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공부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가끔 TV에 역사·교육·건축·과학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내용을 강의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공부가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얼굴이 제법 익은 연예인들이 가벼운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방식인지라 부담 없이 꽤 양질의 강의를 안방에서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 출연하는 강사들의 면면도 그렇고, 내용도 미래지향적이며 다수의 이익과 철학에 부합하는지라 전체적으로 호평을 받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때마침 농업분야였습니다. 농업에 관한 내용으로 TV에서 대중 강좌가 이뤄진 것은 처음인 듯 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내 크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실망이 다 뭡니까? 화가 났습니다. 사실은 ‘애그테크’라고 하는 제목에 이미 주장의 절반은 담겨 있는 셈이었으니까요.

‘애그테크’라는 신조어를 우리말로 바꾸자면 기술농업, 아니 첨단 기술농업 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내용인즉슨 첨단 농업기술로 손쉽게 농사를 짓고 생산비를 적게 들이고도 생산량을 늘릴 수 있으며 누구나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한마디로 첨단 농업기술로 농업의 혁명을 맞이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 여의도 30배 면적에 34대의 트랙터와 20명의 인원이 자율주행 파종을 할 수도 있다며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업 연구소 출신의 전 농촌진흥청장답다고나 할까요? 그런 만큼 시장경제 논리에 기반한 농업에 대한 관점이었기에 동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청중으로 참여한 연예인들의 질문도 같은 결을 유지하며, 아버지께 트랙터 한 대 사 드리고 싶다는 등 국민 또는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기에 딱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저 강사가 나와서 저런 얘기를 할까? 저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법인세를 인하했습니다. 경제위기에 기업의 경영을 돕겠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친 기업정책을 표방하던 이명박 정부도 집권하자마자 종합부동산세를 내렸고, 그렇게 줄어든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그다음 정부에서 담뱃세를 무자비하게 올려 국민에게 그 부담을 떠넘겼습니다. 친 기업정책을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는 농업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닌 모양입니다. 꽤 민감하고 조심스러워 금기시해왔던 관행을 깨고 농업에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밀려옵니다. 이름도 낯선 ‘애그테크’를 빙자해서 말입니다. 엄청난 비용이 드는 애그테크 분야는 일반 농민들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런 첨단 농업기술은 공유 자원으로 해서 전체 농민들이 접근하여 이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야지, 자본력을 이유로 기업의 농업진출 근거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우리 농민들은 그동안 대기업의 농업진출을 극구 반대해 왔습니다. 기업은 농업에서 이윤만을 추구하려 하지, 농민의 권리나 농지 보호, 환경이나 종자 등 공익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무시해온 것이 전 세계적인 결과입니다. 대기업의 농업진출은 곧 중소농들의 소멸로 연결되었습니다. 그토록 목 놓아 주장해왔던 여성농민의 권리도, 중소농의 농민농업도, 지역의 가치도, 전통문화에 적합한 먹거리도 제 자리를 지키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농업과 먹거리의 생산·유통·소비 과정에서 진전되고 축적된 성과 -공공급식 지역농산물 사용 조례 제정, 지역먹거리 정책 수립, 소농직불제, 농민수당 지급과 농민 기본소득 담론 등- 는 또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까요? 농업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이 살아야 국가가 건강해질 텐데, 엄청난 자본이 투여되어야 할 첨단농업기술의 장밋빛 환상을 떡하니 보여주니 걱정이 몰려옵니다.

* 이 글은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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