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차별과 혐오 없는, 모두에게 공평한 사회를 꿈꾸며 경남 진주에서 형평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단디뉴스는 형평운동의 과정과 역사적 의미, 지금 이 시대의 불형평 문제를 다루는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단디뉴스=김순종] “100년 전 차별과 혐오 없는, 공평한 사회를 바란 형평운동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형평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인권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차별 공화국’이라고 말합니다. 장애인 인권은 다른 게 아닙니다. 장애인을 비롯한 누구나 마음먹은 대로 이동하고, 접근하고, 활동하는 그런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28일 형평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초청강연에서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UD복지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이 같이 말하며, “차별을 없애고 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형평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랜 기간 장애인 인권운동과 연구를 해온 그는 “우리 사회에 백정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다양한 소수자들이 억압과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분리, 배제, 거부, 제한 등이 차별로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차별을 없애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신체적 손상에만 초점을 둔 기존의 장애 개념을 신체적 손상과 사회문화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바꿔야 하고, 다양한 시설, 공간을 누구나 함께 쓸 수 있도록 하는 ‘유니버셜 디자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질병, 사고 등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인이 된 이들의 비중은 80%에 달한다 /자료=장애인 백서 2022
질병, 사고 등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인이 된 이들의 비중은 80%에 달한다 /자료=장애인 백서 2022

△누구나 장애인 될 수 있지만.. - 80%, 질환이나 사고 등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인이 된 이들의 비율이다. 260만여 명에 달하는 국내 장애인 중 208만 여명의 장애인들은 선천적 이유가 아닌 후천적 이유로 장애인이 됐다. 이는 ‘누구나’, ‘갑자기’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넌지시 드러낸다. 그럼에도 장애인은 차별과 혐오, 배제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어느 날 승강기를 탔더니, 웬 남성이 제 머리를 때리고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장애인인데 돌아다니려고 지랄’이라고..”, “‘(장)애자’, ‘(장)애인’, ‘찐따’라는 혐오 발언이 농담처럼 건네지는 이유가 뭐겠어요?”, “장애인은 무능한, 보호의 대상이라 여기는 정서가 있어요. 늘 당사자가 아닌 보호자 의견을 묻죠. 장애인이라고 하면 ‘말 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해요”

중증 지체장애인인 배융호 연구원이 직접 겪었다는 장애인 차별이다. 알고 보면 일상 속에서도 장애인을 둔 혐오 발언은 속속들이 발견된다. ‘외눈박이 대통령’, ‘정책수단이 절름발이’, ‘집단적 조현병이 의심된다’, ‘꿀 먹은 벙어리’. 이들 발언은 모두 국회의원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말들로, 우리 또한 일상에서 인식조차 못한 채 내뱉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장애인은 그저 선천적·후천적 이유로 몸이 불편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이들을 향한 편견은 혐오를, 혐오는 다시금 차별을 부르고 있다.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장애에 따른 차별(30.6%p)’은 ‘성별에 따른 차별’에 이어 가장 흔한 차별로 나타났다. 동종의 조사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비중도 10.9%p에 달했다.

 

/ 사진 = Pixabay
/ 사진 = Pixabay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차별과 배제 - 차별과 혐오는 분리나 배제, 제한이나 거부로 표출된다. 장애인들은 이동, 교육, 고용, 소득, 혼인 등 사회 전반의 다양한 분야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없는 사람인 양 취급받거나, 존재를 인식함에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을 거부당하거나 제한받는다. 비장애인과의 공간적 분리도 흔히 일어난다.

15년 전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이동권 보장을 둔 논란은 여전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지난해부터 지하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법 제정 15년이 지났지만 지하철 이용이 여전히 어렵다는 이유다. 시선은 싸늘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들의 시위가 "비문명적" 이라고 비판했다. 일반시민들의 차별과 혐오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비단 지하철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고속버스에는 휠체어 승강기가 없고, 교통약자 콜택시도 턱 없이 부족하다. 저상버스 보급률은 아직 30%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30초 정차 후 출발하는 지하철은 장애인 탑승을 사실상 거부한다. 어렵게 이동이 된다고 해도, 장애인에 적합한 숙소가 없어 홀로 여행조차 어렵다.

