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립박물관 앞 밀양 독립운동가 흉상
밀양시립박물관 앞 밀양 독립운동가 흉상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나라가 독립된 지 80여년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으면 아직 일제의 속박 속에 사는 나라 같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많이 부끄럽다.

밀양 하면 영화 ‘밀양’에서부터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룬 ‘밀정’까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의 고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일제때 의열단 단장을 지낸 김원봉 선생 그리고 윤세주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밀양에서 나왔다.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의열기념관과 체험관을 독립운동가 거리라고 이름을 지은 해천 옆에 세웠다.

의열기념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밀양의 상징, 영남루가 있다. 영남루를 바라보는 야트막한 언덕에 임진왜란때 승병장으로 활동한 사명대사 동상도 있다.

 

영남루 옆에 있는 사명대사 동상
영남루 옆에 있는 사명대사 동상

애국도시 밀양이라지만, 친일을 한 사람들을 기리는 곳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유해한 환경이 드러나면 제거해줘야 한다. 제거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유해한 환경을 보고 가려낼 수 있는 눈들을 길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2023년은 '밀양방문의 해'이다. 많은 사람들이 밀양을 찾게 하고 있다. 애국에 가려진 밀양지역의 친일역사 흔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밀양 답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밀양뿐만 아니라 전국 어느 도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일과 애국을 함께 배울 수 있는 곳이 밀양 영남루 일대이다. 영남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영남루 입구 왼쪽에는 ’애수의 소야곡‘을 비롯해서 3,000여곡을 작곡한 박시춘 의 노래비와 흉상 그리고 생가를 복원해 놓고 있다.

안내 표지판에는 일제때 일제를 찬양한 노래 ’혈서지원‘을 비롯한 네 곡의 제목이 쓰여져 있으며, ’2005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사로 거명되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명백한 친일이지만 안내판에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라고 해 놓았다.

정확히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영남루 앞에 있는 박시춘 작곡가 흉상
영남루 앞에 있는 박시춘 작곡가 흉상
박시춘 작곡가 안내판
박시춘 작곡가 안내판

밀양아리랑 노래비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아랑각이 있다.

아랑각 영정은 일제때 일어난 중일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그린 ’금자봉납도‘ 화가 김은호의 작품이다. 아랑은 조선 명종때 일어난 사건이다.

아랑이 영정 저고리가 아주 짧다. 조선 중기에는 이런 짧은 저고리를 입지 않았다.

아랑이가 일제때 독립운동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독립운동가를 상징하는 도시 밀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는 나치에 협력한 문화예술인에 대해 더 가혹한 처벌을 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웠다.

음악, 미술에 이어 민족반역 흔적도 영남루 앞에 있다.

 

아랑각에 있는 아랑이 이야기 그림
아랑각에 있는 아랑이 이야기 그림

일제 때 일본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을 두 번이나 지낸 박춘금이 세운 밀성대군지단이 단군 위패가 모셔진 천진궁앞에 있다.

이 비석과 조형물은 일제 신사를 보는 듯 모두 일제 조형물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의 배출지 중 하나인 강원도 정선에는 박춘금이 일제군사물자 조달을 위해 운영했던 화암동굴 출구에 박춘금 단죄비가 세워져 있다.

독립운동가 도시 밀양과 너무나 맞지 않는 일본식 밀성대군지단이다.

 

천진궁 앞에 있는 밀성대군지단
천진궁 앞에 있는 밀성대군지단
의열기념관
의열기념관

밀양은 의열기념관과 체험관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익히고, 영남루에서 밀양강을 바라보며 독립운동가의 뜻을 되새기기 좋은 지역이다.

하지만 영남루 둘레에 있는 친일 작곡가 박시춘, 친일 화가 김은호, 민족반역자 박춘금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혼란만 가져다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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