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어물 거리를 부활시키려는 꿈

[단디뉴스=정원각 시민기자] 목포는 근대문화 유산을 가장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물론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활성화됐지만, 전남 무안군에 속한 지역으로 백제 시대부터 항구로써의 역사는 천 년이 훨씬 넘는다. 목포는 오랜 세월 동안 왜구의 출몰로 인해 도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나, 20세기 들어서면서 한반도 남서부의 가장 중요한 항구가 됐다. 인구는 1990년대 약 25만 명을 넘었다가 이후 계속 감소하여 2022년 12월 말에는 약 21만 6천여 명이다. 2000년대 들어서서, 연근해 어업이 축소되고 현대삼호중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업의 쇠락으로 도시 전반이 활기를 잃어 인구가 줄고 있다.

 

목포의 근대문화 유산(左) / 건맥1897협동조합이 있는 건어물 거리.
목포의 근대문화 유산(左) / 건맥1897협동조합이 있는 건어물 거리.

건맥1897협동조합은 이런 목포의 역사를 담고 있다. 1897은 목포의 개항 연도이고 건맥은 건어물과 맥주의 줄임 말이다. 치킨과 맥주의 치맥, 피자와 맥주의 피맥이 생기기 훨씬 전에 맥주 애주가들에게 사랑받던 안주가 말린 멸치, 오징어, 한치, 쥐포, 노가리 등의 건어물이었다. 건맥은 치맥과 피맥의 큰 형님뻘 된다고 볼 수 있다. 이 협동조합이 있는 목포 바닷가 만호동 건어물 거리가 잘 나가던 때는 목포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건맥1897협동조합의 이름에는 다시 이 유명세를 얻고자 하는 조합원들이 염원이 담겨 있다.

도시재개발, 재건축에서 도시재생으로

과거, 정부가 주거환경 개선, 정비 등의 명분 아래 강압적으로 추진한 도시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소수의 건설업자, 개발업자들에게는 큰 이익을 주었지만, 생계, 생활 터전에서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러므로 강제 철거에 대한 저항은 필연적이고 필사적이어서 자주 사회 문제화됐다. 이는 배제, 양극화, 빈곤 등으로 이어져 갈등을 촉발시키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등의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런 식의 재개발을 지양하고 원주민, 세입자들이 기존 지역에 계속 거주하는 것을 최대한 보장하고 주민이 논의에 참여하면서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도시재생이라 한다.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전환한 곳은 자본주의, 도시화를 먼저 경험한 유럽이다.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 빌바오와 스웨덴 말뫼 그리고 영국의 프레스턴 등이다. 특히, 빌바오의 도시재생은 지역주민, 공무원, 대학, 기업, 시민사회 등이 참여하는 '빌바오 메트로 폴리 30'을 구성하여 진행했다. 그 결과 빌바오는 젊은이들이 도시에 머무르게 하는 혁신적인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이를 상징하는 건물이 빌바오 한가운데 흐르는 네르비온 강가에 세워진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는 것보다 주민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악취가 나던 네르비온 강을 먼저 살리고 그곳에 미술관을 건축한 것이다.

 

네르비온 강가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네르비온 강가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제정된 도시재생법

우리나라에서 도시재생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도시재생법이 제정되면서다. 하지만 그 전인 노무현 정부의 '살고 싶은 도시', 이명박 정부의 '도시 활력 증진' 등의 정책으로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은 시작됐다. 법 제정 전에 창원, 전주, 청주 등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됐다. 시간이 흘러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됐고, 2013년 도시재생법이 제정되며 도시재생에 대한 방향이 조금씩 흐름을 잡게 됐다. 단순히 거리, 건물 정비 차원이 아니라 주민들이 주인 되는 사업체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주민들이 직접 경제 조직들을 설립하도록 지원했다.

 

만호동 거리(左) / 쇠락 지역이 된 만호동.
만호동 거리(左) / 쇠락 지역이 된 만호동.

