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을 열자 물이 찰랑거렸다. 이런 정신머리하고는. 취사 버튼 누르는 걸 깜빡 하고 말았다. 식탁에선 아이들이 숟가락 뜰 준비를 하고 앉아있었다. 30분 더 기다리자고 하면 민원이 끓어오르겠지. 심심하면 도지는 취사망각 증세를 실토하고, 지갑을 챙겼다. “우리 오늘 김밥 먹을까?” 잠옷을 겸하는 추리닝 복장으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슬리퍼를 끌고 나갔다. 늘어진 무릎 부분이 거슬렸지만 어차피 마스크도 썼겠다, 알아볼 사람도 없는데 뭐.

아파트 상가 분식집에서 김밥을 담은 검은 봉지를 달랑거리며 바삐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00에미야!” 마치 시아버지의 재림과도 같은 말투가 걸음을 붙들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날 부른 곳은 길 건너 편의점이었다. 아래층 할아버지가 편의점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계셨다. 모자에 마스크로 무장하고 눈만 겨우 내놨는데도 알아보시다니. 소머즈급 시력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질문이 날아왔다.

“00에미 오데 가노?” 나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김밥 사 가는 길이에요.” “뭐라꼬오?” 시력에 비해 청력이 약하신 할아버지는 대신 목청이 커지는 초능력을 발휘하셨다. 나도 목청을 가다듬었다. 한 음절씩 또박또박, 아주 큰 소리로 답을 돌려드려야 했다. “김밥 샀어요~ 집에 밥이 없어서요!” 본의 아니게 집안 사정을 만천하에 알리게 되어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다음 질문을 하시기 전에 얼른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었다.

재인 초보엄마
재인 초보엄마

할아버지는 이 근방 80대 어르신들 중에서 최장신(最長身)이셨다. 180센티미터가 족히 넘어 보이는 훤칠한 풍채에, 늘 착용하시는 중절모도 노신사의 중후함을 돋보이게 했다. 왕년에 한 인물 하셨을 것 같은데 평생 솔로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노모와 단둘이 사시다 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으셨다. 가끔 친척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찾아오는 일 외에는 외부인의 방문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만 계신 건 아니었다. 매번 식사 때마다 외출을 하셨고, 주로 아파트 상가에서 해결하시는 눈치였다. 그날도 식후 자판기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다 나를 포착하신 것.

일과 육아 사이에서 버둥거리며 정신 줄을 자주 놓치고 사는 내가 할아버지 사정을 이리 소상하게 알게 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나마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녀석들이 어릴 땐 집에서 걷는 법이 없었다. 뛰지 않으면 날아다녔다. 소파에서 붕붕 뛰다가 거실로 다이빙하기 일쑤였고, 실컷 씻겨서 뽀송하게 닦아주면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땀을 뺐다. 쓰읍 뱀소리도 내보고 합죽이 박수도 동원해봤지만 가장 효과적인 경고는 이거였다. “밑에 층 할아버지 올라오신다!”

10여년의 세월동안 실제로 할아버지가 시끄럽다고 찾아오신 적은 딱 한번이었다. “너그 이름이 머꼬? 조용히 안할래?” 그해 겨울 아이들 손에 반성문 대신 김장김치 한통을 들려 보냈다. 이후 방문 횟수가 점차 늘어나 이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올라오신다. 벨소리에 나가보면 언제나 손에 뭔가를 들고 서계셨다. 특히 명절 전후로 과일이나 곶감, 홍시 같은 선물세트를 자주 가져오셨다. 혼자서는 다 못먹는다는 말씀과 함께.

지난 설에는 떡국용 떡을 한 봉지 내미셨다. “떡국 한 그릇만 해다오!” 떡국이 드시고 싶었는데 끓일 수가 없으셨나 보다. 가끔은 먹기 힘든 것도 가져오신다. 곰팡이 핀 고구마나 냉동실에서 화석처럼 굳어진 홍시 같은 것들이다. 쓰레기통에 버려달라는 말을 입안에서 굴리다 꿀떡 삼켰다. 그저 감사하게 받아야지. 위층에 살면서 지은 죄가 얼만데 여기까지 가져다주신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몇 개의 접시가 아파트 아래 위층을 오가는 사이, 할아버지의 건강과 일상에 관해서도 아는 것이 늘어났다. 한번은 쇠고기 육포를 가져오신 적도 있다. “이 비싼 걸, 그냥 드시죠~”했더니 딱딱해서 이가 아프다고 냉큼 두고 가셨다. 그 뒤부턴 김장을 해도 김치를 잘게 썰어서 보내드렸다. 그리고 파전이나 도토리묵처럼 부드러운 음식이 식탁에 오르면 우린 자동으로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혼자 계신 할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TV 시청인데 흘러간 옛날 드라마, 특히 사극을 좋아하셨다. 우리 집 안방에 누우면 아래층에서 허준이나 대장금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어느 날은 TV를 튼 채로 잠이 드셨는지, 새벽까지 소리가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청력이 약한 할아버지를 만난 덕분에 날다람쥐 같은 아이들을 무사히 키울 수 있었다. 좋은 집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좋은 이웃은 억만금을 줘도 선택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우리 가족은 큰 복을 누리고 사는 셈이다. 허준과 대장금을 이웃으로 두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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