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지지율 추락에는 이유가 있다
불안·불신 쌓일수록 국민의 선택은

인류를 통째로 위협하며 오대양·육대주를 휩쓸고 다닌 역병의 위세는 그저 활자 속에서나 언뜻언뜻 비친 전설 같은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게 어느 날 코앞에 닿아 흠모해 마지않던 선진 제국들이 속절없이 나가떨어지고 오금 쪼가리로 여기던 제 나라 백성이 초개같이 죽어 나가는데도 허둥대며 수습조차 못 하는 꼴을 보았다. 선진의 표상이라 부러워하던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이 그런 지경이면 우리는 그야말로 삼천리에 곡소리 낭자함이 지당한 이치 아니던가.

그러나 그 독한 전염병의 확산에 맞선 우리의 대처가 뜻밖에 만만찮고, 또박또박하여 그 잘난 서구 열강들에조차 선망의 시선을 받는다. 내심 소스라치긴 우리가 더했다. 우리가 이리도 많이 컸단 말인가. 못나고 못살고 모자란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오그라졌던 그간의 가슴에 웅혼한 국뽕이 차오르며 자신을 스스로 대견해 했다. 때마침 세계무대서 빼어난 역량을 보인 우리 예술인들의 성공과 높아진 정치적 위상이 겹치며 "단 한 번의 성공이 평생의 좌절을 치유한다"란 경구가 찢어진 입귀로 삐져나오는 것이라.

물론 몇 차례 집단감염으로 위기가 고조되고 마스크, 백신, 소상공인 대책, 국경봉쇄에 관한 대립한 견해로 쨍그랑거리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선거도 치르고 통상도 막히지 않는 선방을 해낸 것이다. 인구 5200만 명 나라에서 총선 투표율 66%에다 프로야구 리그도 개막하고 오페라 공연의 월드투어를 차질 없이 치러낸 나라가 지구촌 어디에 있었느냐고.

그러나 출범하자마자 갈짓자 걸음을 걷는 바뀐 정권의 비상식적 행태는 이 나라 시민이 결정한 2022년 선택에 문제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정책이니 외교니 하는 덩어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치자. 놀라운 건 '정치적 반대자'를 자칭한 일군의 무리가 퇴임한 대통령이 거처를 마련한 시골 마을에 내려가 새벽부터 꽹과리를 치고 확성기로 쌍욕을 퍼부어 한적하던 동네를 적지로 만드는데도 내버려 두는 행태였다.

이에 대한 견해를 묻는 언론에 "민주주의" 운운하는 신임의 발언은 방치를 넘어 방조의 기미마저 풍겼다. 지지율 추락은 이미 그때부터라 본다. 찬찬히 풀어가면 될 일을 단 하루도 청와대에 안 들어가겠다며 우격다짐으로 벌이는 대통령 거처 소동, 제 주변엔 한없이 관대하고 정적에겐 지나치게 준엄한 법 적용, 아무에게나 반말로 찍찍거리는 방자한 모습은 나라 경영 이전에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서울 복판에서 156명 무고한 시민이 길을 가다 졸지에 목숨을 잃었다. 대다수가 10대·20대의 청년이다. 좁은 길에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뒤엉키니 버티는 힘이 약하고 체격이 작은 여성 희생이 훨씬 컸다는 전언엔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그러나 수백 명 사상자가 난 좁은 골목을 '시찰' 나선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에 더 절망한다.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니. 저 공감력 바닥의 사람이 우리 공동체 대표이고 우리 모두가 저 자의 지배 아래 있단 말인가. 세 살 먹은 아이도 마주 앉은 아이가 울면 따라 서럽게 우는 것이 감정이입이고 '공감'의 표현이다.

대통령 명색이 자식 잃고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의 애간장 따윈 짐작도 되지 않는단 말인가. 아무리 TV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리모컨을 패대기치더라도 다시 '탄핵'을 운위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하던 마음을 바꿨다. 저건 안 되겠다. 다시 길바닥으로 나서야 할 모양이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홍창신 칼럼리스트
홍창신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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