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정비기간을 마친 지리산 둘레길이 다시 북적대기 시작했다. 여우가 시집가고 호랑이가 장가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초록걸음 길동무들과 다시 만났다. 초록걸음은 해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사용할 펼침막을 준비한다. 올해는 “지리산의 마음과 지리산의 가르침으로...”를 펼침막 문구로 정하고 길동무들과 함께 길을 걷기로 했다.

 

2022년 첫 초록걸음으로 악양 들판을 한 바퀴 도는 평사리 둘레길을 택했다. 그 시작점은 2018년 여러 작가들이 골목길 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악양면 하덕마을이다. 동네 사람들은 하덕마을을 ‘섬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마을 골목길갤러리에는 골목골목 다양한 설치 미술 작품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골목길을 걸으며 작품들을 감상하고 인증샷을 찍는 재미가 쏠쏠했다.

 

악양천 다리를 건너는 길동무들 모습
악양천 다리를 건너는 길동무들 모습
600년 수령의 문암송
600년 수령의 문암송

하덕마을 골목길을 지나면 악양천 둑길을 따라 걷게 된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바람 또한 봄을 시샘하듯 세차게 불었지만, 보리 새싹이 막 올라오기 시작한 초록의 악양 들녘이 길동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악양천 다리를 건너서 도착한 대축마을에서는 지리산 둘레길 14구간의 시작점을 알리는 둘레길의 새 이정표 ‘벅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대축 마을회관을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면 바위를 뚫고 나온 600년 수령의 문암송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다. 문암송은 지리산권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몇 안 되는 소나무 노거수 중 하나이다. 지리산권 천연기념물 소나무로는 뱀사골 와운마을 천년송과 함양 목현리 구송 그리고 하동 송림이 있다.

 

악양 들판
악양 들판

악양 들판의 부부송과 최참판댁 그리고 눈 덮인 형제봉에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회남재까지 바라보이는 문암정에서 맛난 점심 도시락을 먹고, 문암송의 푸른 기운을 간직한 채 동정호로 향했다. 동정호로 가는 길가엔 매화가 만발했는데 그 진한 향기가 마스크를 무색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거라’라는 유언을 남긴 퇴계 이황과 그림값 3,000냥 중 2,000냥을 매화나무 사는데 써버린 단원 김홍도 이야기까지 곁들이며 절정인 매화 향기에 중독될 수 있었다.

 

부부송 옆을 지나는 60줄 넘긴 친구 부부의 뒷모습
부부송 옆을 지나는 60줄 넘긴 친구 부부의 뒷모습
동정호 주변을 도는 길동무들 모습
동정호 주변을 도는 길동무들 모습

부부송 주변을 장식한 매화나무엔 벌들이 앵앵거리며 꿀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악양 들판을 지키고 있는 부부송 옆을 지나는 60줄 넘긴 친구 부부의 뒷모습이 부부송만큼이나 다정스럽게 보였다. 부부송을 지나면 둘레길은 동정호에 이르게 된다. 하동군에서 ‘알프스 정원’이란 이름으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동정호 주변을 한 바퀴 돌고는 대촌마을 골목길을 지나 입석마을로 향했다.

 

형제봉주막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길동무 가족
형제봉주막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길동무 가족
마을의 쉼터가 되어주는 푸조나무
마을의 쉼터가 되어주는 푸조나무

입석마을엔 그 유명한 형제봉주막이 있다. 그 옆엔 ‘마을미술관 선돌’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미술관 선돌’은 마을 창고를 리모델링 해 2021년 5월 미술관으로 개관한 곳이다. 2019 마을 커뮤니티 사업으로 마을 주민대표와 놀루와 조문환 대표 그리고 하의수 작가가 주축이 돼 주민 도슨트 교육 등을 거쳤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세 번에 걸친 기획 전시가 있었다. 지난 2월 15일부터 3월 말까지는 필자의 ‘초록걸음 사진전’이 열리고 있기도 하다. 길동무들과 함께 사진전을 둘러보고는 입석마을의 당산나무인 푸조나무를 지나 시작점이었던 하덕마을로 향했다. 수령 300년이 넘은 이 푸조나무는 마을의 쉼터이자 수호신으로 지금도 섣달그믐날 자정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가 열리고 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60을 훌쩍 넘긴 할배 할매가 길동무가 되어 쉬엄쉬엄 걸었던 2022년 첫 초록걸음은 봄을 시샘하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지리산의 마음과 지리산의 가르침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는 봄볕이 더 따사로울 4월의 초록걸음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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