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목련공장이 문을 연다. 전 과정 수동식, 일종의 가내수공업쯤 되겠다. 우선 장롱 안에서 찾아낸 전기장판으로 부지를 조성한다. 그 위에 가로세로 약 1미터 너비의 흰 종이를 깔고, 꽃망울이 터질락말락 하는 꽃송이를 조심스레 올린다. 그러나 이 몇 줄로 전체 공정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급작스럽게 동원된 꽃송이들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낯빛이 노래져서 뻣뻣하게 노려보는데 기세가 여간 아니다. 심상치 않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목련 공장의 본사(?)는 한적한 시골 밭에 위치하고 있다. 밭둑을 따라 그림처럼 서 있는 두 그루 목련나무가 올해도 꽃송이들을 대거 배출했다. 밭에서 고추를 따거나 가지를 따듯이 봄이 되면 우리는 목련을 따러간다. 그것도 하얗고 탐스러운 꽃송이가 개화하기 전, 어린 새순들만 선별해서. 흐드러지게 피고 나면 효능이 떨어진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탓이다. 몇 해 전, 목련차가 비염에 특효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우리는 봄을 기다렸다. 환절기에 콧물을 달고 사는 아이들을 위해 천연 비염약을 만들려는 것이다. 새 학기가 다가오면 목련나무를 자주 올려다보았다.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지 끝에 볼록하게 올라온 새순이 잎을 틔우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한다. 일주일만 늦어도 솜뭉치 같은 꽃이 주렁주렁 만개하고, 그러면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재인 초보엄마
재인 초보엄마

목련 따는 작업에는 부부와 두 아이가 함께 했다. 30분쯤 지났을까. 빨간 딸기 소쿠리에 수북하게 새순이 쌓였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소쿠리를 뒤집었다. 후두둑 새순이 떨어졌다. 크기가 가장 큰 것이 엄지손톱만 하고 회색 솜털이 겹겹이 표면을 감싸고 있다. 문득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어느 겨울에 입혔던 털우주복이 생각났다. 춥지 말라고 꽃송이에도 누가 털옷을 입혀놓았나. 헌데 얇기가 마치 잠자리 날개 같다. 사실 이 회색 껍질을 제거하는 일이 가장 난코스였다. 껍질보다 얇은 꽃잎이 상하지 않도록 이들을 섬세하게 분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려고 애를 써도 툭하면 꽃송이가 미끄러져 나갔다. 다시 주워서 자세를 잡아본다. 조그만 새순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용을 쓰면서. 그런데도 금방 또 흘리고 만다. 떨어뜨리고 줍기를 반복하는 동안 손톱 밑이 새까매졌다. 꽃물이 든 것이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솜털 속의 노란 잎을 마주할 수 있었다. 목련의 민낯을 본 느낌이랄까. 노란 그 잎사귀를 한 장 한 장 펼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헌데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어린 새순들은 고집이 대단했다. 계속 웅크려 있으려고만 했다. 따사로운 햇볕과 봄바람이 아니면 어림도 없다는 듯이. 나는 어느 새 목줄기가 당기고 허리가 쑤셔왔다. 눈도 따가웠다. 벌써 몇 시간째인가. 내내 같은 자세로 목을 길게 빼고 손톱만한 새순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주리가 틀릴 수밖에. “이러다 거북목 되는 건 아니겠지?”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새벽 2시였다. 해 떨어지기 전에 시작한 일이 달이 떠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다니. “안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꽃송이들을 전기장판 위에 그대로 두고 물러나기로 했다. 꽃들의 판정승.

그래도 다음 날은 꽃잎이 한결 말랑하고 부드러워졌다. 어제보다 훨씬 잘 구부러지고 모양내기도 수월했다. 목련도 그새 여유가 생겼나보다. 세월이 가면 사람도 고집이 누그러지는 것처럼. 잎들과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작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이제 꽃잎을 동그마니 펴주기만 하면 되었다. 이내 온전한 꽃의 형태가 드러났다. 잎이 열 대 여섯 장, 그 가운데 암술과 수술이 중심을 잡고 있다. 다 펼쳐도 꽃송이 사이즈가 5cm나 될까말까다. 새초롬한 자태가 소박해서 더 아름다웠다.

남은 것은 건조 과정, 전기장판에 밤낮으로 불을 켜고 꽃송이를 말리는 작업이다. 골고루 잘 마를 수 있게 수시로 위치를 바꿔주는 정성은 기본이다. 나흘째 되는 날, 감자 슬라이스 과자처럼 잎이 바삭해졌다. 암술과 수술도 물기 하나 없이 빠들하게 말랐다. 전기장판 위에서 샛노란 봄이 급속건조 된 것이다. 행여나 부서질까 조심하면서 유리병에 꽃송이를 하나씩 담았다. 유리병을 들고 일어설 때 무릎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34일간의 모든 공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올해 첫 수확을 마쳤으니 시음을 해봐야지. 흡족한 마음으로 차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마른 꽃잎 서너 개를 떨어뜨려주었다. 금세 노란 찻물이 우러났다.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향 또한 일품이었다. 목련차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감기에도 좋다니, 올 봄에도 기관지가 약한 아이들에게 수시로 먹일 수 있겠다. 한 모금 삼키는데 입안에 그윽한 향이 고였다. 그런데 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시쳇말로 현타가 왔고, 아득하게 미안해졌다. 앙상한 목련 나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식구 먹이겠다고, 꽃송이가 미처 피어나기도 전에 여린 너를 꺾어왔구나. 빈 가지에 봄 햇살을 부비고 있을 목련 나무의 황망한 심정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왔다. 그간 무심코 저질러왔을, 나의 포식행위들은 또 얼마나 부지기수였는지. 알게 모르게 죄를 짓고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몰랐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진 않을텐데. 몇 번의 봄을 더 보내야 조용한 이들의 아픔에 순순히 공감할 수 있을까. 찻잔을 든 손에 아직 꽃물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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