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당 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정당법 위헌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정당 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정당법 위헌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정당 설립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정당법 조항 일부가 가까스로 합헌 결정을 받았다. 지역정당 설립을 허가하라며 정당법을 둔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역정당 네트워크 측은 이 같은 결과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재판관 다수가 일부 조항에 위헌 판단을 내린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거대양당이 독식하고 있는 현실정치를 바꾸려 노력할 것”이라며 “입법을 통해 정당 설립 자유가 충실히 보장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6일 정당법 일부를 두고 제기된 헌법소원을 기각하고, 현행 정당법에 합헌 판단을 내렸다. 헌법소원이 제기된 조항은 정당법 4, 17, 18, 41, 59조 등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들 조항을 ‘전국정당 조항’, ‘법정당원 수 조항’, ‘정당등록조항’, ‘정당명칭사용금지조항’으로 묶어 판단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과 이들 모두 합헌 판단을 받았지만, ‘전국정당 조항’은 재판관 5명의 위헌 판단, 4명의 합헌 판단을 받았다.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지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이 위헌 판단을 내려야 한다.

‘전국정당 조항’은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광역자치단체에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되며, 정당은 5개 광역자치단체에 시·도당을 설립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지역정당 설립을 막는 조항으로 평가돼왔다. 2006년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합헌 판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해당조항에 위헌판단을 내렸다. 17년 전과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전국정당 조항’에 위헌 판단을 내린 헌법재판관은 5명(유남석, 문형배, 정정미, 김기영, 이미선)으로 이들은 해당 조항이 정당 설립 등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유남석, 문형배, 정정미 재판관은 “전국정당 조항에 의하면 정당은 수도 소재 중앙당과 5(곳) 이상의 시·도당 조직을 갖추어야 등록할 수 있고, 시·도당 수가 5(곳) 미만이 되면 그 정당의 등록이 취소된다”며 “그러한 요건을 갖추어야만 국민이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직이 된다고 볼 뚜렷한 근거가 없다”고 했다. 김기영, 이미선 재판관은 “전국정당조항은 모든 정당에 일률적으로 수도 소재 중앙당과 5(곳) 이상의 시·도당을 요구해 지역정당이나 군소정당의 형성과 신생정당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며 “이는 정당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입법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관 4명은 ‘전국정당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재판관은 “전국정당 조항은 정당에 전국 규모의 조직을 요구해 국민의 다원적 정치적 의사를 균형 있게 집약, 결집해 국가정책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한다면서 “수도 소재 중앙당과 5(곳) 이상의 시·도당을 (정당의) 등록요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판시했다. 또 “지역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당정치 풍토 현실에서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지역주의를 심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도당 당원 수를 1천명 이상으로 규정한 ‘법정당원 수 조항’은 7(합헌) 대 2(위헌)로 합헌 판단을 받았다. 위헌 의견을 낸 김기영, 이미선 재판관은 해당조항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정당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헌법은 “정당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명시적으로 규정해 정당 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정치적 다양성 및 정치과정의 개방성을 보장”하고 있는데, 해당 조항은 “시·도당 창당 요건으로 최소한의 당원 수를 1천 명 이상으로 정해 정당 내부 조직 문제에 관여함으로써 군소정당의 형성과 신생정당의 진입을 저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서다.

유남석, 문형배, 정정미,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정당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정당의 조직인 시·도당이 지속적이고 공고한 조직의 최소한을 갖추도록 함으로써 헌법상 정당에게 부여된 과제와 기능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의 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라면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정당 수나 인구 수, 인구 수 대비 당원 비율 등을 종합해 보면 “시·도당은 1천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는 규정”이 “시·도당 창당을 현저히 어렵게 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정당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해야 한다는 ‘정당등록 조항’과 등록된 정당이 아니면 정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정당명칭사용금지조항’에 전원일치 합헌 판단을 내렸다.

지역정당네트워크는 1일 입장문을 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이번 결정을 도약을 위한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특히 ‘전국정당 조항’을 둔 재판관들의 의견이 4(합헌) 대 5(위헌)로 위헌 의견이 우세했던 점을 들어, 그간의 지역정당 설립 운동이 이번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많은 한계가 있지만, 여전히 핵심은 정치”라며 “입법과정을 통해 정당 설립과 가입의 자유, 정당 활동의 자유 등 기본권이 충실히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역정당네트워크에는 노동·정치·사람,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 직접행동영등포당, 과천시민정치당, 은평민들레당 등이 함께 하고 있다. 2021년 직접행동영등포당을 시작으로, 2022년 과천시민정치당, 은평민들레당이 정당법 일부 조항을 두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주민직접정치와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지역에 정당을 설립하려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사회변혁노동자당, 2023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도 비슷한 이유로 정당법을 둔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단디뉴스 = 김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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