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영은 경상우병영 2인자 ‘우후’의 근무 공간

▲ 진주성 공북문과 영남포정사 사이 중영 터 일원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진주성 중영 터 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 축조한 중영 건물터와 진무청 건물 초석(주춧돌)이 확인됐다. 시는 발굴조사 결과에 근거해 중영과 진무청 등을 복원할 계획이다. 복원에는 1년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밀 발굴조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진행됐다. 일제강점기 훼손된 중영의 복원을 목적으로 중영과 그 부속건물인 진무청, 장청, 배리청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진무청 초석 등이 뚜렷하게 드러났고, 중영 터도 확인됐다.

중영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3년 경상우병영이 진주성에 설치됨에 따라 이곳에 자리 잡았다. 경상우병영의 참모장인 우후(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종3품의 무반 관직)의 근무 공간이다. 우후는 경상우병영의 2인자로 병마절도사 다음으로 막중한 임무를 가졌다.

진무청은 경상우병영의 행정실무를 담당하던 하급 아전 ‘진무’의 집무소이다.

 

▲ 진무청 초석(주춧돌)

발굴조사 결과 과거 이곳에 대형건물이 건립되는 과정에서 옛 흔적이 손상되기는 했지만, 진무청 초석과 건물터가 뚜렷하게 확인됐다. 조선후기 그려진 진주성도에서 표현된 중영 일원 서쪽과 남쪽의 벼랑지형, 중영터의 측구(건물 옆 배수로) 및 대지조성층도 드러났다.

조선후기 그려진 진주성도에 따르면 중영은 영남포정사 문루와 공북문 사이에 장청(장교가 근무하던 곳), 삼문(중영의 정문), 배리청(하급 아전 배리의 집무소), 망일헌(중영의 북쪽 건물), 진무청 등의 부속건물과 함께 조성돼 있었다.

중영 터 일원에는 일제강점기 경무부(헌병대)와 세무서가 조성되었고, 1970년대까지 대형건물이 계속해서 수개축(고쳐 쌓음)돼 왔다. 1979년부터 1984년 실시된 진주성 정화사업 당시 건물이 철거되면서 복토화됐다.

 

▲ 조선후기 그려진 진주성도에 표현된 중영 및 주변 건물 현황 (영남대 행소박물관 소장본)

진주시 관계자는 “중영 복원을 위한 사업을 발주해 놓은 상황이다. 빠르면 이번 주 중 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을 걸로 본다. 중영 복원에는 1년여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시는 이외에도 성내 주요건물을 복원해나갈 계획이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이번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진주성 내 중영과 부속 건물을 복원해 일제강점기 이후 무분별하게 훼손된 진주성의 제 모습을 찾고 역사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 관계자 등에게 중영 복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영 터에서 발견된 근대 석굴, 석탄 등이 보관됐던 걸로 추정된다.
▲ 발굴조사 결과를 브리핑하는 경남연구원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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