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KBS진주 주최, 렉처콘서트 〈두 가지 색, 하나의 울림〉 공연
가수 하림 “노래로 세상을 어루만지고 싶어”
가수 하림이 진주를 찾았다. 지난 10월 28일, KBS진주가 주최한 렉처콘서트 〈두 가지 색, 하나의 울림〉 리허설 현장, 무대 스크린에는 진주가 낳은 화가 내고(乃古) 박생광의 강렬한 색채가 담긴 마지막 작품 <노적도>가 펼쳐져 있고, 하림과 밴드 ‘패치워크로드’는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악기를 조율하고 있다.
“이거 맨날 헷갈리더라? 코드가 뭐였지?”
“앵콜은 사람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여름 안에서’나 ‘할 수 있어’로 할까?”
오랜 친구 사이 같은 연주자들 얼굴엔 행복감이 번졌다. 공연을 앞둔 가수 하림(49)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진주는 이번이 첫 방문이신가요?
“혼자 공연하러 갈 때는 아내와 함께 다니곤 해요. 남쪽 공연이 있으면 진주에 들러 하루쯤 머물죠. 꼭 축제 기간이 아니어도 밤에 바라보는 남강이 참 좋더라고요. 진주에 자주 가는 LP바도 있죠.”
싱어송라이터, 월드뮤직 아티스트, 라디오 진행자, 여행자.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는 자신을 “길 위의 음악가”라고 소개한다.
“어릴 땐 스타가 되고 싶었죠. 하지만 이제는 오래 노래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아요.”
그는 어느새 데뷔 25년 차에 들어섰다. 그의 노래는 사랑과 연대, 그리고 사람의 존엄을 잊지 않는 시선으로 채워져 있다. 인기 가수보다 삶의 결을 어루만지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그에게, 음악은 여전히 ‘사람을 위한 일’이다.
Q. 이제는 사랑 노래는 안 만드시는 것 같아요?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위로’, ‘출국’ 등 대중들에게 호소력 있는 가수로 잘 알려진 하림은 최근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잖아요. 지금 내가 가진 시간 안에서 더 많은 사람과 노래를 나누는 게 제 적성에도 맞아요.이제 나이도 있고(웃음)”
“음악가가 직업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요. 그저 취미라면 굳이 안 해도 되지...직업은 그 안의 본질을 고민해야 해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걸 넘어서, 이 일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Q. 앞으로 만들고 싶은 음악은 어떤 것일까요?
“내년이면 쉰이에요. 최근 한 모임에서 원로 조각가 선생님이 작품에 몰두하시는 걸 봤어요. 예술은 결국 유한한 삶 속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죠.”
“박생광 화백이 여든이 넘어도 붓을 놓지 않았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저도 언제까지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요? 남은 에너지를 사람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서정적인 노래를 만드는 데 쓰고 싶어요. 분주한 일상에서도 서로에 곁에 대해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노래 말이에요.”
“사람들이 일하는 이유는 결국 사랑이죠”
최근 하림의 노래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23년 발표한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는 산업현장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곡이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잖아요. 내가 다치면 가족의 마음이 무너지고, 돌아가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거예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며 “그걸 잊으면 일이 너무 버거워져요”
그는 앞서 시인 제페토의 시 〈그 쇳물 쓰지 마라〉에 곡을 붙여, 충남 당진 제철소에서 숨진 20대 노동자를 추모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의 촉매가 되었고,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챌린지에 참여했다.
음악은 세상을 회복시키는 언어예요
2014년, 하림은 국제앰네스티와 함께 인권예술 프로젝트 ‘시크릿 액션’에 참여했다.
그때부터 그의 관심은 사랑과 이별에서 사람과 사회로 확장됐다.
“저는 노래로 사회를 돕고 싶어요. 직접 싸우는 사람도 있고, 멀리서 노래하는 응원을 보내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아요. 에디슨이 축음기를 만든 뒤 사람들은 직접 노래하던 본능을 잃었어요. 그 이후 직업 음악가가 생긴 거죠. 저는 그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이에요. 다만 그 노래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었으면 해요.”
그래서 그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든다. 화려한 기교보다 담담한 가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하림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음악의 본질을 다시 배웠다고 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 처음 접한 거리 공연, ‘버스킹’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때 봤던 거리의 뮤지션들이 너무 자유로웠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저도 홍대 거리에서 2년 정도 노래를 연습했죠. 그 경험이 나중에 〈비긴어게인〉 무대까지 이어졌어요. 이제는 여행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 함께 노래해요. 각자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죠. (이성자 화백처럼) 연인이나 가족을 두고 유학을 떠난 친구들, 다른 나라로 건너간 음악가들...그들의 이야기가 제 노래 속에 스며들어요.”
“광장에서 노래했을 뿐”
지난 5월, 하림은 통일부 주최 ‘남북 청년 토크 콘서트’무대에 설 예정이었으나,행사 직전 섭외가 취소되는 일을 겪었다.
통일부는 “대선 시기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한 실무적 판단이었다”고 해명했지만,실제 이유는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노래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같은 가수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죠. 포스터까지 다 나왔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작년에 광장에서 노래하신 적이 있어서 정치적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광장에서 노래했다는 이유로 섭외가 취소된다면, 그것은 블랙리스트를 연상케 하는 일”이라며 나뿐 아니라 100여 명의 음악가들이 그 무대에 올랐다. 이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부르고 나면 그 순간 사라져요. 조금 전 우리가 함께 부른 그 노래 있잖아요. 그게 다예요. 어떤 노래가 남는다고 하면, 노래만 남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기억과 그 노래가 버무려진 감정이 남겠죠. 그래서 저는 음악이 좋아요. 세상에 사람들이 이렇게 박수를 쳐주는 직업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음악가라는 일을 할 수 있어 참 감사하죠.”
예술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
“불편하고 마음이 아픈 일들이 많지만, 그럴수록 음악은 더 절실해져요. 저는 여전히 노래로 세상을 어루만지고 싶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친구들이 기다리는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지친 사람들의 등을 조용히 토닥이며 오늘도 세상을 조금 덜 아프게 만든다.
인터뷰에 도움을 주신 KBS진주 정현정 작가님과 가수 하림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