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 초보엄마

일주일 전 아침, 그날따라 유난히 눈꺼풀이 무거웠다. 비몽사몽으로 눈을 비비는데 안쪽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헌데 거울을 보면 바위만한 눈곱이 달린 것 외엔 정상이었다. 기분 탓인가? 게으름에 물을 끼얹으며 세수를 하고 다시 거울을 봤다. 세월을 덮어쓴 눈두덩이가 점점 아래로 쳐져가는 게 보였다. 어제보다 눈이 작아졌다고 느끼면서 별다를 것 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눈 뜨기가 더 어려웠다. 이제는 바늘이 아니라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통증이 심해졌고 눈 주위가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눈두덩이가 쳐진 게 단순히 나이 탓이 아니었나? 부랴부랴 안과로 달려갔다. 초진 기록을 작성하고 접수한 시각이 95, 대기번호 23번이었다.

눈 아픈 사람이 왜 이리 많냐고 툴툴거리면서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통증은 어느 새 오른쪽 얼굴 전반을 장악하고 있었다. 접수창구의 직원이 예상한 1시간보다 두 배 넘는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의사를 영접하는 기회가 왔다. “턱을 가까이 대시구요. 빨간 불 쳐다보면서 눈 크게 뜨시고~!”

낯선 검사 장비가 어색했지만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파르르 눈꺼풀이 떨려왔다. 그러나 몇 번의 검사를 마친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한술 더 떠서 안과 쪽 이상이 아닐 수 있다는 소견을 덧붙였고, 그때부터 나는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재인 초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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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쪽 소견이 아니면 뭐지?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귀가 윙윙대는 것 같기도 했다. 불치병 환자가 등장하는 드라마 장면들이 오버랩 되면서 입안이 말라갔다. 간이 툭 떨어진 내게 의사는 안약 2개를 처방해주었다. 일주일 지나도 아프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날 밤 안약을 넣고 뒤척이다 잠을 설쳤다. 긴 밤 끝에 찾아온 아침, 불안의 크기만큼이나 눈두덩이가 부어 있었다.

이번에는 규모가 작은 동네안과를 찾아갔다. 대기실에 손님이라곤 나 혼자뿐이었다. 그것도 걱정이었다. 이리 손님이 없어서 간호사들 월급을 어떻게 준대? 만약 여기도 원인을 모른다고 하면 어떡하지? 오만가지 걱정의 늪을 헤매고 있을 때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나를 향해 싱긋 웃으셨다. 평소 같으면 따라 웃었겠지만 오늘은 영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오른쪽 눈의 불편한 증세를 줄줄이 읊었다.

몇 가지 검사가 진행되었다. 녹내장, 백내장, 혹시나 해서 황반변성까지 살펴봤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다행스러우면서도 다시 불안했다. 권투선수마냥 부어올라서 욱신거리는 눈은 어쩌라고. 근심에 빠진 내게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그럼 이번엔 눈을 한번 뒤집어 볼까요?”

그말은 말 그대로 눈두덩이를 까뒤집는 일이었다. 눈물이 찔끔 났지만 애도 낳았는데 이쯤이야하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침내 의사 선생님이 동아줄을 내려주셨다. “눈꺼풀 안쪽에 염증이 있네요. 사흘 정도 약 먹으면 좋아질 겁니다.” 하얀 가운 뒤에 언뜻 천사 날개가 보이는가 싶었다. 원인불명의 지옥을 헤맨 끝에 탈출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옆에 사람만 없었으면 의사 선생님께 큰절이라도 올렸을 것이다.

감사의 배꼽 인사를 하고 나가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얼음 마사지도 자주 하시구요. 최근에 스트레스 받는 일 있었어요? 눈은 정에 약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요.” 집에서 눈두덩이에 얼음주머니를 올려놓고 누워서 곰곰이 짚어보았다. 실은 요즘 속을 끓이는 일이 있었다. 상대에게 착한 척하다 거절을 못해서 스트레스를 옴팡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눈이 먼저 항복 선언을 해버린 것.

이튿날 나는 그동안 머뭇거리던 말을 겨우 꺼낼 수 있었다.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힌 것. 그렇다고 일이 다 해결되진 않았지만 말이라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눈사태(?) 덕분이었다.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으면 심신이 한결 편안해진다. 눈이 뒤집히는 경험 뒤에 얻은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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