법제화 후,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의 패턴을 보면 쇠락 지역에서 빈집과 건물을 조사, 발굴을 하고 리모델링 사업을 한 후에 주말 마켓장터 사업과 카페 또는 지역 생산물을 판매하는 편집숍을 여는 것 등이다. 2015년 도시재생지원센터가 문을 연 목포도 비슷하다. 뱃고동소리협동조합은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협동조합 중의 하나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해산물 가공과 유통을 위해 만들었다. 2019년 1월 목포도시재생지원센터 센터장이 된 전은호 씨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주민 조직을 지원했다. 대표적인 것이 건맥1897협동조합과 꿈바다협동조합이다.

건어물과 맥주, 숙박하는 협동조합을 통해 살아나는 건어물 거리

이 중에 건맥1897협동조합은 기존의 주민조직을 최대한 살린 방식이다. 2007년부터 건어물 거리에 상인회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상인회를 2019년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하게 한 것이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19년 가을, 건어물 거리에 젊은 사람들이 오게 하려고 맥주 축제를 했는데 상인들이 참가자들에게 자발적으로 건어물 안주를 제공하면서 큰 호응을 받았다. 이를 경험한 상인들은 먼저 한 번 더 하자고 제안하는 등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건어물 거리에 맥주 한잔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상인들 스스로 맥줏집을 운영하기로 하고 만든 조직이 건맥1897협동조합이다.

창립 조합원으로 상인 회장, 지역 청년, 주민 리더, 도시재생지원센터 직원 등 6명이 함께 했다. 장소는 건어물 거리 중간에 비어 있는 건물을 무상으로 임차해, 인테리어 공사를 한 뒤 마련했다. 그런데 시작한 지 3년 만인 2022년 12월, 조합원 150명, 출자금 1억 원이 모였다. 한편, 2020년 조합에서는 건물을 매입하는 것을 검토했다. 매입 비용 3억 원과 리모델링, 인테리어, 시설과 설비 등 5억 원, 전체 8억 원이면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조합 자체 조달 7천만 원, 사회적경제특례보증으로 5천만 원 대출, 비플러스 클라우드펀딩 6천만 원,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SVS)에서 1억 2천만 원 등 3억 원을 조달하고 행안부 지역자산화 자금 5억 원 저금리 융자 등으로 8억 원을 마련해 건물을 매입했다.

 

지역자산화로 매입한 건물(左) / 출자한 조합원 명단과 숙박 시설.
지역자산화로 매입한 건물(左) / 출자한 조합원 명단과 숙박 시설.

현재 건맥1897협동조합은 두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하나는 건물 1층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레스토랑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 3층에서 1-2인실 방 11개를 운영하는 숙박 시설업을 하는 것이다. 건어물 거리에서는 2022년에도 거리 축제를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레스토랑의 매출은 점점 늘고 있다. 숙박 시설은 주말에는 만실이고 주중까지 합하면 평균 30-40% 정도로 객실이 찬다.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큰 변수 없이 이대로 진행된다면 자산화 사업으로 빌린 자금을 몇 년 안에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이다. 아울러 건어물 거리에도 사람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견학을 오고 있다.

 

경남 상주에서 견학(2021년, 左) / 2022년 맥주 축제.
경남 상주에서 견학(2021년, 左) / 2022년 맥주 축제.

건맥1897협동조합의 과제와 전망

초대 이사장인 박창수 씨는 건어물 거리 상인회 회장 출신인데, 상인 조합원들과 신뢰 관계가 아주 좋다. 한편 이제는 상인회로 맺어진 관계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조직, 시스템으로 발전해야 한다. 특히, 의사결정에 있어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훈련과 리더십으로 협동조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아울러 조합원들은 자본기업이 아닌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와 함께 자본기업과의 차이를 알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경제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건맥1897협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목포에 있는 협동조합들이 교류하고 협력하는 협의체를 설립하는 것이다. 현재 약 10개 정도의 협동조합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으나 활발하지 않다. 활성화하여 서로 시너지를 주는 조직으로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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