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편에서 계속]

하필이면 굉장한 남자친구(someone substantial)인 외교관 드와이트가 청혼을 하던 그 순간 재스민에게 공황장애 발작이 찾아온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몸이 심하게 떨리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재스민은 심호흡을 하며 자낙스 1알을 다급하게 입 안에 넣는다.

재스민이 복용하는 약 중 프로작은 약학뿐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년이면 시판 서른 돌을 맞이하는 프로작은 이전 항우울제보다 부작용이 적고 하루 한 번 복용으로 복약 순응도가 높아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치료에서 ‘프로작 혁명’을 일으켰다.

프로작의 성분은 플루옥세틴(fluoxetine)으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e reuptake inhibitor; SSRI) 계열 약물이다. 프로작은 중추신경계에서 세로토닌의 활성을 높이는 기작을 통해 우울증,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등을 치료한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프로작은 다른 약과의 상호작용이 많아 여러 가지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자낙스 역시 프로작과의 상호작용으로 약효가 필요 이상으로 증강되어 병용 시 자낙스의 부작용이 두드러질 수 있다.

프로작의 특이 부작용으로 불안, 불면, 신경불안이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의 치료효과는 투약 후 최소 4-8주가 지나야 나타난다. 프로작은 자낙스보다 치료효과가 늦게 나타나지만 재스민의 사례와 같이 우울증을 동반한 공황장애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우수한 효과가 있다.

자낙스는 1981년 미국에서 시판한 이래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항불안제제이다. 자낙스의 성분은 알프라졸람(Alprazolam)으로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계열 약물이다. 부작용으로는 졸음, 운동실조 등의 중추신경억제작용, 전향기억상실이 대표적이다.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을 장기간 사용할 경우 인지기능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재스민이 대학시절에 줄곧 A만을 받았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컴퓨터를 배우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으로 그 부작용을 실감할 수 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의 경우 치료를 갑자기 중단할 경우 불안, 초조, 불면 등의 금단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서서히 용량을 줄여가며 끊어야 한다.

재스민이 마티니를 찾듯이 우울증 혹은 공황장애 환자들은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은 알코올 또는 약물의존성 환자에게서 금기이니 주의가 필요하다.

우울증, 공황장애,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 환자들이 먹는 약물의 제형은 보통 구강붕해정이다. 재스민이 복용하고 있는 자낙스도 그러하다. 구강붕해정은 물 없이 복용 가능하며 입 안에서 재빨리 녹아 빠르게 흡수되고 약효도 빠르게 나타난다.

정신질환 환자들은 대개 삼킴 곤란 장애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자신의 질환을 인정하지 않아 약물 복용을 꺼려하고, 어떤 경우는 약을 삼킨 척 했다가 다시 뱉는 경우도 있다.

극심한 우울증을 겪은 앤드류 솔로몬은 그의 저서 『한낮의 우울』에서 “(우울증 환자가) 약물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현대적인 전투에 말을 타고 나서는 것처럼 어이없고 자기 파괴적인 태도”라고 못박는다. 구강붕해정은 이러한 환자들에게 전투에 맞설 탱크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영화의 끝자락에 모든 것을 잃은 그녀가 처음 등장할 때와 똑같은 차림을 하고선 벤치에 앉아 가만히 읊조린다. 프로작과 자낙스의 오랜 복용으로 공황장애와 우울증의 증상 치료만 행해질 뿐 심리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녀는 혼이 거의 빠져나간 상태이다. 우울증은 약물치료 시에도 증상 완화와 악화가 반복된다고 하니 재스민의 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울증의 감정적 증상인 자살 유혹이 그녀에겐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을 블루 재스민에서 골드 재스민으로 바꿔줄 다른 남자를 찾아 헤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녀를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대개의 경우 공황장애와 우울증 환자에게는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스민은 삶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앤드류 솔로몬은 『한낮의 우울』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당신이 우울증을 겪으며 보내는 순간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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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Lippincott Illustrated Reviews: Pharmacology 6th edition.
      2. Pharmacotherapy: A Pathophysiologic Approach, 8e.
      3. 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영화] 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 
•각본 및 감독: 우디 앨런
•주연: 케이트 블란쳇 (재스민 役), 알렉 볼드윈 (할 役), 샐리 호킨스 (진저 役), 바비 카나베일 (칠리 役), 피터 사스가드 (드와이트 役)
•수상 이력: 제 6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케이트 블란쳇), 제 8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케이트 블란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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