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유월민주항쟁 돌아보는 ‘진주길 따라’ 행사 열려
김임섭 해설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갈망 커”
[단디뉴스=이은상 기자] “누군가에게 잡혀들어가 눈을 떠보니, 경찰서 형사실이었다. 그날 밤새도록 고문을 당했다. 통닭구이 고문을 당해 허공에 매달린 채 수없이 매를 맞았고, 수갑은 살을 파고들었다. 물고문에 허파가 찢어지는 고통도 느꼈다. 고막이 터져 지금도 작은 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시위와 1988년 MBC 방화사건 등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1988년, 진주경찰서에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는 김임섭 씨는 지난 12일 열린 ‘유월민주항쟁 서부경남 진주길 따라’ 행사에 해설가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는 진주지역에서 일어난 유월민주항쟁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경남유월민주항쟁 정신계승 시민연대’를 비롯해 9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1987년 6월, 진주는 그 어느 곳보다도 민주화 시위가 뜨겁게 일어난 곳이다. 6월 14일 서울 명동성당 농성 해산으로 민주화 시위가 주춤하던 때 민주화 시위의 불씨를 살렸다. 6월 17일 시위대는 남해고속도로를 점거해 LPG 운반 트럭 2대를 탈취해 경찰과 대치했다. 이날 시위 내용은 전국 주요언론의 1면과 외신에 실리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임섭 해설가는 유월민주항쟁에 대해 “다양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민주주의를 일궈낸 의미 있는 투쟁”이라고 회고했다. <단디뉴스>는 이날 김 해설가를 따라 시민들 틈 속에서 진주 유월민주항쟁의 역사가 담긴 주요거점을 돌아봤다. 순회 노선은 진주교육지원청에서 출발해 진주경찰서, 메가박스, 갤러리아백화점, 롯데인벤스, 옥봉성당, 하연옥, 청소년수련관 등으로 이어졌다.
김 해설가는 노동자의 신분으로 투쟁에 참여했던 87년의 기억을 회상하며 해설을 시작했다. 그는 옛 진주극장(현 메가박스)에 도착하자 이 부근이 시위의 중심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당시 광미사거리 부근에서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 이곳 주변에 숨어있던 시위대는 호각소리에 화염병을 던졌고, 쇠파이프를 들고 선동에 나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옛 MBC(현 롯데인벤스) 자리에 도착하자. 이곳에서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져 방화를 일으켰다고 했다. 김 해설가는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언론사의 왜곡보도가 심했다. 유월민주항쟁 당시, 시위대는 언론사의 왜곡보도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MBC 사옥에 방화를 일으켰으며, 취재에 나선 기자들의 카메라를 부수기도 했다”고 했다.
김 해설가는 옛 수정파출소(현 청명인테리어)에 대해 “당시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며 파출소에 습격을 했지만, 수정파출소 소장은 시민들의 편이어서 이곳은 습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옥봉성당을 두고 “유월항쟁에 관한 시민들의 의식이 태동 된 장소”라고 강조했다. 5.18과 관련된 영상을 시청한 시민들이 이곳 성당에서 민주화에 대한 의식의 싹 틔웠다는 것.
김 해설가는 옛 보안대(현 장대동 공영주차장) 주변에 들어서자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갖은 취조와 고문을 당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옛 진주호텔(현 하연옥)을 두고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머물기도 했던 곳이다. 이곳 주변에서 경찰과 깡패들이 진을 치고 시민들의 통행을 막아서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도병원 앞에서 “이곳 병원은 역사가 깊은 곳이다. 1988년 총선 때 고(故) 백기완 선생이 경상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 참여하셨는데, 강연이 끝난 뒤 경찰이 학내에 진입했다. 경찰의 무력진압 과정에서 저는 무사히 도망을 쳤지만, 학생들 중 일부는 크게 다쳐 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해설가는 옛 중앙파출소(현 폰옥션) 부근에서 “그 당시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 곳”이라고 전했다. “경상대에서 출발한 시위대가 진주교로 입성하는 것을 경찰이 봉쇄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그는 옛 시청(청소년수련관)에 들어서자 “그 당시 경찰서와 시청을 탈취하면 우리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성순옥 씨는 유월항쟁 당시, 경상대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이곳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 행사에 참여하니 그 당시 최루탄 냄새가 세상을 뒤덮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형평운동 기념비 주변(메가박스 앞)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 지역의 뜻깊은 역사를 후세들에게 온전하게 전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