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달라진 세상의 표징

얼룩말에 집착하고 짜장면과 초코파이에 넋을 잃는 5살 지능의 20살 청년 얘기를 그린 영화 「말아톤」은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영화는 실화를 토대로 한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기자 조승우 김미숙 등의 열연에 힘입어 2005년 개봉 50일 만에 500만이 넘는 흥행기록을 세웠다. 본시 ‘장애’를 주제로 다룬 영화란 것이 그 품은 의도는 갸륵하나 막상 상영관에 올리면 죽을 쑤기 마련인데 이런 반응을 얻은 것은 전에 없던 놀라운 일이었다.

영화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실존 마라토너 배형진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배형진은 2001년 19세로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대회에서 42.195㎞를 2시간 57분 7초에 완주했다. 2002년 8월 25일 강원도 속초에서 개최한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여 수영 3.8㎞, 사이클 180.2㎞, 마라톤 42.195㎞를 15시간 6분 32초에 결승점을 통과, 국내 최연소&장애인 최초 철인에 올랐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마라톤이니 철인 3종이니 하는 것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종목이다. 엔딩라인까지 도달하기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하므로 굽히지 않는 자기 신념과 의지가 남달라야 한다. 건강한 성인 남자가 도전하기에도 특별한 각오와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을 발달장애를 겪는 무명의 청년이 해낸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다.

정신이나 신체의 상태가 나이만큼 발달하지 않거나 더딘 상태를 말하는 발달장애란 그간 “바보 병신 머저리 천치....”등의 갖은 모욕적 칭호로 불리다 2,000년에서라야 장애인복지법이 만들어지며 그 유형 규정이 정의된 애 터지는 용어다.

가족 중 ‘아픈 아이’가 있다 함은 한국 사회에서는 ‘재앙’이다. 의당 어미 된 이는 자식의 치유를 위해 백방으로 뛰며 혼신의 힘을 다한다. 오롯이 부모의 탓으로 귀책되는 이 ‘사변’을 극복키 위해서 시간과 돈은 필수이니 그 뉘든 거기 끄달려서 온전하긴 어렵다. 그 고난의 시간을 버티다 버티다 끝내 가족공동체가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청년 형진이네 가족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자는 특별했다. 그들의 처절한 역경기가 지닌 진실함과 위대한 ‘엄마’의 가없는 사랑이 드러난 수기는 영화에 그대로 투사돼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람들은 마치 이제야 깨달은 듯 ‘장애’에 대해 무지하고 야박한 ‘세상’을 성토하고 소통을 말하고 차이와 차별에 대해 말했다.

‘치매’라는 질환이 그렇듯이 특히 ‘발달장애’를 겪는 아이를 가족 단위에서 알아서 돌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두루 살펴보건대 이른바 ‘잘 사는 나라’의 특질이란 국가가 그들의 몸을 직접 돌보고 시민사회는 그들의 정신을 따뜻이 위무하고 보듬는 것이더라. 그러나 우리의 국가 명색은 여태 그들 소수자를 돌아볼 여유나 겨를이나 관심조차 없었다. 대중 또한 그들을 가혹하게 격리하고 차별하고 멸시했다.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잠시 그걸 되돌아보게 한 것이다.

2003년 ‘형평운동기념사업회’가 실질적 인권운동을 나서자는 기치로 재창립을 선포하며 첫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장애인식개선」 운동이었다. 마침 초등학교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하고 특수학교와 일반 학교의 어린이와 부모님들을 만나 서로의 고충을 나누던 와중이라 ‘말아톤’의 성공은 매우 반가웠다. 저자인 박미경 여사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에겐 깊은 위로와 공감의 자리였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세상은 형진이가 장애를 이긴 성공한 마라토너라 연일 찬사를 쏟아내지만, 형진이는 5살에서 한 치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장애아를 둔 모든 엄마의 하소연이 그렇듯 “아이를 보내고 난 다음날 죽고 싶다는 평생의 소원”은 그녀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이었다.

“아니 간담회인데 얘기를 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경상도에서 빨갱이 소리 들어가며 촛불 들며 새 정권 탄생을 기대했는데..... 포용 국가는 아주 떨어진 어촌 같은 곳에 사는 중복장애인들도 함께 잘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청와대에서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이란 걸 직접 발표하고 부모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는 사실은 그쪽을 수십 년 주시하던 눈으로 보기엔 놀라운 일이다, 그렇거니와 대통령의 발언 순서까지 막으며 저런 거침없는 발언이 용인되는 것 또한 놀랍다. 묵묵히 듣던 대통령이 아이들의 현실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말하던 중 잠시 목이 메는 광경을 봤다. 달라진 세상의 확연한 표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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