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다가온 2024년의 끝자락, 그 무시무시했던 계엄의 밤과 탄핵 소추 가결이라는 격동의 시간을 겪은 후라 가슴을 쓸어내리며 길동무들과 산천재에서 중태재 넘어 하동 위태마을까지 130번째 걸음을 걸었다.
산천재를 출발, 반달가슴곰 가족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50주년 기념공원에서 ‘지리산이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 펼침막을 들고 다시금 지리산을 그대로 잘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전날 눈이 내렸던지라 산천재 앞 덕천강 돌다리를 건너면서 눈 쌓인 천왕봉을 기대했지만 구름이 잔뜩 끼어 기대했던 천왕봉 설경을 감상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천왕봉은 언제나 그 자리 그렇게 지키고 있음을... 아무튼 그 돌다리는 덕천강 그 맑은 강물과 눈 쌓인 천왕봉을 한 프레임에 넣어 사진에 담을 수 있는 풍경 맛집임이 분명하다.
덕천강을 건너면 중태마을로 접어드는데 몇 해 전 부산 물공급을 염두에 둔 중태 댐 논란이 일던 곳이기도 하다. 중태마을 초입엔 지리산 둘레길 중태안내소가 있었지만 지리산 둘레길 겨울철 휴식 기간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중태안내소를 지나 새롭게 포장된 마을 길을 따라 30여 분을 걸으니 유점마을에 도착했다. 커다란 호두나무 아래 자리한 유점교회는 토요일 예배를 보는 제칠안식일교회로 우리에게 점심 식사 자리를 허락해 주어 점심 도시락을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유점마을을 출발 중태재로 향하는 길가엔 아직 수확하지 못한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또 하나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그 감나무 옆 걷는 예빈이와 해리 자매의 뒷모습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이들과 나무 그리고 둘레길은 참 아름다운 조합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렇게 도착한 중태재는 옛날 하동 사람들이 덕산장을 가기 위해 넘던 고개다. 예전엔 중태마을도 행정 구역상 하동군 옥종면에 속했었는데 지금은 이 중태재가 산청과 하동의 경계가 되었다.
중태재에서는 준비해 간 시와 음악으로 길동무들과 함께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가졌다. 초록걸음의 교가라 할 수 있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원규 시, 안치환 노래)을 들으며 올 한 해 걸어왔던 우리의 초록걸음을 떠올려 보기도 했는데 안치환의 목소리와 바람에 펄럭이던 지리산 깃발(이호신 화백 글씨)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전에서 달려오는 길동무 박갑동 교수가 신청한 ‘벨라 차오(안녕 내 사랑)’,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 불렀다는 민중가요인데 지리산 둘레길에서 들으니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로는 도종환 시인의 ‘겨울나무’를 길동무들에게 들려주면서 시와 음악이 있는 초록걸음의 의식을 마무리했다.
중태재 넘어 위태마을로 향하는 내리막길엔 아름다운 대숲길이 우릴 반겼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나는 여러 대숲길 중 가장 아름다운 대숲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길이다. 그 대숲길에서 듣는 바람소리 또한 귀 호강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 대숲길 끝엔 위태저수지가 있어 물멍까지 즐길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게 도착한 위태마을에서 길동무들은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며 2024년 초록걸음의 대미를 장식했다. 올해도 단 한 건의 안전사고나 불상사 없이... 새해 1월과 2월은 호흡을 가다듬고 3월부터 다시 길동무들과 함께 초록걸음을 뚜벅뚜벅 걸을 것을 다짐하며 2024년의 초록걸음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