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고 YB 멤버들이 개별로 설치된 미니 단상 위에서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김성대]
공연이 끝나고 YB 멤버들이 개별로 설치된 미니 단상 위에서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김성대]

나는 YB를 싫어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또한 대중 인지도와 별개로 그들이 한국 록 역사를 새로 썼다거나 한국 록을 이끌어왔다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윤도현은 언제나 대중음악계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은 '정글 스토리'의 주인공이었고, YB는 그런 윤도현을 둘러싸고 버텨온 오래된 프로젝트였을 따름이다. '흰수염고래'를 비롯해 히트한 발라드 몇 곡을 가진, 2002년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를 불러 대박을 친, 이후 방송 활동으로 '연예인'이 된 윤도현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대중에게 불쑥 다가간 록 밴드. YB는 딱 나에게 그 정도 존재였다. 적어도 2022년 2월 26일 경남진주문화예술회관에서 그들의 단독 공연 'Lights'를 보기 전까진 그랬다.

아, 물론 좋아하는 YB 앨범이 없는 건 아니다. '긴 여행', '가리지 좀 마'가 수록된 2집(데뷔 때 솔로였던 윤도현은 이 앨범부터 '밴드'로 활동한다)과 리메이크 앨범이자 4집인 '한국 Rock 다시 부르기'는 지금도 즐겨 듣는 그들의 작품이다. 윤도현 솔로 2집 히트곡 '사랑했나봐'는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솔로 데뷔작에 있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또 좋아라 한다. 윤도현은 이번 공연에서 바로 이 옛날 발라드 곡들을 한 자리에 모아 들려주기도 했는데 해당 리스트엔 '가을 우체국...'를 비롯해 '사랑 Two', '너를 보내고', '사랑했나봐'가 포함됐다. 개인 욕심으론 YB 3집의 '먼훗날'도 듣고 싶었는데 이날엔 들을 수 없었다.

공연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건반과 리듬 기타를 번갈아 가며 연주한 윤도현(보컬)을 중심으로 25년간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박태희(베이스)와 김진원(드럼)이 윤도현의 좌우에 섰고, 무대 양끝엔 기타리스트 두 명(허준과 스캇 할로웰)이 자신의 임무를 위해 정승처럼 자릴 지켰다. 윤도현의 내레이션과 검푸른 스모그를 뚫고 등장한 다섯 멤버는 '잊을께', '나는 나비', '박하사탕' 같은 비교적 익숙하고 신나는 곡들로 몸을 풀었다. 이후 앞서 말한 발라드 곡들로 분위기를 환기시킨 밴드는 이제 자신들의 장기인 커버곡들을 하나 둘 꺼내 놓으면서 객석을 들뜨게 했다. 김광석처럼 '다시 불러' 명반을 남긴 밴드의 명성은 이 공연에서도 유효했다.

첫 곡은 지난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공개한 장필순의 쓸쓸한 발라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원곡자의 텅빈 허스키 창법과 달리 진/가성을 넘나드는 윤도현의 담담한 해석은 그것대로 맛을 냈다. 이어 끈적하고 은은한 노고지리의 '찻잔'이 흘렀다. 윤도현은 이 곡을 "중년 남성 분들이 특히 좋아하는 곡"이라 소개하며 특정 팬층이 아닌 폭넓은 연령층을 향해 손을 뻗는 YB의 생존 전략을 에둘러 고백했다. 밴드의 이 아련한 복고 분위기는 이문세의 '붉은 노을', 나미의 '빙글빙글', 4집에도 실었던(이날 편곡은 달리 했다)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그리고 2021년 한국 대표로 참여한 메탈리카 5집 트리뷰트 앨범 'Blacklist' 수록곡 'Sad But True'까지 이어지며 그날 현장을 찾은 40대 중반 이상 음악 팬들을 짙은 향수에 젖게 했다.

공연이 중반을 넘어설 때 시간 관계로 무대 위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은 YB는 이번엔 연령대를 정반대로 낮춰 애니메이션 주제곡 하나를 불렀다. 바로 어린이 채널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신비아파트 고스트볼Z: 어둠의 퇴마사' 주제곡 '운명의 시간'이었다. 엇박과 템포 변화가 잦아 대중이 쉽게 들어낼 곡이 아니었음에도 오랜 호흡에서 구축된 박태희와 김진원의 단단한 리듬 골격에 가슴 속까지 후련한 윤도현의 가창이 곁들여지며 노래는 이내 관객 모두에게 무리없이 다가간 듯 보였다. 흡사 '운명의 시간'을 들려준 그 순간은 또 다른 커버곡이었던 에스파의 'Next Level'과 함께 "현재에 안주 않는 미래지향형 밴드" YB의 상징 같은 순간이기도 했다.('Next Level'을 들으며 나는 이 밴드가 '한국 아이돌 다시 부르기'를 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뜨뜻미지근하게 바라봐온 YB라는 밴드를 내가 왜 이번 공연을 계기로 다시 보게 됐는지를 말해야 할 것 같다. 그건 김진원의 칼박 드러밍 때문도, '꿈꾸는 소녀'에서 수 분간 펼친 허준의 블루스 기타 솔로 때문도 아닌 결국 '윤도현'이란 존재 때문이었다. 데뷔곡 '타잔'을 "27년째 홍보하고 있다"며 우스갯 소리를 한 이날 윤도현은 이미 27년 전 '타잔'을 부르던 풋내기 로커가 아니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경험한 무대와 방송 경력으로 '공연 진행'의 방법을, 나아가 콘서트를 보러온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또 그들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실제 2시간이 훌쩍 넘는 동안 나는 이 공연에서 지루함을 거의 못 느꼈다. 처음엔 코로나19로 공연에 목말라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건 바로 윤도현의 청산유수 '말발'과 말끔한 노래 실력,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기반한 카리스마 덕분이었다. 강한 자가 오래 버티는 게 아니라 오래 버틴 자가 강한 것이라더니. 이는 곧 한 우물을 깊이 판 꾸준함(성실)과도 통하는 말일 터다. 나는 이날 YB를 보고 저 말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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