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도 영어도 아닌데 일상어 되더니
문화 힘 덕에 옥스퍼드사전 등재 '대박'

'화이팅'은 편을 나누어 승부를 겨루는 운동경기에서 제 편의 전의를 북돋우고 다지는 데 쓰여 온 구호라. 말 뿌리의 변이를 온전히 알 수는 없으되 용례로 미루어 보건대 'fight'에서 나온 말 같다. 알파벳 'f'를 소리 내는 것이 '순치 마찰음'이란 난삽한 명찰을 단 국어에는 없는 발성이라. 이른바 'ㅍ'과 'ㅎ'의 중간 어디쯤 그러니까 '윗입술을 살짝 뒤집고 앞니 사이로 바람이 나가는 느낌으로' 소리 내야 한다는 정밀함이라니. 우리로선 애매하고 거북하기 짝이 없는 이 '입짓'을 아예 'ㅍ'으로 해버리자고 '외래어 표기법'에다 아퀴를 지은 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파이팅보다는 화이팅이 입에 익어 시도 때도 없이 화이팅 거리더라.

쓰면서도 불퉁가지가 이는 것은 이 '화이팅'이란 말이 국제경기에서 우리 편의 독전 구호로 쓰이는 것이 너무 마뜩잖고 싫었던 까닭이다. 우리말이 아님은 분명하고 그렇다고 명징한 영어도 아닌 것이 왜말 냄새 배어있는 느낌의 저 같잖은 말을 언제까지 외댈 것이냐고 구시렁거려온 터다. 그러므로 적어도 나라 대항전에서는 '이기자' '깨자' '넘자' 같은 곱고 힘이 넘치는 우리말로 바꾸자고 오랜 시간 주장했던 것이라. 그런 생각 품은 것이 혼자만은 아니었던 듯 국립국어원에서도 '힘내자'라는 대체어를 내놓은 바 있고 2004년에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 공모로 '아자'라는 멋들어진 제언이 있었다. 군대에서도 이 제안을 장려해 모 사단의 구호가 바뀌기도 했다는데 그 바뀐 구호라는 것이 세상에 "아자 아자 파이팅"이었더란다. 어안이 벙벙하지만 배열이 야무지고 각이 잡힌 것이 외려 군용으론 손색없는 격문이라 여겼다.

그러구러 구호 '화이팅'은 기세 좋게 영역을 넓혀 둘 이상이 모이는 어떤 제목의 회합에서도 각오와 결의를 다지자며 선창하는 자가 나서는 관용 구호로 굳어져 왔다. 그것은 fight에서 나온 살기 띤 전투의지를 말함이라기보다는 다감한 우의를 새기는 쪽으로의 선회였다. 다짐과 다독임의 등을 쓸어주는 격려 같은 것으로 확장 변환된 모양새이다. 저항을 무릅쓰고 스며들어 눌러앉은 성공한 언어가 된 것이라.

홍창신 칼럼리스트
홍창신 칼럼리스트

11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영어권 언어학자뿐만 아니라 지구촌 문학 연구가들에게도 필수사전으로 평가받는 것이 옥스퍼드 대학의 영어사전이란다. 그 대학 출판부가 학계에 기여한 공헌을 인정받아 매년 신조어 등재를 발표하는 권위를 부여받았는데 지난해 9월 업데이트된 신조어 속 우리말이 신기하다. 세계인이 학습할 새로운 단어로 언니 오빠에다 불고기·동치미·갈비·잡채·삼겹살이 'mukbang' 범주에 올랐고 '화이팅'이 'fight'를 기원으로 하며 응원과 지지를 표현하는 단어'라는 설명으로 올려진 것이 놀랍다. 그야말로 'daebak'이다.

두껍디두꺼운 옥스퍼드사전에 추가된 우리말이래야 26단어에 불과하지만 hallyu(한류), k-(한국의)와 같은 신조어를 보며 가슴 뭉클한 감회가 인다. 갖은 어려움을 딛고 일궈온 우리의 신산한 삶을 꿰어 각색한 것이 <기생충>이 되고 <미나리>가 되고 <오징어 게임>이 되어 만방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 열매로 우리 일상어가 그들의 말광에 등재된 것이다. 이로써 내 고질인 '화이팅 콤플렉스'는 말끔히 치유된 셈이다. 징글징글한 역병에다 선거까지 겹친 북새통을 견뎌내고 있는 내 친애하는 이웃의 건투를 빌며. 화이팅!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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