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차별과 혐오 없는, 모두에게 공평한 사회를 꿈꾸며 경남 진주에서 형평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단디뉴스는 형평운동의 과정과 역사적 의미, 지금 이 시대의 불형평 문제를 다루는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여전히 ‘소수자’로 분류되는 존재가 있다. 여성이다. 소수자는 그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정도에 따라 판단된다. 여성들은 성착취, 가정폭력, 유리천장, 임금차별, 독박육아 및 가사 등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감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동등한 참여 배제(직업 분야 등), 분배 불평등(임금격차), 폭력과 착취(성범죄, 데이트 폭력), 불인정(돌봄노동 등) 등에 시달리고 있다.

100년 전 경남 진주에서 일어났던 형평운동은 시대적 편견을 넘어 여성들과 연대하는 진취성을 보여줬지만, 오늘날도 여성을 둔 차별과 배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는 “100년 전 형평운동을 일으킨 백정들처럼, 여성들도 차별과 배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차별과 배제에 항의하는 여성들은 또 다른 혐오에 고통 받고 있다. 100년 전 형평운동이 많은 반발을 산 것처럼 말이다.

경상국립대 페미니즘 동아리 ‘세상의 절반’ 대표 노예진 씨는 “학내에서도 성차별적 문화는 여전하다”며 특히 “페미니즘 동아리를 비롯한 여성운동에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회원 모집 대자보를 붙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대자보가 찢긴 채 바닥에 나뒹굴고, 학내 커뮤니티에도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글이나 댓글이 많이 실린다면서다. 그는 “여성들이 안전한,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1 경상국립대에 재학 중인 A씨는 얼마 전 중고거래를 하다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 중고거래를 했던 50대 남성이 거래 직후 거듭 사적 연락을 해온 것. 불쾌함에 연락을 끊으니, 이 남성은 환불을 요청하며 만남을 요구했다. A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들과 함께 남성을 만났고, 남성은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폭력을 가하려 했다. A씨와 친구들은 경찰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했다. 홀로 만남을 가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2 B씨는 10년간의 가정폭력을 감내하다 이혼했다. 결혼 직후부터 시작된 남편의 폭력은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괜찮아질 것이라 희망을 품었지만, 희망은 번번이 무너졌다. 남편을 피해 쉼터로 피신을 갔다가도, 아이 생각에 또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 이혼을 망설였다. 용서를 구하며 이혼을 거부하는 남편을 믿어보려고 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10여년의 고통을 감내한 끝에 어렵게 이혼절차를 밟아 남편과 헤어졌다.

#3 결혼 7년차에 접어든 C씨는 요즘도 여행을 갈 때면 걱정이 많다. 남편과 함께 하는 여행이지만, 숙소 내에 몰래카메라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이다. 불안을 호소하면 남편은 괜찮다고 하지만, 언론을 통해 접한 여러 사건들이 연거푸 떠올라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몰래카메라가 두려운 그는 웬만하면 외박을 하지 않으려 한다. 공중화장실 사용도 최대한 자제한다.

#4 아이 둘을 키우는 D씨는 내심 남편에게 섭섭한 게 많다. 아이 둘을 키우느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힘쓰고 있지만, 남편은 그러한 그의 수고로움을 알아주지 않는다. 직장을 그만두며 경제적 능력까지 사라지다보니, 남편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남편은 심지어 홀로 돈을 벌어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집안일과 아이 돌봄에 소홀하다. 육아의 힘듦도 문제이지만, 직장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된다.

 

성폭력 범죄를 둔 남녀간의 두려움 격차
성폭력 범죄를 둔 남녀간의 두려움 격차

△만연한 여성범죄 -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후 여성들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줄 것을 거듭 당부하고 있지만, 그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중고거래를 하다 중년 남성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다는 위 사례처럼, 여성은 일상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경남 진주만 하더라도 지난해 10월 이별을 통보했다가 스토킹과 폭력을 당한 여성이 있었고, 변호한 사건의 당사자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다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을 받은 변호사도 있었다.

여성가족부가 펴낸 2022 여성폭력통계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폭력에 노출돼 있는지를 드러낸다. 2019년 기준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율은 38.6%로 여성 4명 중 1명이 사는 동안 성폭력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성적인 가정폭력 경험이 있는 사람도 10.5%에 달했다. 데이트 중 폭력을 당했다는 비중은 5%에 이르렀고, 특히 신체적·성적 폭력을 당했다는 비중은 3.5%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스토킹 피해를 입은 여성 비율은 2.5%였다.

