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진보정당이 가야할 길을 묻다

지난 6월 3일 21대 대선이 끝나고 40여일이 지났다. 진보정당 후보였던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표는 다시 현장을 누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협상테이블을 만들라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거리의 변호사’로 돌아간 것이다.

<단디뉴스>는 7월 15일 오후 진주의 한 찻집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표를 만나 현재 한국 정치 사회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진보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7월 15일 오후 진주의 한 찻집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표를 만나 현재 한국 정치 사회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진보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7월 15일 오후 진주의 한 찻집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표를 만나 현재 한국 정치 사회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진보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현장에서 민원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나 검찰과 언론, 지방분권 등 주요한 분야에 대한 개혁의지를 높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하지만 ‘농망 행정’으로 농민들이 거세게 반발해온 송미령 장관을 그대로 유임한 것과 불법과 탈법을 저질러온 인사들을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하고,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철회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초기 백기완 선본부터 출발해 30여년 역사를 이어온 진보정당이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분열’이라고 짚었다.

우리사회에 ‘복지 국가’와 ‘약자 보호’라는 화두를 던졌던 진보정당이 ‘협오’와 ‘양극화’라는 질곡을 넘어 새로운 방향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 보다는 ‘운동성’과 ‘현장성’을 회복해야 한다고도 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대선 후보 출정식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대선 후보 출정식

다음은 권영국 대표와 나눈 일문 일답이다.

서성룡(‘서’) : 대선에서 0.98%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고, 선거 직후 12시간 동안 13억원이라는 많은 후원금을 받았다. 대선 결과와 시민 후원금의 메시지를 어떻게 읽으셨는지?

권영국(‘권’) : 득표율만 보면 실망스러웠죠. 하지만 선거 이후 오히려 많은 시민들이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투표를 못 해서 미안하다’거나 ‘앞으로 꼭 지지하겠다’는 편지가 많았어요.

약 13억 원의 후원금이 모였는데, 저는 이게 정의당이 국민들로부터 받은 ‘신뢰 회복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표로는 연결되지 않았지만, “당신들의 존재는 꼭 필요하다”고 말해준 것 같았어요.

서 : 대선 과정에서 느낀 진보정당의 한계는 무엇이었습니까?

권 :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용이 없었다는 겁니다. 정책이든 메시지든 ‘진보정당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명확한 방향과 콘텐츠가 부족했어요.

둘째는 분열입니다. 대중은 우리를 진보라고 인식하지만, 진보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연대하지 못하고 '각자도생'하는 진보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실망을 줬는지, 그걸 선거 결과가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서. 진보정당이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권 : 제도와 사람이 모두 바뀌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는 결선투표제 도입, 비례성 강화를 통해 다당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보정당은 ‘현장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실제로 국민들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죠. 공장에서 해고당한 노동자 옆에, 고통받는 청년 곁에 진보정당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보다는 ‘운동’이어야 합니다. 제도권에 안주하면 다시 실패합니다.

서 : 최근 2030 세대, 특히 남성 청년층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권 : 저는 그렇게 단순히 보지 않습니다. 청년층의 보수화는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한 반응이지, 기득권을 옹호하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공교육도 붕괴되고, 부모 찬스도 못 쓰는 구조 속에서 이들은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경쟁에 내몰려 있어요.

그 상황에서 정치가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니까, 정치를 외면하거나 반발하는 거죠.

정치가 실패한 탓입니다.

그들을 ‘보수적’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서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본다면요?

권 : 저는 여성 청년들, 특히 2030 여성 세대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그들은 차별과 불평등을 너무 일찍, 너무 자주 경험했습니다. 그만큼 구조에 대한 인식도 빠르고, 변화에 대한 감수성도 높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의 지지층 중 가장 많은 비율이 2030 여성들이었죠. 이런 흐름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 문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안’이 아니라 ‘당사자’로요.

서 : 정치가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과는 맞지 않는다고도 말씀하셨죠. 그럼에도 정치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권 :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대중 연설도 잘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쉬운 성격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계속 정치에 몸담고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사회가 너무 부조리하기 때문이죠.

해고당했던 경험, 용산 참사와 쌍용차, 세월호 현장에서 만난 유가족들, 그들의 절박함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서 : 풍산금속 노조활동과 해고, 구속, 변호사가 된 후로 쌍용과 용산, 세월호, 삼성 노조, 구의역 김군, 안용균 등 늘 투쟁의 한가운데서 살아오셨다. 삶의 궤적을 보면 운동가라기 보다 구도자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힘들고 고단하지는 않습니까?

권 : 힘들죠. 하지만 외롭진 않습니다.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란 그런 겁니다. 혼자 이기는 게 아니라 함께 버티고 함께 나아가는 겁니다.

정치는 ‘연대’이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지금도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뛰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진보정당의 시간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주서도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선거운동이 진행되었다. 
진주서도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선거운동이 진행되었다. 

서 : 끝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정의당이나 진보정치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습니까?

권 : 두려워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패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단지 선거의 승리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이 싸움은 전환점에 도달할 겁니다.

‘다시 진보’는 슬로건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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