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불)구속 기소, 수배됐던 이들

[단디뉴스=김순종] 국가보안법 폐지 여론이 뜨겁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으로부터 시작된 국회 국민청원(국가보안법 폐지)에 지난달 19일까지 10만 명의 시민들이 서명하면서다. 10만 명이 청원에 동의하면서, 폐지안은 같은 달 20일 국회 법사위에 회부됐다. 17년 만에 국가보안법 폐지여론이 다시 한 번 고조되는 양상이다.

국가보안법의 표면적 제정 이유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함이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의견을 말살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데 이용되어온 악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독재정부는 물론이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법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1987년 설립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계승해 1993년 창설된 대학생 조직이다. 200여 개의 대학이 가입돼 있던 한총련은 1996년 연세대 항쟁, 1997년 이석 치사사건 등을 거치며 이적단체로 분류됐다. 이후 가입대학의 단대 회장 이상 직위를 가진 학생들은 한총련 가입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진주에도 한총련 가입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수배되거나 구속, 기소된 이들이 있다. 최승제(1998년 서울대 동아리연합회장), 김준형(2002년 경상국립대 법대 학생회장, 2003년 총학생회장) 씨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와 수배 등을 당했다.

 

한총련 1기 출범식(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총련 1기 출범식(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들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라고 했지만, 나는 이적단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우들이 나를 (동아리연합회장으로) 선출한 건데 그걸 왜 국가기관이 인정하지 않는가. 학생들에게 평가받으면서 학생회 활동, 학생운동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기도 했다. 그게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건가?” - 최승제 -

학생회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하다. 단순히 학생운동만 하려고 학생회장이 되는 건 아니다. 자주, 민족, 통일.. 사상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누구도 말하지 않으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걸) 각오하고 말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그게 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야 했는지 모르겠다” - 김준형 -

최승제, 김준형 씨는 지난 2일 이 같이 말했다. 최승제 씨는 199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를 받아 19991월 체포됐다. 두 달간 서울구치소에 복역하다 징역 2,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김준형 씨는 2002년 같은 혐의로 수배돼, 2005년 불구속 기소됐다. 자격정지 3,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사유는 한총련 대의원이었다는 것뿐이었다. 당시 한총련 가입 대학의 단대 학생회장 이상은 한총련의 당연직 대의원이 됐다. 19976월 정부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분류하면서, 한총련 간부들은 한총련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2000년 전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이들 중 대부분이 한총련 소속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시절의 최승제 씨
대학시절의 최승제 씨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분류된 것에는 두 가지 사건이 유효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연세대 항쟁과 1997년 이석 치사사건이다. 19968월 한총련은 연세대에서 통일대축전을 열었고, 경찰이 이를 강제해산시키려 하자 강경하게 맞섰다. 의경 200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대학생 5천여 명이 구인, 연행됐다. 400여 명은 구속됐다.

이석 치사 사건은 19976월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한총련 제5기 출범식장 근처를 지나던 선반기능공 이석이 학생들에게 집단구타당한 뒤 사망한 사건이다. 대학생들은 이석을 프락치로 오인해 이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 이 사건은 이후 학생운동이 대중성을 상실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일들이 있었지만 대학생 단체인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분류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최승제, 김준형 두 사람의 입장이다.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민주화 운동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었던, 영향력이 큰 단체가 학생운동권이었다. 전두환 학살자 처벌 운동 등도 일어나니 이를 억누르기 위해 정권이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분류한 것 아니겠냐는 것.

이들의 말처럼 1990년 이루어진 한 여론조사에서 전대협은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가장 큰 단체 3위로 뽑혔다. 여당과 야당 바로 다음이었다. 한총련은 전대협을 계승한 단체로, 그 역시 영향력이 컸다. 특히 자주 통일 민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목소리를 내던 이들은 정권의 입장에서 눈엣가시가 될 수 있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을 으로 치부하거나 이제 관에 들어가야 할 법이라고 규정했다. 김준형 씨는 국가보안법은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잡아가던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기인한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짜맞추기, 조작 등으로 이 법을 악용했다며 국가보안법은 이제는 없어져야 할 악마 같은 법이라고 했다.

최승제 씨는 “2004년도에 관에 들어갔어야 할 법인데, 지금까지 폐지되지 않았다. 늦었다시대가 흘러가면 사라져야 할 것들이 있다.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민주정부 시기에 이 법이 유지된다는 게 난센스다. 이 법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아직 형식적 민주주의도 도래하지 못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수배 당시 김준형 씨의 모습(가운데)
수배 당시 김준형 씨의 모습(가운데)

특히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꼭 폐지돼야 할 이유에 정권에 따라 또 다시 시민들을 탄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이명박 정권이 열리면서, 10여 년 간 축적되어온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들이 터져 나왔다. (법 조항을 보면) 남북교류만 해도 회합, 통신죄에 걸릴 수 있는 게 많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와 통일을 막고, 전근대적 국가관을 유지시키는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준형 씨는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막을 뿐 아니라, 통일을 방해한다. 북한에 대해 알아보는 것만으로 국가보안법이 적용될 수 있다. 심지어 노동, 농민, 학생운동에 어떠한 혐의를 물어 이들을 탄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최승제 씨는 국가보안법은 전근대적인 국가관을 유지시킨다.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가 인간 위에 있게 하는.. 거기에 위배되면 국가보안법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사상의 자유나 인간의 생각을 통제하는 법이다. 심지어 대통령도 자기 직무(남북화해/통일)를 수행하다가 이 법에 저촉이 될 수 있다며 국가보안법이 악법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한편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20명에 달한다. 역대 정부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기소자 수는 박정희 정부 6944, 전두환 정부 1759, 노태우 정부 1529, 김영삼 정부 2075, 김대중 정부 2157, 노무현 정부 412, 이명박 정부 202, 박근혜 정부 181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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