이 같은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여성들이 일상에서 가지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도 남성에 비해 3~5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들은 특히 남성에 비해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밤늦게 혼자 다닐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비중은 73.2%로 남성의 13.4%에 비해 5배 이상 컸고, 택시, 공중화장실을 혼자 이용할 때나 낯선 사람의 방문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비율도 크게 높았다.

여행에서 낯선 숙소를 사용하거나 홀로 화장실을 찾을 때 몰래카메라 등에 대한 두려움을 곧잘 느낀다는 C씨는 “그만큼 여성들에게 위험한 사회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아니겠느냐”며 “우리나라 치안이 좋다고 하지만,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과 인하대 사건처럼 여성들은 여전히 범죄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훨씬 더 큰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회구조는 또 하나의 차별이자, 불평등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유리천장, 과소대표, 임금격차 - 유리천장,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이다. 유리천장은 공적 조직과 사적 조직 모두에서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가로 막는 장벽이다.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100대 기업 여성임원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여성 의원은 19%, 8대 경남도의회는 13.7%, 경남지역 9대 기초의회 여성 의원 비율은 평균 25.8%에 불과했다.

여성들은 일상적인 임금격차에 직면에 있기도 하다. 같은 직급과 연차에 동일 임금을 지급하는 곳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실상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 평균임금의 66% 안팎에 불과하다. 이는 직장에서의 차별 탓이기도 하나, 20대 말부터 육아 등 돌봄노동을 여성들이 맡으며 오는 경력단절에 원인이 있기도 하다. 결국은 인식의 문제, 우리 사회에 자리한 ‘가부장적 문화’가 임금격차를 불러오는 원인인 셈이다.

2020년 여성 고용률 데이터를 보면, 고용률이 가장 높은 세대는 20대(68.7%), 40대 후반(66%), 50대 초반(65.5%) 순이었다. 통상 육아가 시작되는 30대 초·중반부터 고용률이 낮아지다가 육아가 끝날 무렵인 40대 후반부터 고용률이 오르고 있는 셈이다. 임금 격차도 20대에 가장 좁다가 30대 이후부터 점차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노동시장의 차별적 문화만이 아니라, 독박 육아, 독박 가사 문화가 남녀 임금 격차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는 “공기업이나 공무원 집단은 호봉에 따른 임금이 똑같다고 하더라도, 건설현장이라든지 사기업의 경우는 여전히 임금격차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녀 간의 평균 임금 격차가 차이가 나는 것은 여성들이 돌봄노동에 내몰려 경력단절을 겪기 때문이기도 하다”면서 “남녀 임금격차가 발생하는 데는, 노동시장에서의 차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남녀 역할을 둔 편견도 작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성폭력 범죄 유형별 기소율
성폭력 범죄 유형별 기소율

△제도, 인식 변하고 있다지만.. - 물론 여성인권이 그간 제자리에 머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성폭력이나 성희롱 사건의 친고죄 조항(신고 시에만 처벌)이 폐지되거나 스토킹 처벌법이 생겨난 점은 과거에 비해 고무적이다. 양성평등법 등이 시행된 지도 30년 가까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나 임금시장에서의 차별 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식의 문제라고 하지만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들도 반발에 부딪히기 일쑤다.

특히 성범죄 등을 대상으로 한 기소율이 너무 낮은 점이 문제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성폭력범죄 1만 7019건 가운데 기소가 된 사건은 49.2%에 불과했다. 강간 및 강제추행, 디지털 성폭력, 아동 청소년 대상 성매매, 기타 성폭력 사건을 모두 포괄한 수치이다. 이 때문에 성범죄 등을 대상으로 한 기소율과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듭 나오고 있기도 하다.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는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피해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왜 피해자들이 말하지 못할까. 누가 그들을 말하게 하지 못할까 하는 부분이 답답한 지점”이라며 “2차 가해 등이 사라져야 피해자가 입을 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식 개선이 따라야 문제가 드러나고, 해결책 마련도 고심할 수 있다는 취지인 셈이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행동이 또 다른 혐오를 받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노예진 경상국립대 페미니즘 동아리 ‘세상의 절반’ 대표는 “학내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하다보면 많은 차별과 반발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를 둔 차별과 혐오, 커뮤니티 내에서의 조롱 등의 사례를 거론했다. 그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둔 혐오와 차별이 우리사회에 여전히 많다”며 이 같은 현상을 하루 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단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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