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2주년이다. 전쟁 과정에서 남북한에 걸쳐 수많은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함께 인민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도 자행되었다. 진주에서는 명석면 용산리등 20여곳에서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를 중심으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

단디뉴스는 민간인 학살 유해 공동발굴단에서 제1차~12차까지, 또 현재도 계속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희님의 글을 통해 전국각지 유해발굴 현장의 기록과 발굴을 둘러싼 사연, 증언록에 실린 생생하고 가슴 아픈 증언, 남겨진 과제 등을 15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연재가 한국전쟁의 기억을 되새기고 화해와 치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

 

필자가 2018.2. 아산시 배방읍(설화산) 폐금광 발굴장에서 발굴하는 모습
필자가 2018.2. 아산시 배방읍(설화산) 폐금광 발굴장에서 발굴하는 모습

전국적으로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자원봉사를 다니고 있지만, 지자체에서 유해발굴에 대한 예산편성을 하여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아산시와 충청북도이다. “아산은 연간 1억의 예산으로 시굴작업을 해마다 실시한다. 그리고 유해가 나오면 발굴비는 무한정 지원하기로 되어있다. 충청북도와 단양군은 이번에 1억 3,000만원으로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 6-8 발굴을 시작하여 필자가 다녀왔다. 유족들이 발굴을 의뢰한 것이 아니라 ‘도∙군 자체에서 공동조사단에 발굴을 요청했다고 한다.” 필자로서는 너무나 놀랍고 획기적인 발상이어서 부럽다.

그동안 진주시는 유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외면해왔다. 하지만 2022년도에는 “한국전쟁 진주 민간인희생자 추모비(초전공원 내)를 건립하였고 미발굴지(진주시 집현면 봉강리 38-5(7))에 대한 추경예산을 편성하여 유족들의 한 맺힌 가슴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녹여주었다.” 이제는 필자도 어느 지역이든 유해발굴 자원봉사를 다니면서 진주시민으로 자랑할 것이며 자신있게 진주발굴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부터 앞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들을 살펴보자.

▶ 용산고개 컨테이너 속에 안치되어있는 유해의 추모공원 마련이 시급하다

필자는 며칠 전 용산고개 컨테이너 속에 있는 마산 여양리 유해(163구)와 용산리에서 발굴한 유해 (99구)를 끄집어내어 유해 상태를 확인하였다. 유해들은 사실 거의 17년~20년 가까이 편안한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영혼들이 떠돌고 있다. 온냉도를 유지해 놓고 관리는 하지만 공기와 접촉하면서 부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유해와 유품의 부식으로 매우 심하게 변질돼 있다. 조금이나마 보관을 연장하려면 코팅작업을 해야 한다. 옷감은 세척과 아세톤 작업도 필요하다. 머리카락은 삼푸로 세척하여 제대로 관리하고 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족들이 백방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추모공원건립”은 아직도 미정이라 시일이 더 걸릴 것 같다. 둘째 역사의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인데 이런 유해와 유품은 진실을 밝히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림5를 보듯이 개체수가 거의 완벽하게 발굴되었는데 두개골이 심하게 부식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7 손모양도 정확하게 발굴되었지만 부식 상태가 심하게 변질된 모습이다. 국가의 폭력으로 억울한 희생자들의 넋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국가(지방자치제 포함)로서 책무를 외면하는 것이다. 어차피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면 유족들과 의견 충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니 차근차근 지원을 늘려나가 미발굴지 시굴작업과 유해 나오는 발굴지는 유족이 원하는 대로 매끄럽게 마무리하여 추모비를 조속히 마련해주는 것이 정부(진주시)의 숙연일 것이다.

 

▶ 추모비를 세우게 된 사연

진주유족회는 몇 년 전부터 진주 희생자(3,500여명)들의 넋을 기리고 유족들이 희생된 부모님, 형제, 가족이 생각나고 보고 싶을 때 참배할 곳이 없어 안타까워했다. 진주 유족과 진주시장이 몇 차례의 면담으로 추모비 건립에 대한 뜻을 같이하게 되었다. 유족은 기쁜 마음으로 행정과 직원과 함께 동행하여 먼저 위령탑이 세워진 지역인 경주, 화순, 경산, 대구 가창(10월항쟁), 거제 지역 등을 답사하여 유족분들의 뜻에 맞는 모형을 선택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2022년 3월 19일(토) 오전 11시 “한국전쟁 진주 민간인희생자 추모비 제막식”을 시작으로 진주 유족의 해원의 첫 삽을 떴다.

 

이번 추모비 건립에 진주시가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엄청난 변화이다. 진주시는 좋은 역사만 관리하고 보존할 것이 아니라 아픈 역사(흑역사)도 관리와 보존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 한국전쟁 “진주 민간인학살 유해매장지”에 시굴과 측량이 시작되다

진주시에서 추경예산에 책정하여 진주유족회가 발굴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진주지역 한국전쟁민간인학살지가 모두 24곳이다. 그중 마산 여양리 3개소, 명석면 3개소, 문산 진성고개 2개소 모두 8개소가 발굴되었다. 미발굴지 16곳 중 9번째(9개소) 발굴이 시작될 예정이다. 2022년 5월 초경 진주시 집현면 봉강리 83-5(7)번지이다. 이곳은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당한 곳이다.

 

진주유족회는 몇 년 전부터 봉강마을 윤어르신의 증언으로 매장지에 가서 유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흙을 파 보았다. 그러나 유해가 나오지 않아 윤어르신을 직접 매장지로 모시고 오셔서 보여드리니 ‘그래 째끔 파갔고는 안된다. 더 마이 파라. (약70cm)정도 더 파야 나온다 아이가’ 그래서 다시 약 70cm정도 가량 파니까 유해가 나와 확인 후 덮어두고 지금까지 한없이 기다렸던 매장지이다.

 

이제는 “72년을 어둠속에서 떠돌아다니시던 영혼들이시여 곧 빛으로 승화(昇華)”시켜드릴테 조금만 기다리시길 바란다.

▶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매장지의 특징

집현면 동강마을 매장지(그림17)를 보면 필자가 매장지에서 50m 정도 올라가서 아래로 매장지 위치를 촬영했는데 참으로 이상하다. 가까이서 보면 높은 곳인 듯 보인다. 그러나 매장지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면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좁은 등산로 길가 바로 옆에 매장하였다. 매장지를 물색할 때 계획 없이 실시한다고도 하지만 필자가 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리 장소와 위치를 파악한 후 학살지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매장지도 도로가에서 100m~150m 정도 가깝게 들어가서 학살한 곳도 있다. 그런데 들어가면 밖이 보이지 않는다.

▶맺은말

서부경남의 중심인 진주시는 농민운동(1862년)과 형평운동(1924) 그리고 소년운동(1924)까지 최초의 발상지로서 전국으로 확산하여 의식이 넘치는 도시였다. 농민운동 주동자 유계춘, 형평운동에 앞장선 강상호, 김현수, 소년운동에 기여한 강영호 등의 깨어있고 정의로운 훌륭한 정신을 이어받으면 진주시 자긍심 모형의 기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제 한국전쟁 당시 우리 고장에서 벌어진 민간인학살사건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서는 진주시가 되길 바란다. 끝으로 필자는 추모비 건립과 미발굴지 발굴사업에 적극 나서 준 진주시에 경의를 표하고 진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다음달 12회 계속..

 

 

김영희(전직교사)/“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자원봉사자

 

※ 본 글에 포함된 모든 사진은 2차 가공 없이 출처(김영희/전직교사)를 밝히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