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희, 송창식이 함께 부른 _안개_ 뮤직비디오 캡처 화면. 안무가 모니카가 함께 했다.
정훈희, 송창식이 함께 부른 _안개_ 뮤직비디오 캡처 화면. 안무가 모니카가 함께 했다.

75번째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바위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한 이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품으며 나아가는 이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처럼 잔인하지도, '올드보이'처럼 불편하지도, '박쥐'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처럼 추상적이지도 않다.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정치 메시지나 감독의 주장을 배제하고 배우의 연기와 카메라 샷이라는 최소한의 영화적 구성 요소만으로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를 노린 로맨스스릴러 또는 수사멜로극이다. 게다가 박찬욱 영화에선 성립되기 힘든 무려 15세 관람가(!)다.

보통 실패로 이어지곤 하는 '결심'이라는 단어를 관객들이 곧이곧대로 해석하진 않을 것이란 이유로 지은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는 과연 "히치콕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히치콕 영화" 같다는 혹자의 평을 차분히 수긍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낯익은 노래 하나에 정서와 분위기를 통째로 지배당하고 있었으니 바로 정훈희의 '안개'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 /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 (...)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헤어질 결심'을 감상한 사람이라면 이 가사가 해준과 서래의 플라토닉 사랑을 빼어나게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또 어릴 때부터 '안개'를 좋아한 박찬욱 감독은 뿌연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보려 하는 의지와 노력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헤어질 결심'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랫말 중에서도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부분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는데, 이는 실제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상태나 사물, 관계, 감정"을 산발적으로 전시한 영화에도 정확히 부합하며 사실상 주제가로서 '안개'의 위치를 재확인시킨다.

'안개'는 1967년 남대문 인근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악단장이었던 작은아버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팝송을 부르던 정훈희가 작곡가이자 색소포니스트였던 이봉조의 눈에 띄어 부르게 된 노래다. 이봉조는 최초 남성 사중창단인 쟈니브라더스가 먼저 불렀던 '안개'를 고쳐 당시 17세였던 정훈희에게 주면서 그녀 인생을 바꿔버렸다. 정훈희는 MBC 라디오 박진현 PD가 가사를 쓴 '안개'를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불러 '월드 베스트10'에 들기도 했다.

잔정이 많고 호탕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안개'의 작곡가 이봉조는 1932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진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진주중학교로 가 음악교사 이재호('가요계의 슈베르트'라 불리며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작곡가. '귀국선'과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이 대표곡이다)를 만나며 음악에 눈을 떴다. 진주농고를 다니며 미군 부대 담장 너머로 존 콜트레인과 소니 롤린스를 듣고 밴드부에 들어가 색소폰을 불기 시작한 그는 테너 색소폰과 클라리넷 연주자인 엄토미의 연주법을 교본처럼 익혔고, 테너 색소폰 하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스탄 게츠를 흠모하며 실력을 쌓았다.(1970년대 초 스탄 게츠가 인삼이 색소폰 연주에 도움을 준다는 말을 듣고 한국을 찾았을 때 TV에 함께 출연해 협연을 한 사람이 이봉조였다는 훈훈한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부친은 아들의 음악 진로를 반대했다. 결국 이봉조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에 진학해 서울시청에서 2년을 근무한다. 물론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단조로운 공무원 생활은 그가 가진 음악 재능과 의지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시청 일을 그만둔 이봉조는 정훈희의 데뷔곡인 '안개'와 대표곡인 '꽃밭에서', 김추자의 '무인도' 등을 잇달아 써내며 일약 스타 작곡가가 된다. 이후 이봉조와 부부 연을 맺는 평양 출신 가수 현미 역시 프랭크 시나트라와 냇 킹 콜이 부른 'It's a lonesome old town'을 번안한 '밤안개'를 비롯해 또 다른 이봉조의 곡들인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를 줄줄이 히트시키며 자신들의 전성기를 만끽했다.

1962년 MBC가 주최한 '전국 경음악단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일을 계기로 TBC 전속 팝스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발탁된 이봉조는 해당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쇼쇼쇼'를 10년 동안 맡는 등 승승장구 하던 끝 1987년 8월, 자신이 운영하던 압구정동 클럽 '봉'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50대 나이에 명을 달리 했다.

이봉조의 대표곡 '안개'는 사실 '헤어질 결심'이 나오기 55년 전 개봉된 한국 영화에도 주제가로 쓰인 적이 있다. 김수용 감독이 작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심지어 제목까지 '안개'였다. 당시 정훈희가 녹음한 나긋나긋한 버전은 배우 윤정희가 작품 속에서 립싱크로 불러 처리됐다.

반면 박찬욱은 정훈희와 송창식이 함께 부른 듀엣 버전을 자신의 영화 마지막에 흐르게 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며 과거 송창식과 윤형주가 결성한 트윈폴리오의 '안개' 버전도 있었단 사실을 알고(이 사실은 영화에서도 직접 언급된다) 결국 두 버전을 한 노래에서 들을 수 있는 쪽을 택한 것이다. 듀엣 녹음을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박 감독은 녹음 현장에서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는데, 어쩌면 고인(이봉조)이 살아 그 현장에 있었어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나는 괜한 상상을 얹어보았다.

 

글/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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