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극한의 호우로 어쩔 수 없이 취소되었던 135차 초록걸음은 8월에 다시 칠선계곡을 찾았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히는 지리산 칠선계곡에는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沼)가 있다.
천왕봉까지 오르려면 국립공원공단 예약 시스템을 통해 5월부터 10월까지 주 5일(월, 화, 금, 토, 일), 하루 60명만 접수가 가능하며 반드시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그러나 추성리에서 비선담까지는 상시 개방 구간이라 여름이면 탐방객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 초록걸음 길동무들도 오랜만에 다시 칠선계곡을 찾았다.
이원규 시인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여 부른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는 아무 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했던 그 칠선계곡. 그 시작점인 추성리 주차장에 모인 길동무들은, 7월 초록걸음을 쉬었던 탓인지 더욱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장군목으로 향했다. 장군목으로 가는 길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라 땀을 흘리며 걸어야 했고, 그 길이 오늘 여정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장군목에서 두지동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완만한 오솔길이라 그나마 숨을 고르며 걸을 수 있었다. 두지동마을은 가락국 마지막 임금 구형왕이 신라군에 쫓겨 칠선계곡 국골에 진을 치고 있던 시절, 군량미를 쌓아두던 창고가 있던 곳이다.
‘두지’라는 이름은 쌀을 담아두는 뒤주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되었다. 지금도 차량이 들어갈 수 없어 모든 생필품을 지게로 나르는, 지리산 마지막 산간마을이라 불린다. 현재는 5가구 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의 당산나무라 할 수 있는 호두나무 아래서 오미자차와 원액을 팔고 계신 윤종일 어르신은 올해 아흔 살이라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해 보였다. 30년 전 할머니와 함께 두지동에 터를 잡으셨다며 담담히 말씀해 주셨다. 직접 담그셨다는 오미자 원액 한 병을 냉큼 사 배낭에 넣고 비선담으로 향했다.
두지동을 출발해 금세 도착한 칠선교부터가 본격적인 칠선계곡의 시작이다. 이곳에서 선녀탕까지는 오르막이 이어지고 가파른 계단도 많아 길동무들로부터 원망 섞인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이 구간을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이라 부르며 동무들을 달래곤 한다. 칠선교에서 약 한 시간을 오르면 선녀탕이 펼쳐지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먹었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살얼음 낀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키니, 흘린 땀이 충분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당장이라도 선녀탕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접고, 옥녀탕을 지나 비선담을 향했다. 이 구간은 칠선계곡의 옥빛 물줄기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길이지만, 국립공원 구역이라 눈과 귀로만 즐겨야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이번 초록걸음의 반환점은 비선담 상원교였다. 이곳에서부터 천왕봉까지는 사전 예약제 구간이라 더 이상 오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려 내려오는데, 흘러내리는 땀 냄새를 상쇄시켜 주는 칡꽃 향기가 길을 채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길동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14년째 함께 걸어주는 이 동무들이 아니던가.
여정을 마무리하며 추성리 주차장 근처 새로 조성된 서복공원 계곡물에 몸을 담가 땀을 씻고 피로를 풀었다.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서 흘린 땀만큼이나 깊은 의미가 있었던 135차 초록걸음. 길동무들의 한마음으로, 우리는 변함없이 지리산의 안녕을 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