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립진주박물관]
[사진=국립진주박물관]

‘인권’이란 개념이 배태도 못한 시절인 1923년의 진주에서 천민이었던 백정들이 신분해방과 차별철폐를 부르짖으며 나선 것이 형평운동의 시작입니다. 운동은 삽시간에 들불이 되어 전국에 번졌습니다. 불합리한 제도에 희생되어 오랜 시간 깎이고 발리며 천대받아 처절한 한을 품고 흩어져있던 44만 백정들의 핏발선 시선이 진주에 모였습니다.

당시 인구 2만도 채 안 되던 일제치하의 변방 진주가 운동의 발화점이 된 것은 도축업으로 자산가가 된 백정과 깨친 양반계급의 양심과 고뇌하던 백정 지식인의 만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세 축을 대표하는 인물이 이학찬 강상호 장지필 선생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이루고 그것을 공동의 선이란 끈으로 이어나가는 것을 ‘연대’라 한다면 그들의 고귀한 연대는 시대를 앞선 인권선언이고 그것은 진주라는 토양이 품고 있는 독특한 정신의 산물임이 자명합니다.

우리가 형평운동의 기념사업회를 꾸리고 그것을 기리는 것은 우선 그 운동의 시작점이 진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운동의 역사적 표징으로 기념탑을 세우고 그 역사가 오늘날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어언 30년 세월이 흘러 이제 백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 백정이란 계급은 이제 없습니다. 그러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혼모라는 이유로, 한 부모 가족이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다른 성적지향과 성별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은 상존하며 그들이야말로 오늘의 백정입니다.

형평운동 100주년은 시민운동의 쇠퇴기를 거치며 명맥만 유지해오던 우리의 이상을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야야 할 기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배제되어 고통받는 오늘의 백정과 함께하며 그들과 어깨를 겯고 연대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이유라 여깁니다. 그것이 2003년 2차 개편을 통해 내세웠던 ‘실질적 인권운동’의 실현입니다. 100주년을 통해 다시금 형평과 그 정신을 시민사회에 환기시켜 살아있는 ‘형평’을 다음 주자에 승계하는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홍창신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

 

28일 오후 7시 경상국립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초청강연
28일 오후 7시 경상국립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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