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구점숙 농부 작가
글쓴이 구점숙 농부 작가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거짓말 같이 물러가고, 예년과 비교해 살짝 높은 기온의 가을을 맞고 있습니다. 이만큼도 고맙고 또 고마워서 맨날 감탄합니다.

좋은 날씨로도 이렇게나 감동할 일이니, ‘이제 생존 외의 그 많은 인생의 목표는 조금씩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듭니다.

‘뭣이, 뭣이 중한디?’라고 말을 하는데, 사실 그래 놓고는 또 여성농업 정책에 관심을 가집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여성농업 정책 토론의 장이 중앙과 지역 등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람직하지요.

우리 삶의 변화는 때로는 단순하고도 힘 있는 주장에서도 비롯되지만, 실은 섬세하고도 정확한 정책부터 우선돼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여성농민의 요구 중 하나는 ‘법적 지위 보장’입니다.

법적 지위 보장?

여성농민은 법적 지위가 보장 안 되고 있나? 네. 상대적으로요. 어떤 점에서? 그러니까 농민의 법적 지위는 농업경영체 등록에서 시작됩니다. 농사짓는다고 다 농민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 농업경영체에 등록하려면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자신의 명의로 된 농지나 빌린 농지가 300평 이상이 돼야 하고, 연 100만 원 이상의 농업소득과 90일 이상 노동한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론 세 조건 중에서 경작면적 300평을 제일 크게 보고 있습니다. 땅이 있어야 경영체 등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럼 가족은 어떻게 되나요? 그렇죠. 문제의 핵심이 슬슬 나옵니다. 농업경영체는 가구 단위입니다. 그 속에 경영주가 있고, 종사자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전통적 농업은 경영체 단위일 리가 만무합니다. 여러 농사일 중 각자가 맡아서 하거나 협력하는 방식이지, 주 경영자가 따로 있고 다른 가족은 종사자라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다 농민입니다.

그런데 굳이 다른 산업의 형태를 빌려와서는 경영주 개념을 도입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여성농민은 확실하게 종사원 규정을 달게 된 것이고, 여성농민의 저항에 못 이겨 겨우 도입한 제도가 ‘공동경영주’입니다. 그런데 공동경영주라고 하는 것이 말만 그렇지, 실질적으로 그 개념을 법적으로 정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 이른바 농외소득 규모에 따른 법적 지위의 차등입니다.

말하자면 경영주는 농외소득이 3,700만 원 이하면 농민으로 인정받는데 공동경영주나 종사원은 소득액과 상관없이 ‘4대 보험’의 적용받는 순간 농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각종 혜택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조항의 문제점을 누차에 주장했음에도 반영되지 않고 있고, 우리도 정확한 원인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경상남도 여성농민정책토론회 자리에서 비로소 그 해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토론자로 참석한 농정과장이 경남의 여성농업인 정책을 설명하면서 공동경영주가 직장인이 되면 농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이유를 말하는데, 농사일에 연 90일 이상 종사가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하? 이것이었구나, 비로소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정책을 입안한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4대 보험’을 든 직장인은 주 5일 근무해야 하므로 농사일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중적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탁상공론이라 합니다. 농촌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으니까요.

농가의 한 구성원이, 특히 여성농민이 농외소득을 얻고자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삼중 사중의 부담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가사일·농사일은 물론이고 직장생활까지 감당해야 하니까요. 이들은 주중 낮에는 직장 일을 하게 되고, 아침저녁은 물론이고 주말에는 농사일을 하게 돼 있습니다.

농가에서 농사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여성이 얼마인지 통계를 한 번 내어 보십시오. 농사는 농민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가축이든 작물이든 간에 자율적 생명 활동을 하는 존재는 자신의 생명 양식대로 살아가니, 거기에 맞추려면 사람들이 훨씬 동동거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공동경영주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괜한 까탈을 부리지 말고 농업경영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갑시다. 농정 중에 제일 손쉽게 바꿀 수 있는 내용입니다.

* 이 글은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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