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 강원도 원주에서 내려온 10대 청소년이 경남 사천의 한 여고생을 살해한 사건은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A군(17세)은 평소 온라인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던 B양(16세)을 처음으로 만나러 갔다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또래 살인, 극단적 청소년 범죄가 던지는 신호
보도에 따르면 A군은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자퇴한 뒤 원주에서 생활하던 중,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B양의 거주지를 수소문해 사건 당일 사천까지 직접 찾아갔다.

그는 흉기와 휘발유를 사전에 준비해 범행을 계획했고, 피해자와는 그날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A군은 중학생 시절까지는 또래와의 교우관계에 문제가 없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외모에 대한 집착과 자기혐오, 강박증세가 심화되었다.

하루에 네 시간씩 씻는 강박행동, 어머니에게 “얼굴을 갈아 없애고 싶다”고 털어놓을 정도의 자기혐오는 그의 비정상적인 심리상태를 암시한다. 그는 타인을 향한 공격적 행동을 통해 내면의 불안을 해소하려 했던 것일까.

사랑이 아닌 통제, 집착의 폭력

국가인권위원회가 수행한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와 같이 일방적인 감정이 지배하는 범죄의 경우 가해자의 성격 형성에는 아동기 애착 문제와 낮은 자존감이 주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된다.

대개 이런 가해자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자기중심적인 성향으로 고착된다.


이들은 드물게 ‘이상화’하는 대상을 만나게 되면, 그 감정을 절대화한다. 상대가 자신이 기대한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강박적으로 통제하려 하며, 필요하다면 폭력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A군이 피해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넌 나의 60조 개 세포의 이상형이야”라는 문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사랑이 아니다. 상호성 없는 일방적인 감정은 미성숙한 집착일 뿐이다.

‘학교밖 청소년’이라는 구조적 공백

이 사건은 겉보기엔 한 개인의 비정상적인 감정과 행동에서 비롯된 비극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무관심 속에 방치해온 구조적 결함이 드러난다.

A군은 고교 자퇴 이후 사실상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였다. 가족과 학교라는 최소한의 울타리를 벗어난 그는, 어떠한 보호와 관리도 받지 못한 채 극단적인 심리 상태로 빠져들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학교밖 청소년’을 관리·지원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다. 학교는 더 이상 이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외부로 내보내고, 사회는 ‘남의 아이’라는 이유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우리 사회가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요소로 돌변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그러한 위험이 현실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다.

청소년 범죄, 지역사회가 응답해야 할 질문
과거와 달리 오늘날 청소년들은 온라인을 통해 누구와도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온라인 채팅과 SNS는 우정과 연대를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정의 왜곡과 일탈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사천 여고생 사건도 온라인 채팅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친밀성’이 실재적 관계를 대체하면서 발생한 범죄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이러한 온라인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가? 우리는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차원에서 이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가?

단지 사건이 벌어졌을 때만 분노하고, 처벌 강화를 외치는 대응은 땜질에 불과하다. 이 문제는 반복된다. 준비하지 않으면 더욱 참혹한 형태로 돌아올 수 있다.

달라진 비행 환경, 지역사회는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가?

최근 청소년 범죄의 양상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문화, 기술, 그리고 인식 변화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걸맞은 새로운 접근 방식이 절실하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더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시대지만, 청소년 개개인의 내면은 어느 때보다 깊은 심리적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청소년들에게 온라인 세계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탈의 환경과 수단을 제공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두 사람이 광역적으로 연결되어 참혹한 결과에 이른 배경에는, 청소년들에게 일상화된 채팅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이처럼 익숙한 온라인 활동 속에 숨어 있는 위험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할 역량을 제대로 갖추고 있을까?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율에 맡긴 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은 실질적인 대책 없이 그저 기도만 하던 ‘인디언 기우제’와 다를 바 없다. 

청소년 비행은 정말로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현상일까?

청소년의 현실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그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고 교육하지 않는다면, 사천 여고생의 비극은 또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노만을 쏟아내고, 일시적인 감정에 휩쓸려 처벌 강화만을 외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체계적인 연구와 그것에 기반한 교육이다. 청소년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물론, 가해자가 될 가능성까지도 구조적으로 줄여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역사회의 책임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미래에 대한 투자다.

                                       글쓴이 윤상연 교수
                                       글쓴이 윤상연 교수

윤상연 교수는 경상국립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재직 중이며, 고려대학교에서 문화 및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을 역임했으며, 2015년부터 현재까지 경찰청의 ‘소년범 조사 시 전문가 참여제’ 슈퍼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청소년 범죄와 심리, 문화심리학 등을 중심으로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으며, 현장 경험과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공 정책 자문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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