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차별과 혐오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회를 꿈꾼 형평운동이 경남 진주에서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단디뉴스는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형평운동의 과정과 역사적 의미, 지금 시대의 불형평 문제를 기획기사로 내보냅니다. 대담자로 기사에 참여한 성소수자는 본인의 이름과 얼굴을 밝혀도 무방하다고 밝혔지만, 혹시나 모를 차별과 혐오를 고려해 익명 처리합니다.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100년 전 백정처럼 오늘날 차별과 혐오를 받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성소수자들 아닐까?" 형평운동기념사업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한 원로의 말이다. 오늘날, 차별과 혐오를 받고 있는 대표적 집단 가운데 하나가 성소수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성소수자 59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1년 간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혐오를 겪었다는 응답자는 65.3%p이었다. 같은 기간 인터넷과 방송·언론, 영상매체에서 혐오 표현이나 발언을 접했다는 응답도 각각 97.1%p, 87.3%p, 76.1%p에 달했다.

모든 인간이 공평함을 누리고, 서로가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 기초해 일어난 것이 형평운동이라는 점에 착안하면, 오늘날 형평운동의 지향은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해결하는 것에 있을 지도 모른다. 경남 진주에 거주하는 성소수자 김평화 씨(24, 가명)는 형평운동이 성소수자에게 가지는 의미를 묻자 “백정들이 스스로 나서 차별에 항의하고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려고 했듯이, 성소수자들도 스스로 나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연대하며 차별과 혐오에 맞섰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성소수자 김평화(남,24/가명) 씨의 모습
성소수자 김평화(남,24/가명) 씨의 모습

△성소수자 평화 씨 - 평화 씨가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성적지향을 가졌다는 걸 인지한 건 중학교 1학년 시절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다니던 동성친구가 좋았다. 그는 “그러한 감정이 저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독교 재단이 설립한 사립중학교에 다니던 그는 동성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곧 깨달았다. 매주 있던 종교시간, 또 기독교를 믿는 선생님, 주변사람들의 혐오 발언 등을 통해서다.

그는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비정상적이다’,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함을 깨달으면서, 본인의 성적지향을 숨겨왔다. 누구에게도 동성을 좋아한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표현은 물론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되레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데 동참하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행동이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며 학창시절은 본인의 성적지향을 억누르고,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의 요구에 따르려 노력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한 정보조차 찾아보지 않으려 하며 본인의 성적지향을 부정하던 그는, 대학에 와 조금씩 달라졌다. 다수의 학생과 같은, 심지어 모범 학생으로 보이려 했던 그는 여성주의 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억눌러 왔던 본인의 성적 지향을 더 이상 억누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주변 친구들에게 조금씩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3학년이 되어서는 부모님에게도 본인의 성적 지향을 알렸다.

커밍아웃 후 크게 혐오발언이나 차별을 당한 적은 없었지만, 부모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부모에게 성적지향을 밝히자, 돌아온 첫마디는 ‘남성 파트너와 성관계를 해본 적이 있느냐?’였다. 그는 “여자친구가 생겼다면 부모님의 첫 물음이 ‘성관계를 해본 적이 있느냐’였겠냐”며 "이 같은 물음이 돌아온 것은 부모님마저 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후 지금까지 부모님과의 관계가 다소 서먹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평화 씨는 그럼에도 운이 좋은 편인지 모른다. 커밍아웃을 한 후 지인들 사이에서 큰 갈등이나 혐오는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소식이 끊겼다가 관계가 회복된 경우는 있었지만, 심각한 차별과 혐오는 없었다. 다만 ‘종북 게이’라는 모욕적 메시지를 받아보기는 했다. 퀴어 축제에 참석한 사진을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렸을 뿐인데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이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 혐오가 그만큼 심각함을 드러내는 사례이다.

평화 씨는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고 두려운 일이라는 점을 안다. 그는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혐오나 협박을 받기도 하고, 커밍아웃을 이유만으로 트렌스젠더가 폭력을 당해 살해당한 사례도 있다”며 사회적 차별과 혐오를 둔 두려움을 언급했다. 다만 “두려움보다 차별과 혐오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장애인, 노동자, 여성 등 차별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 성소수자 인권 침해 ‘심각’ - “사람마다 눈, 코, 입의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그저 성적지향이 다를 뿐인데..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회였으면..” 평화 씨는 성소수자를 둔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의 말처럼 성소수자는 다수와 다른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겉모습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처럼 위협적인 존재도 당연히 아니다.

