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 확인 후 비용 지급 거부는 ‘부당 관행’
디자인 업계 오랜 관행에 작은 ‘균열’
창작노동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지역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시안 제작 비용을 두고 식당업주와 갈등을 겪은 끝에 법원의 일부 인정을 받아냈다.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은 지난 11월 4일, 시안비 청구 사건(2024가소3251)에 대해 민사소송법 제110조 1항, 제112조를 근거로 B씨가 A씨에게 소송비용 99,074원을 상환해야 한다고 결정했으며, 앞서 법원은 시안 디자인 제작비 6만원 지급을 명령했다.
법원은 완성되지 않은 작업이라도 경제적 가치가 존재한다며 시안비 일부를 인정했고, 소송비용 역시 업주가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A씨는 한식당을 운영하는 B씨로부터 메뉴판·간판 등 홍보물 디자인 시안을 요청받고 여러 차례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작업이 약 70% 진행된 시점에서 B씨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비용 지급 자체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문서로 계약서를 작성하진 않았지만 구두 합의도 법적 효력이 있다”며 “작업물을 확인하고도 비용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명백한 부당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5만원이라는 비용보다, 업주와의 다툼에서 오간 인신공격성 발언과 막말이 더 큰 상처였다”며 소송을 결심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지역 프리랜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이 낯설지 않다는 반응이다.
홍은희 디자이너는 “의뢰 단계에서 “시안부터 보내라”, “마음에 들면 쓰고 아니면 말자”는 요구가 관행처럼 자리 잡아, 작업물을 먼저 받아본 뒤 비용 여부를 뒤늦게 결정하려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디자인 업계 종사자 C씨는 “시안은 단순한 초안이 아니라 창작의 결과물로 그 자체에 비용이 발생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며 “아이디어를 먼저 받아본 뒤 계약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태도는 창작노동을 ‘서비스가 아닌 호의’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디자인 시안은 완성 전 단계일 뿐이지, 창작 과정의 일부이자 결과물이라는 점을 법원이 다시 확인한 것”이라며 “거래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이미 제공된 노동에는 정당한 대가가 발생한다는 원칙을 인정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편, B씨는 이에 대해 “판결문을 보면 20만 원의 소액재판 비용 청구 부분은 상대 측에서 임의로 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