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민간인 학살 유족 증언록

10일 진주 명석면 관지리 한 야산(화령골)에서 한국전쟁 전후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
지난 5월 10일 진주 명석면 관지리 한 야산(화령골)에서 한국전쟁 전후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1주년이다. 전쟁과정에서 남북한에 걸쳐 수많은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학살과 함께 인민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도 자행되었다. 진주에서는 명석면과 용산면에서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를 중심으로 많은 민간인학살이 있었다.

단디뉴스는 민간인학살 유해 공동발굴단에서 제1~11차까지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김영희님의 글을 통해 전국각지 유해발굴 현장의 기록과 발굴을 둘러싼 사연, 증언록에 실린 생생하고 가슴 아픈 증언, 남겨진 과제 등을 15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연재가 한국전쟁의 기억을 되새기고 화해와 치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연재 계획.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연재 계획.

서울도서관 서편 외벽에 마지막 한 분까지 기억 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올해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1돌을 맞는다. 이 전쟁이 남긴 상처는 너무나 커서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대학살(100만 명 추정)이 자행되었지만, 지금까지 피해자와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조차 호소하지 못한 채 침묵의 세월을 강요당했다. 또한 시신마저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차가운 땅속에 버려져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진주 민간인 학살자는 타지역에 비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자(5,548) 희생자(3,000)들이 많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들의 증언록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피플파워, 2020)이 발간되었다. 증언록은 5명으로 구성된 진주 유족회 증언 채록팀이 기록했다. 팀장 김주완 저자는 경남도민일보 기자로, 한국 현대사의 전쟁범죄나 위안부 등의 숨은 역사를 찾아서 보도했고, 그 인연으로 유족회 증언록을 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증언록을 만나게 된 것은 유해발굴 자원봉사로 활동하던 중 2021511일 제11(용산면 관지리 산 72) 발굴하면서 유족회 회장을 통해서였다.

증언록에는 유족들의 구구절절하고 애절한 사연과 보도연맹원 학살의 실상이 17명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지면 관계상 두 분의 증언만 본문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첫째 사연은 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학살당하셨는지 알고 계신 내용을 말씀해주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한 유족 딸의 증언.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아무 죄없이 갔다고 해요. 엄마 따라 밭이나 논이나 갈 때 위에 마을구장이 열 살 정도 많았는데, 길에서 만나면 그 할배가 우리 엄마한테 인사를 45도로 굽혀서 하는 걸 봤어요. 우리 엄마는 새파란 나이였는데도, 인사를 받기는커녕 고개를 홱 돌려버렸어요. 지나가고 나면 더런 놈 나한테 인사를 해? 저놈이 들어가지고 죄 없는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라고 했습니다. ‘죄 없는 사람들 도장 받아가서 다 죽게 만들었다고, 지는 도망 나와삐고, 인사가 뭣이고 더런 놈이랬어요. 논이나 밭에 갈 때마다 그 아저씨가 만나지더라고. 볼 때마다 그래서 엄마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되었어요. 엄마가 그 사람만 보면 이를 갈더라고. 그때는 자세한 사연을 몰랐고, 나중에 제가 처녀 때에야 그 사연을 들었어요.”(본문 107~108)

