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올드’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나쁘지 않아요.”
진주 음악인들의 무대이자 라이브 펍 '우산'
천만 서울, 35만 진주. 서울은 가속의 도시, 진주는 멈춘 공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선 각자의 리듬으로 문화를 만드는 청년들이 있다.
서울에서 나는 쉼 없는 경쟁 속에 지쳐갔다. 잠시 내려 온진주에서 우연히 들어간 책방 모임은 내 시선을 바꾸었다. 떠나보니 보이는 고향 진주는 누군가와 공존하는삶의 터전이었고각자의 속도를 존중하고 있었다.그 삶은 각자 다른 속도를 가진 채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만 쫓으며 각자가 걷고 싶은 속도를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만을 목표로 한 채 자신만의 속도를 시험해 볼 기회를 놓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모임마다, 공간마다 다른 속도로 읽고 쓰고 노래하는 "내려간 삶", 진주의 생활을 인터뷰로 담았다.
번잡한 대학가 골목 안, 공연 포스터가 가득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푸른 빛의 조명이 빈 의자를 비추고 있는 스테이지 우산이 있다.
자기 노래, 자기 이야기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라는 스테이지 우산에선, “어서 오세요!” 외치는 준우 씨를 만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만남! 예기치 못한 음악, 뮤지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그런 우산이면 좋겠어요.”
가만히 자리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일어나 조명이 비치는 의자에 앉는다. 그리곤 노래를 시작한다. 한번 시작된 노래는 우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노래를 부를 때까지 이어졌다. 몇몇 곡을 낯설지만 즐겁게 듣던 중, “아무렇지 않지 못하는 일에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 만든 곡이에요.” 소개가 들려왔다.
노래가 시작되자 친구가 나에게 슬쩍 다가와 “마지막에 ‘아무렇지 않게’라고 따라 부르면 돼요.”라고 귀띔해 줬다.
곡의 막바지,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았는데 우산의 모든 손님이 큰 소리로 “아무렇지 않게”라고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엔 소심하게 듣고 있다가 이내 함께 따라 불렀다.
“우산에서 처음 악기를 잡았어요. 그게 첫걸음이었죠.”
버스킹과 카페 공연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2010년대, 진주에서도 카페 공연과 버스킹이 막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에 가야만 볼 수 있었던 공연들을 진주에서도 드디어 볼 수 있게 됐구나 싶어서 정말 신이 났었어요.”
준우 씨는 그 문화의 한복판에 있었다. 모든 진주 시내 인디 카페 공연과 버스킹 공연들을 찾아다녔다는 준우 씨는 그 당시 진주에서 음악하는 사람들 사이 매일 구경 오는 사람, 매일 집에 태워주는 사람으로 통했다.
구경하는 사람에서
노래하는 사람으로
스테이지 우산은 준우 씨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과 첫 인연을 맺은 장소이다.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했는데, 우산에서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너무 허접한 실력이었지만, 그게 첫걸음이었죠.”
그렇게 시작된 음악 여정은 본인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이제 준우 씨는 매년 하나씩 8개의 싱글을 발매한 8년 차 밴드 ‘안준우프로젝트’의 보컬이다.
스테이지 우산을 이어받은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 진주의 음악 문화를 공간에 녹여냈다. 우산은 기존의 라이브 카페라는 정체성을 넘어 진주에서 ‘독립된 음악’을 하는 사람들, 즉 자기 노래와 이야기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관객 수가 많은 것이 꼭 중요한 일인가?”
첫 음원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 나왔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고 준우 씨는 회상한다. 그때만 해도 밴드로서 라이브 공연을 계속할 수 있다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후 밴드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면서도 준우 씨에게 지방에서 음악을 한다는 일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부산에서도 불러주고 거제에서도 불러주고 대구에서도 불러주는, 이제 영남권에서는 나름 인디 밴드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위치가 되었는데 왜 아직도 진주에서 음악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나 생각해 봤어요. 관객이 서울만큼 많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것밖에 없더라고요.”
천만 서울과 35만 진주. 음악인의 숫자뿐만 아니라 관객 수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난다. 진주에서 열린 공연의 관객 수가 50명이 아닌 5명이더라도 인구수에 비례해 생각했을 때 결코 적은 수의 관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고민에 준우 씨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가, 관객이 5명이더라도 그들이 기분 좋게 떠났다면 그 공연은 의미가 있는 것일 텐데 왜 나는 50명 앞에서 하고 싶어 하는가 생각해 봤어요. 내가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더라고요. 나중엔 이런 질문도 했어요. ‘관객 수가 많은 것이 꼭 중요한 일인가?’”
많은 관객들, 그리고 그 앞에서 멋있어 보이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가는 준우 씨의 진정성 속에 있었다.
“적더라도 계속해서 불러주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음악을 하며 즐거워하는 과정과 그들을 위해 계속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을 해보자.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요.”
"한 번도 자작곡을 발표하지 못했던 사람이 여기서 처음 음원을 내고 무대에 서요."
스테이지 우산에는 그냥 손님으로 방문했다가, 한 곡 해보라는 말에 이끌려 노래를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 방 안에서 만든 노래가 스테이지 우산을 거치며 음원이 되고 무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준우 씨는 이런 과정을 함께하며 같이 성장한다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김도형 씨 같은 경우엔 처음에는 관객으로 왔어요. 기타도 못 치고 노래도 못 한다고 했죠. 그런데 한 곡 해보라고 하니까 생각보다 잘해서, 조금씩 끌어내다 보니 ‘여성의 재창조’라는 싱글 앨범도 발표하게 됐어요.”
스테이지 우산의 SNS에는 스테이지 우산을 거쳐 간 사람들의 앨범 발매 홍보 글이 가득하다.
우산에는 음악이라는 공통 분모 안에 다양한 관심사와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가끔씩은 지향점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협업하게 되기도 한다.
준우 씨가 관객들부터 프로 음악인까지 두루 가깝게 지내며 무대라는 공통점을 매개로 서로를 이어 주기 때문이다.
“음악을 전공하고 업으로 하는 분들은 사실 우리와는 결이 달라요. 우리는 돈보다 재미와 의미에 가치를 두는 편이잖아요. 사실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인데 공연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걸 매개로 사람들을 이어 주고 협업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제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스테이지 우산은 단순히 공연을 위한 공간을 넘어, 지역 음악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지향점이 다르더라도 모든 음악인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대와 연결의 기회다.
"혼자 노래하는 사람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지방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부산이나 대구 정도를 빼고는 사실상 수도권, 서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해요. 같이 음악 이야기를 하고, 공연하고, 작업할 공간이 필요해요. 우산이 조금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스테이지 우산은 진주라는 좁은 환경 속에서도 음악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능성과 유대를 만들어가는 특별한 공간이다.
스테이지 우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멋들어지고 예쁘게 잘 꾸며진 부류의 것들은 아니다. 대부분 통기타 하나와 자기 목소리로만 노래한다. 준우 씨의 표현에 따르면 굉장히 ‘올드’하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올드하지만 자신만의 속도를 지켜내는 스테이지 우산에서 사람들은 다른 손님의 노래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하며, 예기치 못한 사람과 음악을 만난다.
이 글은 2025.03.04.에 발행된 성균관대학교 교지 『성균지』 제112호에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