취업, 교육 분야에서도 장애인들은 차별 받는다. 몇 해 전 진주교육대학교에서 중증장애인 학생의 서류평가 점수를 하향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사실로 밝혀졌다. 서울 강서구에서는 특수학교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반발하자, 장애인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학교 설립 동의를 호소하기도 했다. 장애인을 둔 사회적 차별을 드러낸 사건들이다.

 

지난 28일 경남 진주를 방문해 장애인 인권 관련 강의를 진행한 배융호 연구원
지난 28일 경남 진주를 방문해 장애인 인권 관련 강의를 진행한 배융호 연구원

한국장애인개발원이 펴낸 2022 장애인 백서는 장애인들이 처한 어려움을 그대로 드러낸다. 장애인 다수의 학력은 중졸이하(56.4%p)로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고 있지 못하다. 고용율도 비장애인의 절반 수준인 34.6%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소득 역시 비장애인 가구의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교육, 고용, 소득 분야에서 모두 약자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

배융호 연구위원은 지난 28일 이 같은 통계를 일부 인용하며 “학교 입학 후 교육차별이 많기 때문에 장애인 학력이 낮은 것”이라며 “고용시장에서도 장애인이라고 하면 원서를 곧장 내다버리는 경우가 많다. 결혼에서의 차별도, 또 보험계약에서의 차별(보험을 아예 받지 않기도)도 있다”며 장애인들이 다양한 차별에 내몰려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장애인 차별 진정 건수를 보면, ‘재화 용역 제공’ 부문에서의 차별이 61.9%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재화·용역 일반, 보험·금융, 시설물 접근, 이동 및 교통수단, 정보통신, 의사소통, 문화·예술·체육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장애인을 둔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존의 장애인 심볼과 역동적 의미를 담은 장애인 심볼(파란색 바탕)
기존의 장애인 심볼과 역동적 의미를 담은 장애인 심볼(파란색 바탕)

△장애, 개인 아닌 사회와의 상호작용으로 봐야 –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손상으로만 바라보면, 장애발생→개인극복→가족책임→경제문제→가정불행→장애의 비극화로 이어집니다.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손상만이 아니라, 손상과 사회적 장벽의 상호작용으로 바라봐야 장애 인식개선과 환경개선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 차별·혐오를 벗어나 평등을 누리려면,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함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최근 중요시 되는 것은 개인의 신체적 손상에 초점을 맞춘 ‘의료적(개인적) 모델’로써의 장애 개념을, 개인의 신체적 손상과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모델’로 바꾸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장애인 지원 정책은 주거는 시설보호로, 고용은 보호고용이나 의무고용으로, 교육은 특수학교로, 이동은 장애인 콜택시 도입 등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들은 모두 개인의 신체적 손상만을 장애로 바라보는 ‘의료적 모델’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같은 정책은 장애인을 수동적 대상으로 바라하며, ‘도움’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만든다.

반면 ‘사회적 모델’은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손상과 사회문화적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바라보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다. 보호시설 대신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주거할 수 있는 주택, 의무고용이 아닌 모두에게 열린 고용시장, 장애인 콜택시가 아닌 누구나 이용가능한 대중교통 마련에 힘쓴다. 장애인에게 불편을 주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장애로 보고 바꿔나가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제보건기구는 장애의 범위를 점차 넓혀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 유형을 15가지 정도로 나누지만, 국제보건기구는 2001년 국제장애기능건강분류(ICF)를 도입해 장애 유형을 5000여 가지로 늘려왔다. 국제장애기능건강분류(ICF)는 ‘사회적 모델’로 장애를 파악해 개인의 신체적 손상과 불편을 주는 사회 문화적 상황 등 모든 것을 장애로 인식한다.

배융호 연구위원은 앞선 28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포함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을 만드는 ‘유니버셜 디자인(U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저상버스, 장애인 화장실, 객실 등이 그 사례다. 이는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같은 시설을 이용하고 한 공간에 머물도록 해, 두 대상의 분리가 불러올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방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단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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