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적 결혼이주여성
남편에 목 졸려 ‘뇌사’ 상태
가해 남편은 구속수감
이주여성 가족들, 눈물로 쾌유 기원
여성단체 “가정폭력 고리 끊어내야”

한국인 남편의 폭력에 경남 진주에 거주하던 베트남 국적 이주여성이 뇌사상태에 빠지자, 경남지역 여성단체들이 “결혼 이주여성 폭력방지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뇌사 상태에 빠진 이주여성의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회복을 기원하고, 누구인지 모를 대상에게 “딸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2017년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이주여성 가운데 42.1%는 가정에서 언어·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바 있다. 가정폭력으로부터 이주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 마련이 요구된다.

지난 3일 경남 진주에서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인 아내를 목 졸라, 뇌사상태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응급실에 입원 중이다. 생명이 위중한 상태이다. 여성단체들에 따르면, 가해자는 앓고 있던 질환으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등 비관적인 상황에 빠져 있었다. 자신이 죽고 나면, 남은 재산을 베트남 출신 아내가 상속받게 될 것이라 보고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는 지난 3일 아내의 목을 조른 뒤, 아내가 의식을 잃자 경찰에 자진신고했다. 현재 구속 상태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18일 오후 2시쯤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를 비롯한 도내 37곳의 여성단체는 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날 “2007년 후인마이라는 베트남 이주여성이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지 2개월 만에 남편에게 맞아 사망한 사건이 알려진 것을 시작으로, 이주 여성이 겪는 극단적인 폭력은 계속 돼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는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저개발국 출신 이주여성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일로, 인식개선 및 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편에게 목 졸려 뇌사상태에 빠진 결혼이주여성의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남편에게 목 졸려 뇌사상태에 빠진 결혼이주여성의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피해자 가족들도 함께 했다. 이들은 사건 발생 후 3개월간의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아버지는 “처음 소식을 듣고 (입국해) 너무 당황스러웠다. 병원에 와 딸 상태를 보니 너무 속상했다”고 밝혔다. 이어 “딸을 똑똑하게 키워, 여기(한국)에 와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남편한테 이런 일을 당해 너무..”라며 눈물을 삼켰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저희 딸을 살려주시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어머니도 연거푸 눈물을 쏟아내며 괴로운 심정을 드러냈다.

이주여성 임향금 씨는 이주여성들이 우리나라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주여성이 한국에 오면 아는 사람도 없고, 힘이 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남편 뿐”이라면서 “한데 그런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이주여성이 될 수 있었음을 암시하고, “저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며 “한국 사회에서 우리를 이방인이 아닌 이웃으로 보고, 인정하고 존중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단체 회원들은 피해자의 빠른 쾌유를 바라면서도, 인식과 제도개선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강경민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 대표는 이 사건을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2020년에만 1만 700여건의 가정폭력 상담이 있는 등, 여성들은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며 생명의 위협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은 누구든지 정부와 자치단체의 보호를 받게 돼 있는 만큼, 이주여성 보호를 위한 정책변화와 지원이 시급하다”며 정부와 자치단체에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이주여성은 한국사회의 구성원이지만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며, 이 같은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1년에서 2022년 사이 다문화 가정 상담 수가 900건이 넘게 증가하는 등 이주여성을 둔 가정폭력 상담이 늘고 있”음을 거론하고 “이주여성은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귀화하는 과정에 배우자의 조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남편에게 종속되는 결과가 일어난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함을 넌지시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제도와 기구가 지금보다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첫 공판은 다음 달 9일 창원지법 진주지원 201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발표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 이주여성 920명 가운데 42.1%p에 이르는 387명은 가정폭력을 경험한 바 있다. 복수 응답의 가정폭력 경험 유무 현황을 보면, 피해 경험자 가운데 81.1%p는 심한 욕설 등의 언어적 학대를 당했다. 폭력 위협이나 흉기 위협 등 신체적 학대를 경험한 이들도 각기 38.0%p, 19.9%p에 달했다. 이외에도 성행위 강요나 외출 방해, 한국식 생활방식 강요 등 다양한 가정폭력을 이주여성들은 감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 국가인권위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 갈무리
/사진 - 국가인권위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 갈무리

/단디뉴스 = 김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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