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여럿이어도 막둥이한테 더 많은 사랑이 가듯이 농사도 가장 어린 작물에, 또는 새로 심은 작물에 손길이 더 많이 가는가 봅니다. 아마도 여리고 약한 것은 더 많이 돌봐야 제대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또 익숙한 농사가 아니니 뭐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관심을 더 가져야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실 익숙하게 해오던 주 농사는 재미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그 농사를 망치거나 가격이 형편없으면 생활을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환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수확기에 접어든 마늘 농사나 한여름에 진땀을 빼게 하는 고추 농사 대신, 요새 강낭콩 농사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잔손이 많이 간다고 어른들이나 하는 농사라 하지만, 날마다 자라는 모습이 예뻐서 틈나는 대로 가보고 또 봅니다. 이유는 단 하나, 새로 짓는 농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른 봄에 농사계획을 세울 때 이런저런 농사가 적지 않아서 새로 농사를 늘리기가 부담이었는데, 새로 장만한 밭이 있고 기존의 밭을 놀리진 못해 고민 끝에 호랑이 강낭콩을 심기로 했던 것입니다. 강낭콩은 우리 지역 농민들이 더러 짓는 농사여서 경매가 이뤄지므로 판매 걱정이 덜한 작목이기도 합니다.
남해는 섬이라 소비시장이 멀기 때문에 경매가 이뤄지는 품목에 집중해서 농사를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별로 팔지 못하면 판로가 어려워 품목이 제한되는 것이 농사의 큰 어려움이지요. 날씨로 보자면 더없이 농사조건이 좋은데 말입니다.
초봄에 가물고 계속된 추위도 있어 발아와 초기 성장은 더뎠지만, 지금으로는 최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이 더없이 보기 좋습니다. 물론 농사는 입에 털어 넣어 봐야 알 수 있다고, 수확까지 3주 넘게 남았으니 그때까지는 변수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일찍부터 깨방정을 떨어서는 안 되겠지요.
올해 농협공판장으로 출하할 때는 나의 이름으로 내어볼 생각입니다. 농사일을 그렇게 많이 하고서도 내 이름으로 출하해본 적이 없으니 어찌 보면 무급종사자로 분류되는 것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애당초 남편 이름으로 출하하던 것을 굳이 내 이름으로 하려고 하지 않았고, 누구 통장에 들어오든지 간에 돈이 들어오기만 하면 그뿐이지 않나하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입니다.
여성농민 본인의 이름으로 출하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봤더니 응답자 가운데 24%(2020년 여성농민 성평등 실태조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라고 하는데, 부부가 같이 농사짓는 경우만 따로 조사된 것이 아니어서 온전히 믿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지역이나 주변 상황을 살펴보자면 여성농민 이름으로 출하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간혹 시금치를 출하할 때면 상품의 질과 경매가의 상관관계를 알고 싶어서 똑같은 상품을 부부 각자의 이름으로 내어보기도 합니다. 그러고서 가격에 차이가 나면 도매상들의 농간이 많은 것이 경매시장이라고 뒷말을 붙이기도 합니다.
규모화, 단작화된 농업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지요? 다품종 농사일 경우에는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출하방법도 다양하고, 수입의 경로도 다양해 지분이 나누어지기도 한답니다. 중요한 것은, 농협 등 경제조직에 공식적인 출하를 하냐 못 하냐의 차이는 여성농민이 공적 체계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냐, 없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성농민이 사회경제적 지위를 갖도록 유도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농업인 전담부서에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야지요. 새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부분도 섬세하게 다뤄야 할 것입니다.
© 이 글을 한국농정신문 6월 2일자 신문에 기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