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아~ 아~ 알리겠습니다. 골프장 문제로 회의할 것이 있으니, 각 가정에서는 한 분씩 모날 모시에 마을회관에 모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민주공화제가 시작된 지 몇백 년이 흘렀고,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참정권에서 눈부신 변화가 있었다고 하겠지요. 민주주의의 상징인 고대 그리스의 광장에서도 여성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고, 18세기 말에 시작된 유럽의 민주공화정에서도 여성들은 선거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성들도 온전히 투표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스위스가 1971년에서야 여성의 선거권이 인정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합니다. 물론 1952년 UN(국제연합) 총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조건으로 아무런 차별 없이 모든 선거에서 선거권을 갖는다”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8년 9월 1일, 북촌의 부인들이 발표한 <여권통문>에서 여성들의 정치참여권을 주장했다 하니 우리의 역사도 남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1919년 4월 19일에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한 일체 평등임”을 명시하였으며, 1948년 7월 17일 제정‧시행된 헌법 제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며, 성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라고 명시했습니다. 그 뒤 1958년 1월 25일 공포된 ‘민의원 선거법’과 ‘참의원 선거법’에 의해 여성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게 되었고, 명실상부하게 남성과 대등한 공법적 지위를 갖게 되었답니다.

역사가 이러할진대 현실은 이에 발을 맞추고 있는가? 아 물론 대부분의 선거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인정되고 존중되는데, 아직도 1인 1표제가 아닌, 1가구 1표제가 되는 시행되는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의 영역입니다. 물론 모든 마을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민주 마을규약 만들기 운동’을 하는 여성농민단체도 있더라만, 선진적인 일부 마을의 사례이고 현실은 아직도 구태에 머물러 있지요.

이제는 끝난 얘기지만, 얼마 전에 우리 마을의 운명과 관련해서 중차대한 논의가 진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마을 뒷산에 골프장 건립을 제안하는 외지인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산주들과 가격협상이 진행되기 시작했더랬죠. 조용해서 심심하기까지 한 마을에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팔 것인가? 말 것인가? 얼마에 팔 것인가? 그것이 적정한가? 등의 고민이 터져 나왔고, 뒤이어 골프장이 들어서면 환경문제, 용수문제, 소음문제, 마을 이주문제까지 해서 심각한 문제가 함께 생겨날 수밖에 없다며 찬반논란에 휩싸여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일단 마을주민이 다 모여서 얘기를 하자고 했는데, 정작 1가구 1주민 참석을 주문한 것입니다. 이 사안에만 특별히 그런 것은 아니고, 연말 대동회도 1가구 1인 참석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지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관례상 그런 것입니다.

그러한 관례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정작 마을의 운명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생겨나더라는 것입니다. 마을의 운명은 곧 자신의 운명과 연결된 것이고, 곧 죽어도 이 마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쪽과 우선 목돈을 좀 쥐고 살아보자는 쪽의 갈등이 부부간에도 있었으니 이러할 때 1가구 1표제의 비민주성이 정면 노출된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부부싸움을 했다고도 하고, 한쪽은 아예 마을 회의에 참석을 못 했다고도 합니다. 부부가 정치적 입장이 같을 때도 있지만 매번 같을 수는 없지요. 엄연히 독립된 존재이므로 인권만큼 정치권도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나의 운명과 관련된 모든 생활영역에서 보장받아야 할 내용입니다. 따라서 마을 대동회에 1가구 1인 참석이 아니라 마을의 모든 구성원들이 참석해서 마을의 운명, 즉 나의 운명에 주인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겠지요. 마을에서도 민주주의가 실현되게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몇몇 민주적인 마을 이장의 선도적 역할로 가능할 일인가요? 아니면 시민운동의 몫인가요? 이럴 때는 행정적 궤도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요?

* 이 기사는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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