두 번째로 소개된 사연. ○○ 유족의 아버지(당시 28)는 진주 본성동에서 철공장을 했다. 6.25 나던 해 7월 초 새벽에 사복경찰이 권총을 들이대면서 아버지를 나오라고 해서 체포해간 후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같이 살던 작은 아버지가 형님이 대한청년단에서 근무하고 새벽에 들어왔다고 했다. 증언자의 이모가 당시 교도관이어서 아버지 옷을 이모 편으로 전달하곤 했으며, 아버지가 트럭에 실려 가기 전 이모에게 우리 숙이가 보고 싶다고 했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경찰에 이마를 맞아 이모가 속치마를 뜯어 이마에 매어주었다고 한다. 사람을 실은 트럭이 명석면 용산리로 갔다는 것을 이모 편으로 듣고, 할머니, 어머니, 고모부가 시신을 찾으러 갔으나 비가 오는데다가 시신은 겹겹이 겹쳐서 찾을 수 없었고 용산고개의 골짜기에는 핏물이 가득 흘려내렸다고 한다.”(본문 126)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위에서 소개한 인용문은 경상도 사투리를 유족들이 말씀하신 그대로 기록하였기에 증언들이 생생하고 다정하며, 애절하고도 투박한 발음이 나의 마음에 고스란히 젖어들었다. 유해발굴에 참가한 경험이 있기에 증언록을 감동 깊게 읽을 수 있었고 유족들의 아픈 마음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었다. 당시 한 동네에서 살고 매일 만나면서 원수 보듯 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고난이 얼마나 깊은 상처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또한 교도관으로 근무하면서 자신의 형부가 트럭에 실려 학살지로 향하는 모습을 보는 이의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증언록에는 연좌제로 좌익 가족으로 몰려 평생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사회적 낙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도 실려 있다. 증언록에 바램이 있다면 증언 채록을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책과 함께 발간하여 교육용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0512월 노무현 정부에서 비로소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약칭 진화위) 발족되어 7,922개의 사건을 접수하여 150개 유형별로 나누어 조사하여 16,572명의 희생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168개 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13개 지역을 발굴했다. 1,617구의 유해와 5,600여의 유품을 수습하여 충북대학교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관에 임시 안치했다. 부분적이긴 하지만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2010년 이명박 정권에 의해 진화위 활동이 중단되면서 국가 차원의 과거청산 작업은 전면 중단되었다.

결국 한국전쟁 유족회가 요청하고 관련 단체들이 뜻을 모아 시민의 손으로 2014218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결성되었다. 현재 공동조사단은 제11차까지 전국적으로 발굴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1(명석면 용산고개 산 425-1) , 4(명석면 용산고개 산 417-2) 발굴 시 39구와 35, 11(용산면 관지리 산 72) 25구 그리고 마산 여양리 발굴 163구 모두 262구가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컨테이너에 봉안되어 있고, 문산에서 발굴한 유해 111구는 세종 추모관에 영면하고 계신다. 1기 진화위가 미처 매듭을 짓지 못하고 2010년 종료된 지 10, 지난해 122기 진화위가 출범하여 조사를 지속하고 있다. 충실한 조사로 화해와 유족보상까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대학에서 사학과를 전공하였고 고등학교 역사교사를 지냈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약칭 민문연) 진주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시절 교수님의 청동기, 신석기 유적 발굴 현장에 처음으로 참여했으며 발굴이 저에게는 재미있고 보람이 있었다. 그 후 민문연 회원으로 20여 년 활동하면서 민문연이 주관하고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 공동발굴단이 실시한 2014년 제1차 명석고개 유해 발굴과 첫 인연이 되었다. 하지만 유해 발굴에 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발굴현장에서 우연히 고 이○○ 교수님의 마산 여양리 발굴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논문을 읽는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교수님은 대학 은사님이셨고 불행하게도 여양리 발굴현장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길로 교수님의 제자로서 교수님을 잊지 않기 위해 유해발굴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1~11차까지 8년여간 전국의 여러 지역으로 한국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유해발굴할 때마다 교수님과 함께 발굴을 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발굴을 하면서 유해가 드러나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의 손에 의해서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와 주셔서 정말 고맙다 인사를 하곤 한다. 역사교사로서 유족의 아픈 역사가 나의 역사임을 인식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유해발굴 자원봉사를 지속할 예정이다. 어쩌면 자원봉사하면서 되려 나 자신이 위로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영희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 공동발굴단’ 자원봉사자. 고등학교 역사교사를 지냈고,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회원이다. 1차부터 11차까지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김영희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 공동발굴단’ 자원봉사자. 고등학교 역사교사를 지냈고,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회원이다. 1차부터 11차까지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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