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같이 ‘마실’ 기행 후기(4)

뭍에는 우유, 바다에는 꿀(서포 사람들은 굴을 꿀로 발음한다). 흔히 우유와 굴은 그 풍부한 영양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종종 함께 비교된다. 서포는 이 굴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매년 11월 찬바람이 불 때부터 다음해 설이 지난 2월 말까지가 주 생산 시기다. 그 중에서도 김장과 설, 두 번의 절정기를 맞는다. 그래서 서포에 굴을 사러 가려면 김장철과 설을 피해야 싸게 살 수 있다.

2019년 1월 첫 달의 마실을 서포장날로 잡은 이유는 서포가 한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한 지역이고 다른 생물이 거의 안 나오는 추운 겨울에 오히려 싱싱한 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포장에는 굴이 없었다. 더구나 장에 물건 팔러 나온 사람도 사러 나온 사람도 너무 적었다. 급 실망... 이유를 물어본 즉,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굴 까러 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굴의 계절인 것은 맞지만 유통 환경의 변화로 굴이 장에 오지 않는다. 바닷가에 나란히 세워진 비닐하우스에서 굴을 까고 포장해서 바로 택배로 부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주문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받는다. 이런 변화가 장날을 쓸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발전이다.

▲ 정원각 진주같이 마실모임 회원

요즘 과학의 발달로 인한 생산력의 증대 효과를 가장 실감 있게 느끼는 것이 있다면 단연 전복일 것이다. 나 같은 서민의 자녀가 그 옛날 40~50년 전에 전복을 먹으려면 적어도 병원에 입원해야 그 호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쉽게 먹을 수 있다. 전복만큼은 아니어도 굴도 귀한 것이었지만 재배하는 방법이 발달해서 비교적 자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굴은 원래 바닷가 돌에 붙어 자란다. 그래서 석화라고 했다. 돌에서 자라는데 돈이 되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어민들이 예쁘게 지어줬으리라. 굴의 그 특성을 살려 어민들이 갯바위에 종패를 뿌리는 방식이 투석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그렇게 키우지 않는다. 투석식은 생산성도 낮고 굴을 캐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 한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한 서포시장

요즘은 하루 종일 바닷물에 푹 담가서 키우는 수하식이나 육지 가까운 곳에 나무를 세워서 키우는 지주식으로 한다. 수하식이 지주식에 비해 빨리 자란다. 지주식은 밀물과 썰물을 견디며 햇볕도 많이 받아 성장이 더디고 색깔도 회색에 가깝다. 그래서 깜장굴이라고도 하는데 햇볕을 받으며 자라서 그런지 비타민을 비롯한 영양분이 더 많고 씨알은 작다. 그래서 더 귀하고 값이 나간다. 서포는 깜장굴이 많이 나는 지역이다. 그래서 서포굴은 전국에서 유명하고 가격도 비싼 편이다.  
 

▲ 활기가 넘치는 서포시장

아무튼 이 서포의 귀한 몸인 깜장굴을 보기 위해 서포장에 갔으나 볼 수 없었고 갯가에 가야 했다. 서포장은 서포수협 뒤에 있는 공터에서 4, 9일 5일장으로 열린다. 한때 상설장으로 하고자 지상 3층, 지하 1층의 현대식 건물을 세웠으나 지금은 대부분 비어 있다. 1층 몇 곳만 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건물도 부실해서 말이 많았고 면민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갈수록 서포면에 사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것이 현재 농어촌, 비수도권 군단위의 우울한 미래다. 서포초등학교도 한 때는 한 학년에 세 반씩 두고 분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포초등학교가 분교 규모이니 얼마나 사람이 줄었는가? 장터를 다니기로 한 후 네 번째 장인데 가장 사람이 없는 장이었고 거래하는 수산물, 농산물도 너무 빈약했다.

쓸쓸한 서포장을 뒤로하고 비토섬에 갔다. 비토섬에 간 이유는 62년 전에 있었던 한센병에서 완치된 사람들의 비통한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사건은 1957년 사천 실안 영복원에 있던 한센병 병력을 가진 사람들이 비토섬에 먼저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토섬 동쪽에 이주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비토섬 주민들이 습격하여 27명의 사람을 죽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의 배경은 아직도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과정과 피해 결과만 조사되었다. 2007년 10월에 통과된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치된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가 2013년 전국의 피해 사건을 조사하면서 비토리 사건도 함께 조사하여 전체 사망자를 비롯한 피해 규모와 사건의 과정 등을 확인한 것이다.

 

사건과 관련된 피해자들, 가해자들의 친인척, 후손들이 서포 인근과 사천 실안에 생존해 있다. 그렇기에 언급이 더 조심스럽고 마음이 아픈 사건이다. 한편 세월이 더 가기 전에 당시 돌아가신 분들의 혼을 달래는 위로가 공식적으로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청준 선생의 작품 ‘당신들의 천국’은 전남 고흥의 소록도에서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쓴 것인데 당시 한센인 편에 섰던 병원장 조창원은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위령비라도 세워 희생당한 분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위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 있었던 한센병에 대한 무지와 그에 따른 공포는 그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 그리고 폭력이 되어 수많은 지역에서 한 맺힌 죽음을 만들었다. 비단 한센병만 아니라 많은 질병, 피부색, 종교, 언어, 문화 등에 대한 차이와 무지는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 되고 차별이 되어 비극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성애와 무슬림 그리고 이주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태도도 그렇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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