않으면 '개미('감칠 맛' 또는 '깊은 맛'을 뜻하는 지역어)가 없다'는 고객의 불만을 감수해야 했다.
이렇게 냉면은 시대의 격랑 속에서 MSG라는 사연 하나를 몽고반점처럼 지니고 있다.
진주냉면도 당연히 시대와 지역을 반영하는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함께 시작한 MSG뿐만 아니라, 양반의 권력 투쟁과 기생문화, 일제 강점기 권번과 한량의 음주문화, 중앙시장의 화재와 진주냉면의 단절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요구에 의한 진주냉면의 복원과 부활, 원조 논쟁과 주도권 싸움이라는 사연들도 있다. 이렇게 진주냉면에서 그 사연은 몽고 반점 같은 보일 듯 말 듯한 흔적이 아니라 시커먼 피멍이다.
과거의 진주냉면이 당시 구할 수 있었던 식재료와 먹는 사람의 입맛, 당시 사정에 따라 만들어졌다면, 지금 우리에게 그때의 진주냉면은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 국수 재료가 변했고 육수와 고명과 양념과 조미료가 변했고 거기에 따라 입맛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변하지 않고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라는 의미의 전통은 음식에서 무의미할 수도 있다. 특히 역사적 이유에서 진주냉면은 음식 문화 전통과 원조가 이어져 올 수가 없었다.
진주냉면의 역사는 계승의 역사이기보다는 단절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멸망과 함께 교방의 진주냉면은 단절되었고, 해방 후 요정, 유곽 등 왜인의 음주문화와 함께한 진주냉면은 단절되었으며 중앙시장의 화재와 함께 부유층 별식 진주냉면은 소멸되었다. 1960년대 이후 진주냉면의 명맥은 끊겼고 레시피도 사라졌다. 이렇게 진주냉면에는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이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진주냉면의 원조임을 내걸고 전통을 영업전략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중해야 한다. 진주냉면의 명성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영업수단으로 전락한 진주냉면의 원조 논쟁과 주도권 싸움은 사라져야 한다.
진주냉면의 역사 또는 전통은 굳이 숨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다. 교방이나 권번의 기생들을 끼고 음주가무하며 놀던 양반 권력자나 한량의 유흥별식 해장음식 문화가 무슨 자랑할 만한 것인가? 일제시대 왜인, 지주들의 고급 별식이 무슨 내세울 만한 전통 음식인가? 화재로 몇몇 냉면집이 불탔다고 명맥이 끊길 정도면 그것을 음식문화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진주냉면에는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음식 문화라는 것이 있다고 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진 원조는 아예 있지도 않다. 진주냉면에는 기생과 함께하는 '유흥문화'나 해장을 위한 '선주후면'이라는 전통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원래 음식의 출발과 유래라는 것이 왕이나 귀족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아니라면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은 많지 않다. 음식이란 생존과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것이다 보니 대부분 출발은 절박하고 비루하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나는 산물을 기반으로 하는 지리적 배경을 가진다. 그러나 진주냉면은 출발부터 화려했으며 메밀 생산이 미미했던 지역에서의 메밀국수라는 의외성을 가진다. 진주냉면의 출생과 성장 비밀은 지역차별이라는 사회적 배경과 권력투쟁이라는 정치적 배경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대가 변하고 사회적 정치적 배경이 변하자 자연스레 소멸하게 된 것이다.
2000년대에 복원 또는 부활한 진주냉면은 예전의 진주냉면과는 시대적 배경과 정치사회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 예전의 진주냉면이 접대와 로비를 위한 수단 중 하나였고, 한량과 왜인의 음주 후 야참이었으며 지주와 가진 자들의 여유로운 별식이었다면, 지금의 진주냉면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에너지와 즐거움을 보장하는 한 끼 식사이다. 과거의 진주냉면과 현재의 진주냉면은 식재료와 레시피라는 몸이 다르고 역사적 배경과 음식의 목적이라는 마음이 다른 동명이인이다. 만에 하나 진주냉면에 전통과 원조라는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중에 기반하지 못한 허약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음식문화의 본질은 퓨전이다. 전통과 다양성, 맛과 건강의 줄타기이다. 그럴 때 음식은 몸과 마음에 풍부한 자양분이 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이다.
일본의 면요리는 지역마다, 가게마다 그 다양한 식재료와 풍부한 맛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음식 문화가 되었다. 다양한 지역과 다양한 민족의 음식 문화가 만나 부딪혀 퓨전된 미국의 음식도 식재료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고 풍부한 맛과 즐거움과 행복을 제공하고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진주냉면' 또는 '진주의 냉면'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지금의 진주냉면이 개인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든 2000년대 들어 관 주도로 복원되었든 완벽한 복원은 있을 수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중국의 '작장면'을 우리의 '짜장면'으로 만들었듯이 '조선'의 진주냉면을 '21세기'의 진주냉면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면발의 기본은 메밀, 밀, 녹두 그리고 감자, 고구마, 칡 등에서 뽑아낸 녹말 즉 탄수화물이었다. 비만 당뇨 등 대사성 질환이 유행인 오늘날에는 탄수화물 편중인 식재료는 큰 단점이다. 영양과 맛을 육수와 고명, 양념만으로 보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국수의 주된 식재료인 녹말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영양학과 식품공학의 힘을 빌려 새로운 영양 구성과 식감의 면재료를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혁신이고 재창조이다.
진주냉면은 더운 여름 또는 힘든 노동 후의 새참 또는 원기회복 음식으로, 회식 등 과음 후의 해장음식으로 딱이다. 본래 양반들의 새참으로 한량들의 유흥별식과 해장음식으로 발전해왔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미 식재료와 영양 구성이 그렇게 맞추어져 있다. 이런 것이 재해석이다.
진주냉면은 역사이고 문화이지 전통과 원조라는 앙상한 고집이 아니다. 지난시기의 진주냉면 문화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시대와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진주냉면과 음식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즐기며 대중화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의 진주냉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