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계곡 탐방을 마치고, 지리산 둘레길 걷기를 다시 시작한 136차 초록걸음은 하동 신촌마을에서 출발해 해발 768m 구재봉을 넘어 활공장을 지나 대축마을까지 걷는 코스였다. 막 시작된 가을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발걸음이었다.

구재봉 활공장에서 섬진강과 악양 들판을 배경으로 케이블카 반대 펼침막을 펼치다.
구재봉 활공장에서 섬진강과 악양 들판을 배경으로 케이블카 반대 펼침막을 펼치다.

이번 구간은 지리산 둘레길 12코스로, 기존 코스인 먹점재 대신 새로 낸 구재봉 정상 코스를 택했다. 난이도 ‘상’에 속하는 험한 길이다.

신촌재로 향하는 길동무들, 뒷모습이 더 아름답고 정직하다.
신촌재로 향하는 길동무들, 뒷모습이 더 아름답고 정직하다.

지리산 둘레길 21개 구간 중 가장 힘든 구간 세 곳이 있는데, 산청 어천마을에서 웅석봉 오르는 길, 하동 원부춘에서 형제봉 가는 길, 그리고 신촌재에서 구재봉 오르는 길이다.

이 중 신촌재~구재봉 구간은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구재봉 활공장에서 미점마을로 내려가는 길 또한 가팔라 무릎에 큰 부담을 주는 구간으로 유명하다.

초록 숲이 배경이라 더 아름다운 길동무들
초록 숲이 배경이라 더 아름다운 길동무들

하지만 구재봉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건너 백운산과 광양만, 활공장에서 바라보는 섬진강과 평사리 백사장, 악양 들녘 풍경은 힘든 발걸음의 고단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교통의 요충지인 신촌재에 도착한 길동무들
교통의 요충지인 신촌재에 도착한 길동무들
생명 평화 문양이 새겨진 돌의자에서 다정하게 휴식 중인 배낭들
생명 평화 문양이 새겨진 돌의자에서 다정하게 휴식 중인 배낭들

신촌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신촌재에 도착한다. 신촌재에는 교통의 요충지처럼 복잡한 이정표가 서 있었고, 돌의자에는 지리산 둘레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생명·평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여러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인드라망처럼, 지리산 둘레길 또한 생명의 그물처럼 이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촌재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구재봉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저 멀리 광양만을 바라보며 긴 호흡 들이키는 길동무
저 멀리 광양만을 바라보며 긴 호흡 들이키는 길동무

신촌재를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나 구재봉 돌무덤 봉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섬진강 건너 백운산과 광양만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지리산 둘레길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조망이었다. 구재봉 정상이 바로 옆이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반찬 삼아 점심을 먹고 시와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재봉 정상 돌무덤에서 시와 음악을 감상하다.
구재봉 정상 돌무덤에서 시와 음악을 감상하다.

이번 초록걸음에서는 며칠 전 96세 일기로 별세한 이생진 시인을 기리는 특집으로, 그의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 4』와 『술에 취한 바다』 두 편을 읽고, 시에 곡을 붙여 노명희가 부른 『무명도』를 길동무들과 함께 들었다. 멀리 광양만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감상하니, 시와 음악이 한층 더 애절하게 다가왔다.

구재봉 정상 표지석에서 인증샷~^^
구재봉 정상 표지석에서 인증샷~^^
구재봉 활공장에서 섬진강과 악양 들녘을 감상 중인 길동무들
구재봉 활공장에서 섬진강과 악양 들녘을 감상 중인 길동무들

돌무덤 봉우리에서 구재봉을 지나 활공장으로 향하는 길은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졌다. 구재봉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구재봉 활공장에 닿는다. 패러글라이딩 출발점이자 섬진강과 악양 들판 쪽으로 물드는 노을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활공장에서는 기존 둘레길이 지나는 미점마을 숲까지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므로, 발목과 무릎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조심히 걸어야 한다.

활공장에서 미점마을까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다.
활공장에서 미점마을까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다.
섬진강을 배경으로 9.27 기후정의행진 손펼침막을 펼치다.
섬진강을 배경으로 9.27 기후정의행진 손펼침막을 펼치다.
600년 된 문암송에서 힘든 발걸음을 마무리하다.
600년 된 문암송에서 힘든 발걸음을 마무리하다.

미점마을 숲에서 문암송까지는 완만한 임도로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길 끝에 자리한 문암송은 바위를 뚫고 나와 600년 넘게 악양 들녘을 내려다보며 마을을 지켜왔다. 수많은 시인과 묵객이 풍류를 즐겼고, 지금도 대축마을 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낸다. 가을 바람과 함께 문암송의 기운을 받으며 걸었던 8km 길은 짧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던 9월의 초록걸음을 즐겁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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