성소수자는 인류가 존재한 이후 지금까지 모든 곳에서 나타난 보편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몸바사나 케냐 지역의 부유한 무슬림 여성들과 호주 원주민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성 사촌들 간의 성적관계, 19세기 미국 보스턴 지역에서 유행하던 ‘보스턴 결혼’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지역에 레즈비언 전통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중국에는 오랜 기간 ‘동지’라고 불리는 남성 게이가 존재했고, 우리나라에도 ‘수동무’, ‘맞동무’라는 동성애 남성을 일컫는 용어가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둔 인권침해는 여전히 심각하다. 차별과 혐오는 물론이고 사실이 아닌 정보가 성소수자를 괴롭힌다. 일례로 동성애가 AIDS(에이즈)의 원인이라거나 동성애나 트렌스젠더는 정신질환으로 치유가 가능하다는 주장들이다. 이들은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최근에도 이 같은 편견과 부정확한 정보가 판을 친다. 일부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는 엠폭스(원숭이두창)의 원인으로 성소수자를 지목하는 또 다른 혐오가 이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발표한 ‘트렌스 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는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만 19세 이상 성소수자 59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이들 가운데 65.3%p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1년 내 차별을 경험한 바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기간 인터넷, 방송·언론, 드라마·영화 등 영상매체에서 성소수자 혐오 발언과 표현을 접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각각 97.1%p, 87.3%p, 76.1%p에 달했다.

일상적 차별도 심각하다. 학교를 다니며 성별 정체성과 관련해 힘들었던 경험이 한 가지 이상 있었다는 응답은 92.3%p, 구직 활동 중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직장 지원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57.1%p에 달했다. 특히 가족들이 성소수자임을 인식한 뒤 모른 척(56.6%p)하거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거나(44%p) 언어적 폭력(39.4%p)을 가했다는 답변도 많았다. 동종의 조사에서 1년 내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는 답변도 41.5%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깔, 다양성을 의미한다. /사진 = pixabay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깔, 다양성을 의미한다. /사진 = pixabay

△연대로 차별 혐오 대항하고, 제도 개선해야 -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출발은 우리 주변의 성소수자들을 ‘우리’와 같이 인식하며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것이다. 100년 전 형평운동에 나섰던 양반들, 그리고 백정과 연대한 노동자, 농민, 여성들이 ‘모든 사람은 공평하다’는 원칙 아래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백정을 향한 혐오와 차별에 맞서 모든 사람은 공평하다며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고 외친 형평정신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연대가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의 문화를 없애는 일이라면, 제도 개선은 인식을 바꾸고 차별을 금지시키는 방법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고, 이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숨겨진 존재는 배제와 차별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2017년 국제 설문조사 기관 Ipsos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의 70%가 트랜스젠더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거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인구집단으로서의 성소수자 실태조사와 통계작성으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고, 미디어가 이들을 다루는 방식을 개선(차별→평등)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 평등법 제정으로 학교, 직장, 일상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동성부부를 둔 인식개선과 동성혼 법제화로 동성커플의 권리보장도 필요함을 역설했다.

무엇보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의 대원칙이며, 국제 인권법과 대한민국 헌법에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모든 시민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명시돼 있다는 점은 차별과 혐오의 부당함을 설파한다. 경남 진주에 거주하는 김평화 씨는 “모든 사람의 얼굴형태가 다르듯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다를 수 있죠.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멈춰지길 바랐다.

△주위에 성소수자가 있다면? - 주위에 커밍아웃을 하는 성소수자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성소수자연구회가 2016년 펴낸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줄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를 둔 편견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은 성소수자가 누구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우리의 이웃임을 밝힌다. 특히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에게 혹시나 모를 차별적 표현을 하지 않도록 안내한다.

책은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에게 실망했다는 발언, 성소수자 정체성이 확실한 지 묻는 태도, 성별 정체성을 고칠 수 있다는 식의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서 살았어?’, ‘나에게 진작 말하지’ 등의 발언도 삼갈 것을 권한다. 대신 ‘지금 나에게 말해줘 기쁘다’, ‘지금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느냐?’는 말로 신뢰를 보여줄 것을 권장한다. 커밍아웃 이전과 이후 달라질 게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라는 주문이다. /단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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