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유난히 한파가 잦았던 긴 겨울이 끝나가고, 이제 새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봄은 농심에 제일 먼저 오는 것 같습니다. 반짝 추위가 찾아와 재차 겨울옷을 꺼내 입고도 공연히 빈 밭에 가서 쥐구멍에 무너진 두렁은 없는지 구석구석을 살피게 되고, 나무 눈이 움트는지 유심히 바라보게 됩니다. 본다고 봄이라하기도 한다더니, 봄맞이는 이렇게 살필 일이 많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농민들은 올해를 살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새봄이 시작될 때, 지난겨울에 봤던 인상적인 장면이 있어 정리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이곳은 연륙교가 둘씩이나 있어 섬 신세를 면했지만, 그래도 바다를 끼고 있어서 아직도 바다에서 생산 활동을 이어가고 있거나, 농사와 겸업하는 집들이 더러 있습니다. 주업과 겸업 외에도 바닷가 사람들은 철따라 바다에서 용돈벌이를 하거나 반찬거리를 얻곤 합니다. 주업이 아닌 일이니 당연히 여성들의 소임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굴을 채취해서 까는 일이 한철 일거리와 소득으로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제 그 일을 할 사람도 거의 없지만요.

자연산 굴을 까려면 무엇보다 물때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이 많이 들 때와 빠질 때를 제대로 알아야 잘 여문 굴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 많이 빠지는 곳의 굴이 더 여물고 큽니다. 따라서 보름 단위로 물때가 교차하는 특성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사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서 굳이 학습이랄 것도 없이 체득되는 편입니다. 어쨌건 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시기에 많이 채취한 굴을 망에 담아서는 접근이 용이한 곳에 뒀다가, 필요할 때 물이 빠지면 작업장으로 가져가기도 합니다. 물론 매우 힘든 작업입니다. 겨울철 굴은 바다의 우유라 할 만큼 영양이 풍부하고 맛과 향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남도 사람들은 설 떡국에 굴을 넣어 먹습니다. 그러니 설에 한 대목 보려고 미리 굴을 채취해놓는 지혜가 이때 발동되는 것이지요.

설을 앞둔 어느날, 평순언니가 우리 작업장 앞에 차를 세우더니 가슴까지 오는 물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물살 센 깊은 한바다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 저기에 왜, 어떻게 들어간단 말이지? 순간 무수한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저 일을 언니가 한다? 뭐지? 하다가, 이내 그 상황이 우리의 일상에서 차고 넘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갑자기 주어지는 일에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응당 수행해 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가 주도한 일이 아니어도 손을 보태야 할 때 군말 않고 도와 나서는 경우가 부지기수이지요. 오랜 세월 그리 살아왔으니 몸에 익어서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평순언니네도 그리 했겠지요. 설대목에 쓰려고 미리 굴을 채취해서는 깊은 바다에 두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주문이 들어와서 급하게 더 많은 양의 굴이 필요했을 테고, 다른 사람에게 가져오라 시키면, 미리 준비하지 않고 뭐 했냐는 책망이 돌아올 것은 뻔하고, 바다 어디메쯤 굴이 있다는 것을 제아무리 입 아프게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서 역할 수행 대행이 어려웠겠지요. 그때 여성전사처럼 가슴까지 물옷을 입고 물살 센 바닷속으로 저벅저벅 들어갔다온 것이겠지요. 이야말로 진정한 리더가 아니겠습니까? 가부장제로 살아온 1만여 년의 세월보다 더 오랫동안 모계제로 살아온 세월이 염색체 어딘가에 유전되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유전적 힘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훈련되어 허리 깊이의 물살을 겁내지 않고 나설 수 있던 것은 아닐까요? 용기, 도덕, 인내, 책임감 같은 것들이 어디 하루아침에 몸에 배던가요?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일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꺼이 해내는 힘, 그 힘이 사회의 주력이 되면, 세상 걱정이 줄어들 만도 합니다.

* 이 기사는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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