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기의 미음완보] 벚꽃은 져도 사쿠라의 계절은 남아

"4월은 사쿠라를 몰아내고 진짜배기를 찾아나갈 기회" 이우기 칼럼니스트l승인2018.04.03l수정2018.04.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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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현재, 온 세상이 벚꽃 천지다. 대개 봄꽃들이 그러하듯이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운다. 대개 봄꽃들이 그러하듯이 한꺼번에 일제히 흐드러지게 핀다. 엄동설한을 이겨낸 삼라만상에 승리의 환희를 전한다. 매화, 개나리, 산수유 들이 봄 전령사라면 벚꽃은 봄의 절정에 점을 하나 찍는다. 점이 너무 많아 탈이라고 할 정도다.

진주시 신안동, 평거동, 판문동, 이현동에 걸쳐 있는 석갑산, 숙호산, 판문산은 한두 시간 잠시 잠깐 돌아다니기 좋은 뒷동산이다. 신안동 숯골에서 석갑산 품으로 들어가자면 편백나무 숲이 우렁차다. 겨울에는 편백나무가 푸르구나 싶은데 봄이면 거무튀튀하게 보인다. 탁한 빛 편백나무 숲 사이사이에 벚나무 몇 그루가 들어앉았다. 벚꽃이 비춰주는 빛깔은 환하게 밝고 향기는 아찔하다. 편백나무는 화룡점정을 안고 있다. 벚나무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 가운데 최상급이다.

요즘 이런 말을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더러 있겠지만, 우리는 벚꽃을 ‘사쿠라’라고 했다. 대학생 시절엔 그랬다. 사쿠라는 일본말이다. 사쿠라는 거짓, 가짜, 속임수 따위 나쁜 뜻으로 쓰는 말이었다. 원래 벚꽃의 꽃말은 순결, 절세미인인데 어쩌다 나쁜 뜻을 간직하게 됐을까.

벚꽃, 즉 사쿠라는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말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진해에서 해마다 4월 초 열리는 군항제를 장식하는 꽃은 벚꽃이다. 현재 진해는 그야말로 벚꽃이 ‘천지삐까리’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 국민성ㆍ민족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본 국화인 벚꽃을 의도적으로 많이 심었다는 말도 떠돌았다. 과학적ㆍ역사적 근거를 따지기보다는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벚꽃을 매우 좋아한다. 일본에서 사쿠라는 번영과 부를 상징한다고 한다.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사쿠라처럼 지는 것을 산화(散華)한다고 하는데, 천황을 위해 사쿠라 꽃잎처럼 진다는 뜻이다. 가엾은 병사들의 목숨을 봄바람에 흩날리며 흩어지는 아름다운 벚꽃잎에 비유하는 일본 사람들의 끔찍한 상상력에 고개를 젓는다.

‘다음’ 국어사전에서 ‘사쿠라’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여당과 내통하는 야당의 사이비 정치인이나 사기를 쳐 그릇된 짓으로 남을 속이는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너 같은 사쿠라와는 다시 상종을 하나 봐라.”라거나 “그는 낮에는 야당 의원으로 처신하다가 밤에는 여당 인사와 협잡을 한 까닭에 사쿠라로 지탄을 받았다.”라는 보기글도 나온다. 사기꾼, 야바위꾼을 유의어라고 알려준다.

더 깊이 찾아가 보면 몇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재운, 유동숙, 박숙희가 지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를 보면 어원은 ‘사쿠라니쿠’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색깔이 벚꽃과 같이 연분홍색인 말고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고기인 줄 알고 샀는데 먹어보니 말고기였다. 즉, 겉보기는 비슷하지만 사실은 다른 것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소고기는 몇 번 먹어봤지만 말고기는 먹어본 적이 없다.

어떤 정치인이 자기 진영을 배신하고 상대방으로 투항하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그의 등에 비수를 꽂듯 “너는 사쿠라야!”라고 비난한다. ‘배신자’, ‘변절자’라는 낙인을 찍어주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말을 쓰는 사람, 정치인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이합집산과 이전투구, 합종연횡이 횡행하는 시대인데도 이 말이 자주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일본말 찌꺼기를 어지간히 몰아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겐세이’라는 말이 모처럼 새롭게 등장하긴 했지만.

