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올해를 뒤돌아보자면, 여성농업계의 최대 이슈는 충청남도의 ‘여성농업인 바우처 제도 폐지’일 듯 싶습니다. 농도를 자처하는 충남의 결정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결정입니다.

그간 충청남도는 농업정책에서 보자면 상당히 선진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삼농정책’이라 하여, 지방정부에서도 농업정책 개혁을 이름에 달아서 농민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은 평가를 받은 측면이 있었습니다.

물론이거니와 이 삼농정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삼농정책에서 차용한 것으로, 편농(便農)이라 하여 편리한 농업, 후농(厚農)이라 하여 수익성이 높고, 상농(上農)이라 하여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같은 이름이지만 충남의 삼농은 농업, 농촌, 농민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고, 정책구현에 있어서는 엇갈린 평가가 많습니다. 어쨌건 전 지방정부의 정책이지만, 충청남도가 농정에 뜻깊은 이름까지 붙여가며 정책 변화를 꾀한 것은 농업을 기반하고 있는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민심을 살피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농정에서 역사성이 있고, 현실적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충남이, 뜬금없이 여성농업인 바우처 제도를 2023년부터 전면 폐지한다 하니, 그 방향과 속도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습니다. 그럴 계획이 있었으면 여론조사라도 한 번 하든지, 아니면 다른 지역의 사례를 살펴나 보든지, 어찌 그리도 신속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었던지 참으로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많은 담당자들이 현재의 농정을 바꿔야 한다고들 합니다. 주로 일몰에 이른 보조자금-기반시설이나 특정 시기에 필요했던 자금-에 한한 것들입니다. 그것조차도 아직까지 이해당사자가 있는 관계로 행정이 부담을 지기 어려워서 정책조정을 뒤로 미루고 있는 실정인데, 그토록 많은 이해당사자가 있는 여성농업인 바우처 제도를 일순간 폐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집행방식입니다. 일종의 폭거라고 해도 될까요?

농업예산에서 앞으로의 방향은, 농민에게 직접 수취가 가능한 소득지지 쪽입니다. 그간의 농업 보조사업이 농민들에게 직접 수취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업을 집행하는 업체가 자금의 다수를 차지하는 방식이어서 문제가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다른 선진국에 비해 소득지지 효과가 형편없는 수준이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는 지속가능한 농업은 불가능합니다.

충청남도 민선 8기 농업정책이, 현금성 복지지원에서 구조개선에 중점 투자하는 쪽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농정의 방향성을 잃었거나 시대를 역행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역사성과 시대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바우처 지원금이 문화사업비용으로 쓰이지 않고 마트에서 주로 이용한다는 것을 핑계로 삼는다던데, 그렇다면 농촌지역에 문화시설을 늘리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지, 그 무슨 구실 같지 않은 구실로 절망감을 안겨주는지요.

이미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으니 후퇴할 리도 만무하겠지만, 이 정책은 반드시 되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인 농민, 그중에서도 여성농민의 힘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보면 딱 보입니다. 다행히 다른 시·도에서는 증액하거나 유지하는 쪽이지만, 행여 충남의 방침이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이 시대에 역행하는 방향이니까요.

가정살림이 곤궁해지면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지요. 그렇지만 여기에도 정치적인 힘이 작동하게 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영역에서 보장성이 축소되지요. 그 옛날의 우리네 밥상을 돌아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곤궁한 살림이라 할지라도 어른들 밥상에는 고기반찬이나 하얀 쌀밥이 종종 올라갔지만, 정작 밥을 하는 어머니들은 부엌에서 누룽지만 훑어 먹었다고 하고 며느리는 아예 배곯기를 밥먹기보다 더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집집마다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 이야기는 오늘에도 진행형입니다.

* 이 기사는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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