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세현]
[사진=최세현]

8월 초록걸음은 지리산 둘레길 대신 치유의 길로 알려진 연기암길을 택했다. 연기암은 신라 경덕왕 시절 연기조사가 창건한 화엄사의 경내 암자로서 화엄사의 원찰이기도 하다.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의 계곡길은 원시림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말 그대로 치유의 길이다. 화엄사 계곡 해발 560m에 위치한 연기암에 서면 섬진강 강줄기까지 바라볼 수 있어 또 다른 볼거리가 된다. 원래 이 계곡길은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를 시작할 때 노고단으로 오르는 첫 깔딱고개로 유명하다. 지금은 대부분 성삼재까지 차로 이동해서 종주를 시작하긴 하지만...

 

[사진=최세현]
[사진=최세현]

내리는 빗속에서 화엄사 주차장을 출발, 아래로 가라앉는 숲의 기운을 온전히 느끼면서 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걸음을 시작했다. 이번 초록걸음에도 초등 6학년인 지원이가 막내로 참가해서 걷는 내내 길동무들에게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오래된 소나무와 참나무 그리고 대숲으로 이어지는 계곡 길에는 주변에서 구한 바윗돌들을 촘촘히 바닥에 깔아 발바닥을 통해 또 다른 느낌으로 전해져 왔다. 그리고 장마로 불어난 계곡물은 물안개로 피우며 숲의 풍경에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이래서 다들 숲길의 참맛은 비 올 때라고 하는가 싶다.

 

[사진=최세현]
[사진=최세현]

화엄사 주차장에서 연기암까지는 대략 2Km 정도라 숲의 기운 흠뻑 느끼면서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거대한 문수보살상과 새롭게 세워진 황금빛 마니차에 압도되며 도착한 빗속의 연기암엔 운무가 자욱했다. 윤장대라 부르는 마니차는 둥근 원통에 경전을 넣어두고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면서 돌리며 소원을 비는 도구로 연기암 마니차가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한다. 연기암의 백미는 멀리 내려다보이는 섬진강 조망이겠지만 또 하나 더 단청 입히지 않는 관음전 가는 길 또한 짧긴 하지만 아름다운 오솔길의 진수를 보여주기 때문에 꼭 걸어 보길 필자는 강추한다. 연기암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비를 피해 원응전 처마 아래 마루에서 낙수 소리 들으며 맛난 점심을 먹었다.

 

[사진=최세현]
[사진=최세현]

연기암에서 다시 화엄사로 내려오면서는 치유의 길을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화엄사 도착하기 전 모과나무 기둥으로 유명한 구층암부터 들렀다. 구층암은 깨달음의 최고 경지라는 뜻의 불교 용어 구층대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번엔 구층암의 터주대감이자 야생차의 대가이신 덕재스님으로부터 차 대접과 함께 차에 대한 이야기도 듣는 횡재(?)를 했다. 재배 차가 쓴 까닭은 강제적 가지치기로 차나무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며 가능하면 야생차를 그리고 격식에 얽매지 말고 물 마시듯 자주 마시는 게 가장 좋은 차 마시기라고 강조하신 덕재스님의 차담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구층암을 뒤로 하고 화엄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각황전 옆 홍매는 초록의 잎만 달고 있어 언제 그렇게 붉었나 싶었고 대신에 그 붉음을 배롱나무가 이어가고 있었다. 붉은 꽃 활짝 핀 배롱나무와 그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각양각색 우산과 어울려 또 다른 화보를 만들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들과 함께 치유의 길 연기암길은 마무리되고 그렇게 초록걸음 길동무들의 몸과 마음도 비와 함께 초록 숲에 흠뻑 젖어 든 하루가 되었다.

 

[사진=최세현]
[사진=최세현]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