어떤 분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 3대 사쿠라 정치인 누구인가? 과거 3대 사쿠라: 이철○ 신민당 전 총재, 이민○ 신한민주당 총재, 이만○ 한국국민당 총재, 현재 3대 사쿠라: 손학○ 민주당 대표, 이인○ 전 민주당 대표, 이회○ 자유선진당 총재. 본인의 정치 모색을 하기 위해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리는 정치인” 동의하거나 말거나...

이런 언론 제목도 보인다. ‘홍준표 대표 "잔박들, 원조 사쿠라들처럼 숨어서 공작"’(일요신문), ‘박지원, 정우택 ‘사쿠라’ 공격에 “홍준표 말엔 아무 말 않더니...”(폴리뉴스), ‘정동영 "내가 당선돼야 '안철수당' 벗어나..사쿠라 버려야"’(세계일보), ‘한완상 "야권연대 거부하면 사쿠라 세력"..안철수 맹비난’(조선일보) ‘사쿠라’라는 말은 아주 좋지 않은 뜻으로 가끔 쓰인다. 젊은 정치인들보다 나이가 좀 지긋한 정치인들이 끌어다 쓰는 말이다.

벚꽃은 3월 말에 피기 시작하여 4월 중순쯤이면 다 진다. 남부지방 기준이다. 서울에서는 4월 첫주에 피기 시작하여 중순쯤이면 대개 다 진다. 벚꽃이 지기 전에 잎이 나기 시작한다. 연둣빛 나뭇잎과 연분홍빛 벚꽃잎이 적당히 뒤섞여 자아내는 그림은 수채화 같다. 봄 고개 너머 여름으로 치닫는 계절의 갈림길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주 내도록 절정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어디로 가든.

벚꽃 피는 4월은 우리에게 혁명의 계절이다. 4ㆍ19 덕분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것도 모자라 민족을 배반하기조차 한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 거대한 힘은 4ㆍ19에 집약됐다. 장면 정권이 자리를 잡았으나 일제 앞잡이 군인이던 박정희가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혁명은 물거품이 되었다. 사쿠라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4월은 우리에게 슬픔의 계절이다. 온 세상이 화려한 꽃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 이제 겨우 4년이 지났다. 4월 16일 침몰하는 배 속에서, 차라리 여유를 갖고 농담을 던지던 그 학생들, 그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잊어서는 안 된다. 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따져 물으려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깔아뭉개고 묵살하던 사쿠라 집단이 아직도 제1 야당입네 하며 큰소리치는 세상이다.

4월은 우리에게 사쿠라를 몰아내고 진짜배기를 찾아나갈 기회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4년마다 열린다.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지 못하는 정치집단 또는 권력집단인 국회의원을 물갈이할 기회가 있다. 지방의 일꾼(이라고 쓰고 권력이라고 읽는)들도 선거는 4년마다 6월에 하게 되는데 4월에는 진짜배기와 사쿠라가 뒤섞여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정말 우연하게도 대통령 선거도 5년마다 5월에 치른다. 역시 4월은 선거열기가 가장 뜨겁게 달아오를 때이다. 촛불혁명은 2017년 4월을 사쿠라 없는 계절로 이끌었으나 벚꽃잎이 다 지기도 전에 벌써 사쿠라가 발호하고 있다.

혁명을 뒤집고 슬픔의 눈물조차 마음대로 흘리지 못하게 하던 모든 사쿠라는, 벚꽃잎이 봄바람에 휘날리고 봄비에 젖어 떨어져 흩어지듯 모두모두 사라져 버려야 한다. 국민을 위합네, 시민을 위합네, 도정을 발전시킵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붙여 우리를 유혹하더라도, 냉정을 되찾고 이성을 되찾아 냉철하게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다. 사쿠라의 속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4월 4~5일 온 나라에 비가 온단다. 봄비에 맞아 속절없이 떨어지는 벚꽃잎들이 도로 귀퉁이에 흘러가는 모습은, 쓸쓸하다. 한때 화려하게 타올랐다가 그 짧은 영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는 봄꽃들의 모습, 특히 아찔하게 어지럽도록 온세상을 점령한 듯 하다가 무너지는 벚꽃의 몰락은 처참하다. 벚꽃은 그렇게 가도 버찌가 남는다. 사쿠라는 그렇게 가면 무엇이 남을까.


이우기 칼럼니스트  yiwoog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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